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캄보디아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돼 고문 끝에 숨진 가운데, 범죄조직이 그를 '21호'라 부르며 물건처럼 취급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는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르산 인근 범죄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현지 범죄조직이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정황도 나왔다.
14일 SBS 보도에 따르면 숨진 대학생 박 모 씨와 함께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감금됐던 40대 남성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박 씨 몸 상태는 엉망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 씨가 숨진 다음 날 감금 135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A씨는 "중국 조직원들이 박 씨는 '21호'라고 부르라고 지시했고 저는 '2호'로 불렀다"면서 "우리가 사람 아닌 물건이나 소모품이라고 느껴졌다. 자신들 이권을 위해 쓰는 타이어처럼. 타이어가 닳으면 버리지 않냐"고 털어놨다.
그는 끔찍한 폭행과 고문에 대해 "2층 침대에 수갑으로 묶어서 몽둥이로 때리고 전기 고문을 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현지 범죄조직과 연결된 국내 연계 조직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섰다. 국내 연계 조직은 '점조직' 형태로 활동해 수사망을 피해 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앞서 박 씨는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르산 인근 범죄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씨가 캄보디아로 출국한 후 조선족 말투를 쓰는 한 남성이 박의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에서 사고를 쳐서 감금됐다. 5000만원을 보내라"고 협박했다.
정부는 지난달 경찰 인력을 캄보디아 현지에 파견, 시신 확인과 송환을 추진했으나 캄보디아 정부의 협조가 늦어져 박 씨의 시신을 2개월째 송환하지 못하고 있다.

캄보디아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최소 수십 개의 범죄 단지가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방 빼는 캄보디아 범죄단지'라는 제목으로 두 장의 사진이 공유됐다. 범죄단지로 추정되는 한 건물에서 여러 사람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으며 차량에는 문서, 컴퓨터, 가방 등이 담긴 박스가 실린 모습이다. 네티즌들은 "경찰이 범죄자들 도주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13일 국제엠네스티가 발간한 보고서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다'(6월 발간)에 따르면 16개 도시에 53개 사기 범죄 단지(Scamming Compound)가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앰네스티는 18개월간 모은 피해자 58명, 생존자 365명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범죄 단지의 위치를 특정했다. 범죄 단지는 수도 프놈펜, 남서부 항구도시 시아누크빌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태국,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소도시에 포진해 있었다.
엠네스티와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캄보디아에 범죄 단지가 형성된 시기는 2020년대부터다. 2010년대 캄보디아에는 막대한 중국 자본이 투입됐고, 그중 대부분은 카지노·호텔·리조트 건설에 사용됐다. 이후 이권을 노린 중국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이 봉쇄되자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한 범죄 조직은 온라인 사기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호텔, 리조트 등 기존 인프라는 범죄 단지로 변질됐다.
이처럼 대규모 범죄 단지가 공공연히 운영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단속과 처벌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8년 동안 독재 체제가 지속된 캄보디아 정부의 부패와 범죄조직들과의 유착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엠네스티 확인 결과 시설 3분의 2 이상은 경찰의 급습 이후에도 계속 운영 중이었다. 엠네스티는 "경찰의 실패는 사기 시설의 우두머리들과 협력하거나 그들에게 협조하는 데서 비롯한다"며 "다수의 '구조' 활동을 펼칠 경우, 경찰은 해당 시설에 들어가 수사를 벌이는 대신 그저 문 앞에서 매니저나 경비원을 만나는 데 그치곤 했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 사회 전반에 부패가 만연하고 경찰 등 공무원마저 뇌물에 취약해 범죄자들의 피난처, 나아가 국제 범죄의 신흥 중심지가 되고 있다. 올 5월엔 이른바 '범죄단지'로 불리는 사기 콜센터에서 한국인 15명이 무더기로 붙잡혔는데, 현지 경찰과 이민당국의 부패 탓에 이들 한국인이 국내로 송환되지 못한 채 다른 범죄 조직에 팔려 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캄보디아 외에도 동남아시아 곳곳이 사이버 사기 범죄의 온상으로 꾸준히 지목돼 왔다. 최근에도 태국 파타야, 베트남 목바이 등에서 사이버 사기 조직이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 또한 범죄 조직이 동남아 지역을 넘어 인근 다른 지역까지 이주하는 흐름도 포착되고 있다.
실제 태국으로 출국했다가 캄보디아에서 실종 신고가 접수된 사례도 있다. 광주에서도 지난 8월 B(20대)씨가 연락되지 않는다는 가족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출입국 기록을 통해 그가 두 달 전 태국으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하고 행방을 쫓고 있다.
가족들은 B씨가 태국에서 캄보디아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모르는 번호로 '살려달라'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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