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전역에서 열린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조롱 섞인 영상을 공유하면서도, 언론 인터뷰에서는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시위대의 비판을 비웃되 직접 충돌은 피하는 '강온 양면전략'으로 여론전에 나선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그들은 나를 왕으로 지칭하지만, 나는 왕이 아니다"라며 "이번 셧다운 사태는 민주당이 실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불필요한 복지 프로그램을 줄이고 민주당이 15년간 추진해온 200억 달러 규모 사업도 없애고 있다"고 말했다.

'노 킹스' 시위는 전날 미국 50개 주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정부 셧다운 장기화, 이민자 대규모 추방, 대외 원조 삭감 등 트럼프 행정부의 권위주의적 행보를 비판하는 취지다.
시위대는 "1776년 이후 왕은 없다", "우리의 마지막 왕은 조지"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고, CNN 등에 따르면 약 700만 명이 전국 2700여 곳에서 시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다음 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AI로 제작된 20초짜리 영상을 공유했다.

영상에는 왕관을 쓴 트럼프 대통령이 '킹 트럼프'라고 적힌 전투기를 몰고 시위대 위에 갈색 오물을 퍼붓는 장면이 담겼다. 영화 탑건의 삽입곡 'Danger Zone'이 배경음으로 흐른다.
해당 영상은 풍자 밈 제작 계정이 "트럼프 대통령이 노 킹스 시위에 잠시 등장했다"는 글과 함께 처음 게시한 것으로, 트럼프가 이를 아무 설명 없이 공유하며 화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SNS 밈을 통해 비판 여론을 희화화하면서도, 인터뷰에서는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말해 자신을 '민주적 리더'로 포장했다. 비판을 에너지로 바꾸는, 트럼프식 정치의 전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 진영 인사들도 이를 잇달아 퍼 날랐다.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노 킹스 시위에 대한 트럼프의 응답"이라며 해당 영상을 게시했고, JD 밴스 부통령은 왕관을 쓴 트럼프 앞에 민주당 의원들이 무릎을 꿇는 AI 영상을 올렸다.
반면 배우 로버트 드 니로, 마크 러팔로, 지미 키멜 등 유명 인사들은 시위를 공개 지지하며 "민주주의를 빼앗으려는 자칭 왕, 도널드 1세에 맞서 우리는 일어서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화당 지도부는 시위를 "미국 혐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폭력과 파괴는 절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며 주방위군과 경찰력을 투입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당일 플로리다 자택에서 한국·일본·대만 기업 대표들과 골프를 쳤고, JD 밴스 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인근 펜들턴 해병대 기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2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를 "노 킹스 시위에 맞불을 놓기 위한 행보"로 해석했다.
이번 시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대규모 반(反)트럼프 시위다. 지난 6월 14일 첫 집회에는 5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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