지난 5일 미국 하와이주 호아칼레이CC(파72) 18번홀(파5). 2타 차로 황유민을 추격하던 김효주가 세 번째 샷으로 이글을 노려봤지만 살짝 짧았다. 먼저 경기를 마친 황유민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 마지막 버디퍼트를 앞두고 그린에 올라선 김효주는 황유민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환하게 웃었다.
“저에겐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좋아했던 효주 언니에게 인정받은 느낌이었죠.
롯데 챔피언십에서 김효주를 한 타 차로 제치고 깜짝 우승한 황유민은 지난 8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LPGA투어에서 (김)효주 언니와 우승 경쟁을 하는 상상을 하며 꿈을 키웠다”며 “우상인 효주 언니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아 기쁨이 배가 됐다”고 말했다.


○초청 선수가 쓴 ‘하와이의 기적’
황유민의 우승은 ‘하와이의 기적’으로 불린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주무대로 삼고 있는 그가 자신의 메인 후원사인 롯데의 초청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해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가 LPGA 비회원 자격으로 우승해 직행한 건 2020년 US여자오픈 우승을 통해 시드를 획득한 김아림 이후 5년 만이다.
마지막 날 역전극 자체도 기적이었다. 대회 둘째 날 자신의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인 10언더파 62타를 적어내며 단독 선두에 올랐던 황유민은 셋째 날 3타를 잃은 뒤 선두 자리에서 내려왔다. 제아무리 프로 선수라도 천국과 지옥을 오간 뒤엔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황유민은 마지막 날 5타를 줄이는 집중력으로 한 타 차 짜릿한 역전 우승(17언더파 271타)을 만들어냈다. 우승상금은 45만달러(약 6억4000만원)로 올해 그가 KLPGA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4억592만원)보다 많다.
황유민은 “솔직히 마지막 날 9개 홀을 남기고 선두와 격차가 4타 차까지 벌어져 역전이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집중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돌아봤다. 한 라운드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정신력의 승리였다. 황유민은 “3라운드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게 컸다”며 “KLPGA투어에서 많은 대회를 치르면서 일희일비하면 저만 힘들다는 걸 배웠다”고 설명했다.
황유민은 올해 KLPGA투어를 마친 뒤 LPGA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이번 우승 직후 Q 시리즈 참가 신청을 바로 취소했다는 황유민은 “Q 시리즈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지금 가장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Q 시리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 LPGA투어에 진출한 사례가 많아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라는 걸 안다”며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는데 이번 우승으로 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신인상보단 우승이 목표”
황유민은 내년 1월부터 LPGA투어에서 뛸 계획이다. 황유민은 “결코 쉽지 않은 무대라는 걸 잘 알기에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적응해 나가겠다”며 “효주 언니처럼 LPGA투어에서 꾸준하게 활약하면 국가대표 시절부터 꿈꿔왔던 올림픽에도 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내년 신인상 도전에 대해선 “원래 상 욕심이 없는 편”이라며 “신인상보단 루키 시즌 때 1승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LPGA투어 진출을 목표로 세웠던 황유민은 “2년 전부터 틈틈이 영어 공부를 했다”며 “아직 듣고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현지에서 부딪히면서 더 익히면 언젠가 영어로 인터뷰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웃었다. 골프적으로 보완할 부분에 대해선 “올해 기회가 될 때마다 LPGA투어 대회에 나서면서 그린 주변 플레이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쇼트게임 능력을 더 기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유민은 내년 LPGA투어 진출에 앞서 남은 시즌 KLPGA투어 3개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오는 16일부터 나흘간 경기 양주 레이크우드CC 레이크코스(파72)에서 열리는 상상인·한경 와우넷 오픈이 LPGA투어 우승 후 처음으로 나서는 대회다. 올 시즌 KLPGA투어에선 아직 우승이 없는 황유민은 “LPGA투어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며 “남은 대회에서 1승을 추가하는 게 목표인 만큼 상상인·한경 와우넷 오픈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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