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인류의 역사가 보인다.고고학자 윌리엄 테일러가 쓴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는 말과 함께 뻗어나간 인류의 문명사를 추적하는 책이다. 유라시아부터 남미 대륙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말의 고장’에서 연구 활동을 한 저자의 풍부한 사료가 담겼다.
책은 말의 조상을 파헤치는 여정에서 시작한다. 소행성 충돌에 따른 공룡 멸종 이후 북반구 대륙 화석에서 이른바 ‘새벽말’이라는 개체의 흔적이 발견됐다. 키가 30㎝에 불과하던 이 동물은 진화를 거듭하며 인류 문명사를 함께 걸었다. 달리기에 최적화된 긴 다리와 질긴 풀도 단번에 잘라낼 수 있는 튼튼한 치아가 이들의 생존 비결이었다.
야생마를 사냥하던 초기 인류는 점차 말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거칠고 빠른 말을 다루기 위해 입에 재갈을 물렸고, 인간의 편의에 따라 물건을 운송시켰다. 이 과정에서 말의 치아가 재갈에 부딪히며 마모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말의 순응은 인간의 지배력으로 이어졌다. 말의 고삐를 쥔 인간은 더 멀리 이동했고, 더 넓은 땅을 차지했다. 진시황도, 바이킹도 말의 힘을 빌려 세력을 키웠다. 진시황릉에 묻힌 테라코타(구운 점토) 말 모형과 바이킹 배 안에 매장된 수많은 말들이 그 증거다.
18~19세기 산업화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말의 힘을 빌렸다. ‘피트 포니’라고 불리는 광산용 조랑말은 서유럽과 그 식민지의 좁고 어두운 갱도 안에서 끊임없이 석탄을 실어 날랐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며 인류와 동행해 온 말들의발굽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할 것이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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