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했어요. 그래서 한국어 가사를 넣는 게 중요했죠. 미국 싱어롱 현장에서 한국인이 아닌 아이들이 '영원히 깨질 수 없는' 부분을 부르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골든(Golden)'을 작곡하고 직접 부른 작곡가 이재(EJAE·본명 김은재)는 이 같이 말했다.
이재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성공 이후 처음으로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리였다.
'케데헌'은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음악으로 악령과 맞서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미국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제작했다. 헌트릭스는 노래를 통해 팬들과 교류하며 마음을 얻어 악령을 물리치고 세계를 지키는 혼문을 완성한다. 이들의 경쟁 상대는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다.
'케데헌'은 넷플릭스 역대 흥행 콘텐츠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OST까지 국내외 음악 차트를 휩쓸며 돌풍 급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골든'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7주 연속 1위이자, 비연속으로 통산 8주 1위를 차지했다.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도 정상을 꿰차면서 빌보드 메인 양대 차트를 동시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K팝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성과는 더욱 의미가 크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재는 '골든'을 비롯해 '유어 아이돌(Your Idol)',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을 작곡했고, 헌트릭스의 메인 캐릭터인 루미의 가창을 맡기도 했다.
과거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년 간 연습생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그는 이후 레드벨벳, 카드, 엔믹스 등의 곡을 작업하며 K팝 작곡가로 활약했다. 그러다 '케데헌'을 만나 제대로 빛을 봤다. 이재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2개월 전에는 그냥 작곡가였는데, 갑자기 사랑과 관심을 받게 돼 낯설고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골든'은 후렴에서 폭발적인 고음이 터져 나오는 곡이다. 탄탄한 이재의 가창이 큰 사랑을 받으며 '고음 챌린지'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이재는 매기 강 감독을 언급하며 "감독님이 현실적이지 않은 고음을 넣으라고 했다. 루미는 혼문을 닫아야 하지 않나. 그에 대한 간절함이 표현되어야 해서 의도적으로 고음을 넣었다. 내 기존 음역보다 높게 만들었다. 나 자신도 챌린지를 했다"며 웃었다.
이어 "K팝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게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며 "외국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아이 러브 K팝, 아이 러브 K드라마'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이 너무 멋있다"고 강조했다.

'골든'은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에 '레코드 오브 더 이어', '송 오브 더 이어' 등 다수 부문에 출품됐다. 후보 지명, 수상 등에 대한 기대감이 흘러나오는 상황. 이에 이재는 "(상을) 너무 받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오스카(아카데미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서도 "(상을 받는다면) 그냥 기절이다"라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케데헌' 작업은 이재 개인에게도 특별한 일이었다. K팝 아이돌을 꿈꾸며 오랜 연습생 기간을 버텼지만, 꿈이 좌절되는 경험을 한 그는 헌트릭스 루미를 통해 기량을 펼쳤고 마침내 목소리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이재는 팬이 생겼다는 사실에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팬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분들이지 않나. 날 모르는데 응원해주는 게 너무 아름다운 경험이더라. 악플이 있어도 날 보호해주는데 눈물이 나더라. 친절하고 다정한 팬들 덕에 나도 더 그렇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가슴 아픈 경험마저 성장의 씨앗이 됐다고 의젓하게 밝히기도 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연습생 생활을 했다. 떨어지고 거절당하면서 상처받긴 하지만, 성장하기 위해 고생도 하는 것"이라면서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난 거절당하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떨어져도 괜찮다. 또 하면 되지'라는 마음과 그 과정에서 오는 성장이 중요했다"고 털어놨다.
좌절의 순간이 올 때면 모친이 자주 했던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되새겼다고 했다. 이재는 "계속 안 된다고 말하면 정말 안 되는 거다. 할 수 있다면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설득했다"고 밝혔다.
그는 "음악이 날 살렸다. 가수의 꿈도 있었지만, 이 분야에는 작곡가, 엔지니어, 작사가 등도 있지 않나. 연희동에서 홍대까지 한 시간을 걷고, 인근 카페에서 밤 늦은 시간까지 비트를 만들며 날 표현했다. 그런 식으로 날 찾았다"고 덧붙였다.
이재는 "아무리 작은 기회여도 100%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K팝 연습생들에게 "거절은 거절이 아니라 방향을 새로 잡도록 도와주는 거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성장해야 한다. 또 직업윤리가 중요하다. 데드라인을 지키고 섬세하게 내가 가진 100%를 해내는 것이 기본"이라고 조언했다.

이러한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본인이 가진 100%를 쏟아낸 '케데헌' OST가 나올 수 있었다. 이재는 "감독님이 뮤지컬 노래가 아닌, 빌보드에서 경쟁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게 제일 어려웠다. K팝스러우면서 동시에 메인 스트림인 팝처럼 만들어야 했다. 여기에 스토리까지 담겨야 했다"고 전했다.
K팝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재는 "함께 작업한 마크 소넨블릭이 뮤지컬 쪽에 있는 분이라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이건 K팝답지 않다', '조금 더 심플하게 가자', '멜로디가 중요한데 조금 더 멜로디에 맞게 하자' 등의 이야기를 계속했다"고 밝혔다.
최근 K팝 업계에서 해외시장을 겨냥해 일제히 현지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그는 '고유의 정체성'을 언급했다.
이재는 "K팝은 섬세한 걸 아주 잘하고 (작업 과정이) 효율적이다. 이걸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서로 배우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K팝이면 'K'이지 않나. 그럼 한국어도 있어야 한다. 한국어는 정말 아름답다. 난 영어와 한국어를 다 알기 때문에 '골든'에서도 둘이 잘 섞일 수 있게끔 하는 걸 신경 썼다"고 말했다.
이어 "K팝이라면 너무 팝스럽게 가려고 하기보다는 한국적인 것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본다. 한국 문화로만 접근하면 현지인들이 이해가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퓨전이 중요한데, 그 안에서도 김치는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는 오는 24일 솔로곡 '인 어나더 월드(In Another World)'를 발매한다.
그는 "앞으로 계속해서 작곡가로 성장하고 싶다. K팝뿐만 아니라 팝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아티스트로서도 곡을 계속 만들고 싶다. 작곡가라서 노래가 많은데, 그중에서 저한테 제일 와닿는 노래들을 부를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에스파 등과 협업하고 싶은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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