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쉐린 스타 17개를 보유한 프랑스의 야니크 알레노 셰프(57). 3년 전, 요리사였던 아들 앙투안 알레노가 퇴근길에 음주 운전 뺑소니 범죄로 세상을 떠나며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알레노 셰프는 아들의 이름을 딴 협회를 설립해 교통사고로 자녀를 잃은 가족을 지원하며 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일 앙투안알레노협회는 설치사진작가 JR과 함께 에펠탑 아래에서 공공 예술 프로젝트 ‘얼라이브’를 진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152개국, 50만 명 이상이 참여한 JR의 글로벌 프로젝트 ‘인사이드 아웃’의 일환이다. TED상을 받은 이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예술로 드러내자”는 취지를 내걸었다.
이번 파리 행사는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을 다뤄 주목받았다. 작품이 설치된 장소는 에펠탑 아래 이에나 다리. 앙투안의 사고 현장과 인접한 이 다리 178m 구간에 교통사고 희생자의 가족과 지인 1330명의 대형 사진이 깔렸다. 다리 전체가 하루 동안 추모의 장으로 변했다. 유가족은 행사에 참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다리를 지나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사진의 의미와 프로젝트의 취지를 알렸다. “우리 다 함께, 보이지 않는 이들을 보이게 하자(Ensemble, rendons visibles les invisibles)”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마주하는 사회적 무관심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직면해야 할 과제임을 드러냈다. 알레노 셰프 역시 같은 상실을 겪은 부모로서 현장에서 유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를 지켰다. 처음 만난 유가족들은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고, 잃어버린 자녀의 이름과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건네며 서로에게 다가갔다.알레노 셰프는 이 퍼포먼스를 준비하며 프랑스 전역은 물론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까지 직접 돌았다. 아침 일찍 유가족을 만나러 떠났다가 다시 파리 주방으로 돌아와 근무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왜 발로 뛰느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 답했다. “그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알레노 셰프는 반문했다.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왜 하느냐가 아니라, 왜 하지 않느냐 아닐까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다가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옆에 그런 이들이 있다면 주저 말고 다가가야 합니다.”
알레노 셰프가 세운 협회는 교통사고 유가족에게 심리적·법률적 지원을 제공한다.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예방이 중요하죠. 젊은이들을 보호하려면 사회적 인식이 높아져야 합니다. 제 주방에는 젊은 직원이 많아요.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제 책임이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는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고, 그들을 지켜내는 일이 곧 사회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협회 활동은 사회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올해 7월 프랑스는 교통 사망을 ‘사고’나 ‘과실치사’가 아니라 ‘도로 살인(homicide routier)’으로 규정하는 법을 공포했다. 상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례적 결과였고, 협회 활동이 중요한 동력이 됐다. 법안 이야기가 나오자 알레노 셰프는 한국의 법 규정을 궁금해했다. 음주 운전 사망 사고의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다는 설명에 그는 “이런 부분은 프랑스가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알레노 셰프는 한국을 자주 오가며 알게 된 대리운전 서비스를 협회 관계자들에게 소개했다. 술자리가 끝난 뒤 카카오 앱으로 기사를 불러 안전하게 귀가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협회 관계자들은 프랑스에는 이 같은 서비스가 없고, 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차를 운전하는 데 관대한 점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저녁 9시, 추모 행사는 소방관들의 행진으로 시작됐다. 교통범죄 현장을 가장 먼저 마주하고 대응하는 이들에게 예우와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이어 JR과 앙투안의 가족들이 짧은 스피치를 했고, 에펠탑 불빛이 반짝이며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이 이어졌다. 마지막은 사진이 철거되는 퍼포먼스였다. 우리 주변에서 잊히고 방치되는 가족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행사가 끝난 뒤 유가족들은 알레노 셰프에게 다가와 감사를 전했다. 한 어머니는 “평소엔 SNS를 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행사 소식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이 시간을 통해 주변 사람과 함께 자녀를 기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자녀의 기억이 혼자만의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알레노 셰프 역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무너지지 말고 강건하게 버텨야 한다. 가족을 지켜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이 큰 힘이 됐다고 고백한 그는 이젠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버팀목이 돼주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믿게 됐다. 행사 직후 울고 있던 학생 남매와 한참 대화를 나눈 그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지 묻자 “행복하자(be happy)고 했다”고 답했다. “슬픔 속에서도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날 행사에는 브리지트 마크롱 영부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교통사고로 언니를 잃은 경험이 있어 유가족 사진을 붙이는 퍼포먼스에 참여해 자신의 사진을 남겼다. 에펠탑 레스토랑 쥘 베른의 동료 직원들은 앙투안의 이름을 인쇄한 종이를 들고 추모했고, 총괄 셰프 프레데리크 앙통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SNS에 공유하며 그의 부재를 함께 기억했다.
앙투안알레노협회의 첫 해외 행사는 3년 전 서울 밍글스에서 열린 자선 갈라 디너였다. 강민구 셰프를 비롯해 한국 셰프 여섯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알레노 셰프는 “당시 함께해 준 한국인 셰프와 후원자들에게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추모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이야기가 공동체적 연대로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거치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속에서 새로운 현실 위에 삶을 다시 세워갈 수 있지 않을까. 알레노 셰프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 길이었다. 사회와 삶이 그에게 예기치 않은 책임을 요구했을 때, 그는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뛰어들어 예술과 공동체의 힘으로 응답했다.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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