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음모론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팩트를 좇고 좇아도 가까이 갈 수 없을 때 온갖 상상력이 발휘된다. 캄보디아는 항상 음모론을 자극하는 막다른 길이었다. 희대의 사기 범죄 자금이 이곳에서 사라지는 일이 되풀이됐지만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 검찰과 경찰, 금융감독원도 마찬가지다.한국인 납치 실종 사건이 쏟아지고 있는 무법천지 캄보디아는 블랙홀 같은 곳이다. 사람도, 돈도, 실체적 진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캄보디아 사태를 계기로 불법자금 세탁 의혹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저축은행 도미노 부실을 촉발한 부산저축은행 사태도 캄보디아 개발 건에서 시작됐다.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부근에 ‘캄코’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던 이모씨에게 3000억원을 빌려줬다. 부산저축은행 경영진과 같은 고교 출신인 이씨는 학연·지연을 앞세워 캄보디아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고 파산했다. 그 여파로 부산저축은행까지 문을 닫으면서 3만8000여 명이 피해를 봤다. 당시 정치인 개입 의혹이 제기됐지만 수많은 비화만 남겼을 뿐이다.
캄보디아 국경을 넘으면 수사는 멈춘다. 계좌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으로 자금이 넘어가면 반년 가까이 걸리더라도 현지 금융당국의 답변이 오긴 온다. 하지만 캄보디아로 넘어가면 답이 없다. 수사기관도 자포자기한다. 캄보디아는 금융당국 국제기구인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정회원도 아니다. 금융위원회가 2017년 캄보디아 증권거래위원회와 감독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은 적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한국인 납치 실종 사태에서 봤듯이 경찰 공조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범죄자들이 캄보디아를 애용하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캄보디아를 오랜 기간 여러 방면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할 뿐이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강대국 미국과 3500억달러에 이르는 굴욕스러운 관세협상으로 치이고 있는 상황에서 캄보디아 같은 후진국에도 호구 잡혀 있는 현실이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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