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5일 08:2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태광산업에 이어 KCC가 지난달 교환사채(EB) 발행 계획을 철회하면서 대기업들의 EB 발행이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자사주 소각 법안 입법을 앞두고 대기업들이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을 계획했으나 행동주의펀드와 개인투자자의 강한 반발에 잇따라 무산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자사주 소각 법안 입법이 임박한 만큼 EB 발행 시장은 막판 눈치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은 철회, 중소기업은 발행...시장 혼란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KCC는 자사주를 기초로 한 EB 발행을 철회하고 대체 수단을 모색하고 있다. KCC는 지난달 라이프자산운용로부터 주주서한과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을 받았다. 지난 7월 행동주의펀드 트러스톤의 공격을 받은 태광산업에 이어 두 번째다. 증권업계에서는 KCC가 3조4275만주(10.11%) 규모의 삼성물산 지분을 기초로 한 EB 발행에 나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KCC 측에서는 “구체적인 자금조달 계획은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EB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나 타사 주식을 기초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투자자가 채권의 원리금 대신 해당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있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상승하고 있고, 발행 후 일주일부터 주식으로 교환 가능해 자산운용사들이 적극 투자했다. 주가 상승 시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가 상승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주들의 반발을 받는 기업은 KCC와 태광산업 뿐이 아니다. 다만 시가총액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은 EB 발행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화장품제조(581억원), 세아세강지주(193억원), 종근당(611억원) 등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추석 연휴 전 수백억대 EB 발행을 공시하면서 주주들의 반발을 샀지만, 발행 계획을 철회하지 않았다.
자산운용사도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태광산업의 EB 발행을 저지한 행동주의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쿠쿠홀딩스 EB발행에 30억원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EB발행의 배경에 경영권 분쟁과 자금조달 수요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며 “행동주의펀드도 기업 규모나 이해관계에 따라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석 이후 EB 발행 '눈치보기'
지난달만 해도 기업들의 ‘묻지마 EB 발행’이 이어졌다. 기업이 자사주를 이용해 EB를 발행하면 자산운용사가 블라인드펀드 등을 이용해 물량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이미 기업과 운용사가 EB 발행 규모를 정한 뒤 증권사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달 EB를 발행한 기업은 37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배 늘었다.통상 EB나 CB(전환사채) 등이 발행을 통해 시장에서 소화될 수 있는 규모는 대략 2500억~3000억원 수준이지만,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PEF)가 EB 전용 크레딧펀드까지 조성하면서 대형 EB 발행도 가능해졌다. NH헤지자산운용 역시 EB 전용 펀드를 조성하며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
다만 추석 이후 EB 발행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개정안을 내놓을 계획인 만큼 이 시점에 EB를 발행할 경우 정부와 여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다.
행동주의펀드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기업과 운용사 모두 EB 발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LP(유한책임조합원)의 자금 집행이 대부분 이달 마무리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11~12월에 장부를 결산하는 ‘북클로징’이 있어 올해 EB 발행은 마루된 셈이라는 설명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올해 EB 시장은 지난달까지 자금이 집중되면서 투자 여력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10~11월에는 북클로징(결산)을 앞두고 있어 EB 발행하는 기업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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