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 시대를 맞아 블로그를 개설하거나 유튜브 채널을 오픈해 게시물을 올리는 이가 많다. 처음에는 ‘내 마음대로 써서 내 마음대로 발표’할 수 있겠지만 구독자가 늘어나면 ‘정기 업로드’라는 마감에 쫓기게 된다.
원고료를 받는 직업 작가, 방송사나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자라면 ‘내 마음대로 써서 내 마음대로 발표’할 수가 없다. 원고 청탁서에 맞춰, 기획 의도에 맞게 생산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취재의 어려움, 글쓰기의 고통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가장 힘든 것은 ‘마감’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글은 마감이 쓴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학생들에게 마감이란 과제 제출 기한일 것이다. 시험도 일종의 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인도 정해진 기한 내 맡은 일을 해야 하는 마감의 고통에 시달린다. ‘마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마감을 ‘데드라인(deadline)’이라고 하겠는가.
<작가의 마감>을 기획하고 번역한 안은미 작가는 “수많은 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만한 책을 꾸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하나하나 고르고 언어를 찬찬히 매만졌다”고 출간의 변을 전했다. ‘책장 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2명의 만화가가 원고 마감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자 책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장면을 보다가 ‘위대한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그길로 일본 유명 작가의 전집 목록에서 마감과 관련된 글 50편을 하나하나 찾아내 이 책이 탄생했다.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한 30명의 일본 유명 작가는 마감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어떤 수필이든 열 매쯤 쓰지 못할 리 없건만, 이 작가는 벌써 오늘로 사흘이나 웅얼웅얼 읊조리며 쓰고는 조금 있다 찢고 또 쓰고는 조금 있다가 찢고 있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가의 초상’이라는 글을 읽으면 서두를 시작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모든 글은 매혹적인 서두로 시작해야 하고, 작가들은 명문장을 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1948년 세상을 떠난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은 지금 종이가 부족한 상황이라 이렇게 찢어대면 아까운데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만 찢어 버린다”라고 썼는데, 요즘 작가들은 종이 대신 자판을 두드리고 지우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한다.
<인간 실격>에서 과감한 표현을 서슴지 않던 다자이 오사무가 종이 찢기를 되풀이한 이유는 “수필은 소설과 달리 작가의 언어도 날것이기에 매우 조심해서 쓰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결코 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라는 글에 잘 드러난다.
<안즈코> <꿀의 청취>를 쓴 무로 사이세이는 폐렴으로 입원해 의사 몰래 쓴 ‘홀리다’라는 글에서 “뭔가 쓰려고 마음먹는 순간, 예전 체력이 슬슬 돌아옴을 느낀다. 이제 써볼까 할 때는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을 때보다 확실히 병이 뒤로 저만치 물러나는 것 같다. 조금씩 건강해지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힘들지만 힘이 되는 건 글쓰기’인 작가들의 마음을 대변한 내용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마감이 있다. 마감의 마력은 데드라인을 통과할 때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지는 데 있다. 도전적이거나 긍정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유스트레스(eustress, 좋은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때문이다.<작가의 마감>에서 대가들이 당면 과제를 멋진 결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면 ‘마감 잘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