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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대신 결정해주는 시대, 인간은 과연 자유로운가

입력 2025-10-17 08:28   수정 2025-10-17 09:27



아침에 휴대전화를 켜면 뉴스 앱이 ‘당신이 관심 있을 만한 기사’를 먼저 보여주고, 음악 앱은 기분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자동으로 재생한다. 출근길엔 지도 앱이 예상 교통량을 계산해 경로를 바꾸고, 점심시간엔 배달앱이 ‘오늘 인기 메뉴’를 추천한다. 저녁이 되면 쇼핑몰 앱이 아침에 검색했던 상품을 다시 띄우고, 유튜브·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다음으로 볼 만한 콘텐츠'를 권한다. 모든 게 편리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오늘 스스로 고른 게 있었던가?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 사회학과 석좌교수 앤서니 엘리엇의 신간 <알고리즘 포비아>는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술이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대신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듯하지만, 그 대가로 인간은 점점 더 예측 가능한 존재로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버, 아마존, 넷플릭스 등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 속에 숨어 있는 통제의 논리를 파헤친다. 우버 기사 알렉산드루가 평가 시스템 오류로 정당한 해명 기회도 없이 ‘자동 해고’된 사건은 상징적이다. 회사는 “시스템에 오류가 있을 리 없다”는 말 한마디로 그의 호소를 무시했다. 이 말은 법보다 강했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현대 사회의 권력이 ‘자동화된 명령 체계’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명령은 투명해졌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은 오류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감시를 내면화한 채 스스로를 관리하는 존재가 된다.

아마존 물류창고의 노동자 통제 시스템 역시 자동화된 감시의 전형이다. 스캐너로 물건을 찍을 때마다 모든 동작이 기록되고, 몇 초간 멈추면 즉시 경고가 뜬다. 휴식조차 데이터로 계산되는 이 구조 속에서 인간의 리듬은 ‘비효율’로 규정된다. 피로, 불안, 수치심이 모두 생산성 지표로 환산되는 세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기계의 하위 알고리즘으로 존재한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노동의 자동화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기계의 규율을 내면화하는 새로운 통치의 형태라고 지적한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은 감정의 영역으로 확장된 통제의 예다.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취향 자체를 설계한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이미 예측된 선택지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불확실성을 없애주겠다는 약속은 달콤하지만 시스템은 오히려 불안이 지속될 때만 작동한다. 지루함과 불안을 계산해 자극을 제공하고, 자극은 다시 클릭을 부른다.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설계한 욕망의 소비자가 된다. 편리함의 기술은 결국 불안을 관리하는 감정의 기계로 변한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를 문화적 상징으로 확장한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등장한다. 드라마의 게임 속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믿지만, 모든 결정은 이미 규칙 속에 예측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알고리즘 사회의 축소판으로 읽는다. 인간은 경쟁의 불안 속에서 스스로 시스템에 적응하며, 그 안에서 타인을 제거함으로써 잠시 안도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의 행동이 끊임없이 평가되고 기록되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기술과 불안의 관계를 개인의 심리 차원을 넘어 사회적 구조로 확장한다. 기술은 인간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듯하지만, 오히려 더 빠른 속도와 더 많은 결정을 요구한다. 메시지 하나, 클릭 하나마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피드백을 받으며 ‘즉각성의 중독자’로 살아간다. 사유의 시간은 사라지고, 선택의 순간만 남는다.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말을 인용한다. “네트워크는 인간의 몸보다 400만배 빠르게 움직인다. 결국 인간은 속도에 패배한다.” 그는 이 속도의 패배가 만들어낸 감정이 바로 현대인의 불안이라고 진단한다.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강박,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기계’ 앞에서 느끼는 모멸감, 그리고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이 모두 기술 시대의 심리적 비용이라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인간관계의 영역도 재구성한다. SNS의 ‘좋아요’와 스트리밍 플랫폼의 추천 시스템은 인간의 친밀성을 점수화하고, 감정을 데이터 흐름으로 단순화한다. 사랑과 우정, 공감이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정리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플랫폼이 기억한 흔적으로만 남는다. 저자는 “인간은 점점 더 쉽게 연결되지만, 점점 덜 친밀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기술을 비난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기술을 인간의 집단 무의식으로 바라본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투사된 사회적 거울이며, 우리가 스스로 만든 신화라는 것이다. 그는 기술 비관론자도, 낙관론자도 아니다. 다만 예측 알고리즘이 인간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을 ‘계산 가능한 존재’로 축소시킨다고 경고한다.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은 기술을 통제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기술이 인간의 불안을 통제한다.

책은 불안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성찰의 에너지로 삼으라고 말한다. 불안은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며, 바로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감각이기도 하다. 기술의 시대에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책은 이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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