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디(BYD)의 럭셔리 브랜드인 양왕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U8’ 운전석에 앉아 목적지를 말하니, 알아서 기어를 넣고 핸들을 꺾었다. 내비게이션에 나온 대로 우회전 깜빡이를 켜더니 솜씨 있게 차선을 옮겼다. 좁은 골목에선 속도를 낮추고, 큰길로 빠지자 다시 높였다. 승차감으로 보나 운전 센스로 보나 웬만한 ‘베스트 드라이버’보다 나았다. ‘운전자’는 BYD가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기술인 ‘신(神)의 눈’. 기자가 한 일이라곤 10초에 한 번씩 핸들에 손을 갖다 대는 게 전부였다. 신의 눈은 시범 구간에서만 쓸 수 있는 테스트 기술이 아니라 양산 차량에 적용돼 중국 전역 도로에서 쓰이는 ‘현실의 기술’이다.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BYD는 “신의 눈 오류로 사고가 나면 전부 보상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업계에선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지 20여 년밖에 안 된 새내기 업체가 최첨단 기술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비결로 무한 경쟁에서 쌓은 생존력을 꼽는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쌓은 원가 경쟁력과 혁신 DNA가 BYD를 최강 전기차 기업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BYD의 힘은 연구개발(R&D)에서 나온다. 올 상반기에 쓴 R&D 비용은 295억위안(약 5조8300억원). 작년보다 50.8%나 늘렸다. 1만2000여 명의 R&D 인력은 이 돈으로 온갖 미래 기술을 시험한다. 여기에 중국 특유의 ‘996’(오전 9시 출근·오후 9시 퇴근·주 6일 근무)을 붙여 통상 4~7년인 신차 주기를 2년 남짓으로 줄였다.
BYD가 R&D에 힘을 주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다. 129개 중국 업체와 수십 개 수입 브랜드가 3000만대 내수 시장을 놓고 무한 경쟁을 벌이는 시장에서 승리하려면 ‘더 싸고, 더 좋은’ 자동차를 개발하는 길뿐이어서다. “경쟁은 자연의 법칙이다.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왕촨푸 BYD 창업주의 말 그대로다.
중국 정부는 2010년 친환경차 산업을 ‘7대 신흥 전략산업’으로 지정한 뒤 대규모 보조금을 풀고 규제를 완화해 수백 개 자국 기업을 무대 위에 올렸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폭스바겐, BMW 등 글로벌 메이커조차 그로기 상태로 내몰렸다.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 로컬 브랜드 점유율은 65.7%에 달한다. 10~20년 전만 해도 중국시장을 장악했던 글로벌 브랜드의 몫은 35%로 쪼그라들었다.
중국은 내수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세계 챔피언’이 되도록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2009년부터 15년간 중국 정부가 전기차 산업에 투입한 자금은 총 2309억달러(약 325조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소비자 환급, 세금 면제,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 정부 구매 등이 포함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해외 공장을 지을 때 저리로 대출해주거나 일대일로 등 국가 프로젝트와 연계해 해외 진출을 돕는다. 그 덕분에 BYD와 지리는 올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에서 각각 7위, 8위에 올랐다.
선전·상하이=신정은 기자/베이징=김채연 기자 newyearis@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