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창호와 취약한 단열, 현대 생활에 맞지 않는 구조…. ‘불편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한옥의 가능성을 묶어왔다. 한옥이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그저 선조의 전통으로만 여기게 했다.
지난달 초 문을 연 강원 영월 ‘더한옥헤리티지 호텔’은 그 인식을 단숨에 뒤집는다. 전통 형식을 지키되 현대 기술로 불편을 걷어내고 새로움을 불어넣었다. 이곳에서 한옥은 더 이상 과거의 집이 아니다. 미래를 향해 살아 움직이는 문화 자산으로 거듭난다.더한옥헤리티지 호텔은 서강이 부드럽게 휘감아 흐르고, 수묵화 같은 선돌 봉우리가 병풍처럼 서 있는 영월 남면에 있다. 강이 300도로 빙 둘러 흐르고 겹겹이 쌓인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한 이곳은 ‘배산임수’ 조건을 갖췄다. 조정일 코나아이 회장은 이 터를 찾기 위해 1000일 넘게 서울에서 경기도, 강원도로 이어지는 여정을 했다. 그리고 ‘택리지’에서 말한 네 가지 조건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겸비한 이곳을 발견했다.
더한옥헤리티지 호텔은 건축면적 1697㎡, 연면적 1만1860㎡에 달하는 위용을 갖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 정전(1270㎡)보다 넓다. 크기만이 아니다. 섬세한 디테일에서 진면목이 드러난다. 단단한 기단과 나뭇결이 살아 있는 기둥, 거기에 얹혀 있는 기와 하나하나에서 세심한 미감이 돋보인다.
조 회장은 한옥의 가장 큰 숙제인 목재 변형을 막기 위해 10여 년간 고주파 마이크로파 건조 기술을 실험해왔다. 그 결과 뒤틀림 없는 기둥과 창틀을 구현했다. 여기에 전통의 결구 방식에 금속 구조를 보강해 안정성을 더했다. 창호는 전통적 미감을 유지하되 이중창과 특수 섬유 방충망으로 단열 및 실용성을 강화했다. 내부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각적 공간으로 완성했다. 그 안에서 나무 향, 그림자 흐름, 바람과 빛의 리듬이 사람을 편안히 감싼다.
한옥은 언제나 ‘안에서 밖을 보는 시선’을 중요시한다. 더한옥헤리티지 호텔에 서면 창호 너머로, 누각 너머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차경(借景)돼 들어온다.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건축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의 절제된 직선미로 하늘을 품고, 기단은 정갈한 석재로 땅의 기운을 받친다. 그 사이 공간은 사람 몸과 비례를 맞추며 ‘머무는 이’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기와 하나하나의 색조차 흙과 불이 만들어낸 자연의 빛깔을 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질 나무와 기와의 나이 듦이 기대되는 이유다.

객실은 코너스위트 산, 가온, 소담, 솔, 소담한실 등 다섯 가지 타입으로 마련했다. 모두 사계절의 차경을 담아내도록 배치했다. 방 안 조명부터 침대까지 기성품은 하나도 없다. 한옥은 검소해 보이지만 인테리어를 하기엔 무척 까다롭다. 한옥과 어울리는 가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조 회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직접 제작하는 더 어려운 길을 택했다.
부대시설에도 한국적 정서를 녹여냈다. 한식 파인다이닝 ‘몬토’, 제철 재료로 채운 다이닝 ‘나무’, 계절 풍광을 품은 라운지 ‘고요’, 장인의 손길이 머문 갤러리 ‘결’, 별빛을 감상하는 누각 ‘별재’. 각각의 이름이 시처럼 간결하고 그 공간이 주는 감각 또한 깊다. 갤러리, 회랑, 지하의 ‘처마정원’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곳이다. 위와 아래, 안과 밖,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자기 내면과 조우하는 틈이 열린다.더한옥헤리티지 호텔의 가치는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유네스코와 국제건축가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2024 베르사유 건축상’에서 호텔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단순히 한옥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혁신성, 문화 정체성을 동시에 평가받았다.
더한옥헤리티지 호텔은 한옥을 ‘살아 있는 유산’으로 되살려냈다. 건축이 단순한 공간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과 세계적 메시지를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한국적 미의 본질을 오늘에 맞게 되살려낸 결과다. 영월의 하늘과 강, 바람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전통은 새롭게 해석될 때 더욱 빛난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영월=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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