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달라붙는 새빨간 속옷 아래로 드러난 맨 다리와 나이키 신발. 제우스의 아들이자 와인과 향락의 신 '디오니소스'가 충격적인 비주얼로 무대 위에 올랐다. 지난 10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프롤로그/디오니소스'에서다.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비극을 다룬 '안트로폴리스(Anthropolis)' 5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테베 건국 과정을 소개하는 1막 '프롤로그'와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신적 지위를 부정하는 테베 왕가를 벌하는 2막 '디오니소스'로 구성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윤한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교수는 16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작품 전반에 철 지난 웃음 코드를 배치하는 등 B급 코드를 가미했다"며 "그리스 비극을 재밌게 즐기실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쓴 작품으로 202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초연했다. 당시 5부작을 3일간 몰아보는 마라톤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이 한국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극단은 오는 26일까지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를, 다음 달 6일부터 22일까지 2부 '라이오스'를 선보인다. 3~5부는 내년에 공연한다.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러닝타임이 3시간(인터미션 포함)에 달하지만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배우 18명이 펼치는 역동적인 춤과 노래, 라이브 카메라를 활용한 감각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인다. 테베의 펜테우스 왕이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하는 장면에선 12·3 비상계엄을 연상시키는 자료 화면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윤 연출은 "작품을 준비하며 비극이라는 장르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픔이나 상처를 '치유'라는 말로 덮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 달 베일을 벗는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라이오스가 테베의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김수정 연출은 "오이디푸스가 비극적 인물이 된 이유를 라이오스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서 짚는 동시에 피해자로서의 라이오스도 보여줄 것"이라며 "세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극과 폭력을 우리가 끊어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고 했다.
무대에는 단 한 명의 배우만 선다. 1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전혜진이다. 김 연출은 "전혜진 배우가 18인역을 연기한다"며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많은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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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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