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을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구름대를 뒤섞어 대기 불균형을 일으키는 태풍이 올해 한 번도 우리나라에 근접하지 않아 이번 가을엔 유독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는 이달 중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수확과 파종을 해야 하는 농가엔 비상이 걸렸다. 야외 활동 성수기에 비가 자주 내려 레저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10일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집계한 서울의 지난달 강수량은 370.7㎜로 평년(141.5㎜)보다 2.6배 많았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9월 강수량이 100~200㎜ 수준에 머문 것과 대조적이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9일까지 서울 강수량은 62.8㎜로 평년의 10월 전체 강수량(52.2㎜)을 이미 넘어섰다.올가을 수도권에 유달리 많은 비가 쏟아진 것은 지난달 초 북쪽의 찬 공기가 빠르게 남쪽으로 확장한 영향이다.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차가운 기단이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남쪽에 있던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와 서해상에서 충돌해 자주 비구름대를 형성했다.
올해 태풍이 한반도를 계속 비켜 간 것도 가을비가 지속되는 원인으로 꼽힌다. 올 1월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태풍이 23개 발생했지만 국내에 영향을 준 태풍은 단 한 개도 없다. 한국이 태풍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2009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북쪽 찬 공기와 남쪽 더운 공기가 뒤섞여 5~10도가량 벌어진 두 기단 간 기온차가 줄어든다. 이렇게 섞인 두 기단은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며 비를 뿌리지 않는다. 반대로 올해처럼 태풍이 지나가지 않으면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따로 움직이다가 자주 충돌해 장마철처럼 정체성 비구름대를 형성해 잦은 비를 뿌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올해 태풍이 한 번도 오지 않은 것은 여름 내내 한반도가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라는 ‘이중 고기압’에 둘러싸여 태풍의 방향을 휘게 했기 때문이다. 폭염을 일으킨 두 고기압이 대기 중상층부를 틀어막자 열대 지역에서 발생한 태풍이 중국, 대만, 일본으로 경로를 틀었다.
수확을 앞둔 벼 농가도 비 피해가 적지 않다. 추수 시기에 비가 와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남 곡성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박모씨(62)는 “한창 알곡이 영글 시기에 비가 자주 내린 데다 잎에 반점이 생기는 ‘벼 깨씨무늬병’까지 돌았다”며 “벼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가을 성수기를 맞은 레저업계도 울상을 짓고 있다. 경기 용인시의 한 골프장에선 이날 비가 내려 160팀 중 약 80팀이 예약을 취소했다. 에버랜드 등 테마파크도 잦은 비에 야외활동을 꺼리는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길이 줄자 노심초사하고 있다.
가을비는 당분간 이어진다. 이번 주말 중부지방에 집중된 가을비는 다음주 초 전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11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경기북부 20~60㎜, 강원 중남부 10~40㎜, 서울·인천·경기남부 5~40㎜로 예보됐다. 이어 오는 13~15일 한반도 북서쪽에서 구름대가 접근하고 남쪽에서 수증기가 유입되면서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작물 파종과 수확 시기를 놓치면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뛸 수 있다”고 말했다.
류병화/김유진 기자 hwahwa@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