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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의 새 표준…TDF는 기본, ETF는 필수

입력 2025-11-03 13:57   수정 2025-11-10 08:11

[커버스토리]



글로벌 퇴직연금 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품은 타깃데이트펀드(TDF)와 멀티에셋 포트폴리오다. 미국만 봐도 2024년 중반 기준 TDF가 확정기여(DC)형 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가입자의 58%가 단일 TDF를 보유하며, 신규 자금의 68%가 TDF로 유입되고 있다.

마스터트러스트 제도를 운영하는 영국에서도 디폴트 운용은 타깃데이트·라이프스타일 방식이 사실상 표준이 됐다. 호주 역시 디폴트는 싱글·라이프사이클 또는 멀티에셋 구조로, 마이슈퍼(MySuper·디폴트옵션) 56개 중 25개가 라이프사이클(TDF)이다. 결론적으로 TDF는 퇴직연금 시장의 핵심 상품이다.

TDF·ETF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시대’ 본격화

여기에 상장지수펀드(ETF)가 더해진다. 직장형 퇴직연금은 ETF의 선택 폭이 아직 좁지만, 연금 선진국들이 공통으로 보유한 개인퇴직연금 계좌(한국의 IRP 유사)에서는 ETF가 급성장 중이다. 예컨대 미국의 개인퇴직계좌(IRA)는 가계 은퇴자산의 38%를 차지할 만큼 덩치가 크고, 이 영역에서 ETF는 10.3조 달러(전체 자산의 26%)까지 커지며 보편적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영국, 호주, 캐나다 등도 개인형 계좌에서 ETF 채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뮤추얼펀드의 ETF 클래스 허용까지 논의될 정도로, ETF는 글로벌 퇴직연금에서 확실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퇴직연금데이터는 한국 시장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 TDF 중심의 디폴트옵션 시장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디폴트옵션 제도 시행 이후 근로자 자산이 자동으로 TDF로 유입되면서, 운용자산 규모뿐 아니라 ‘은퇴 시점 기반 자산 배분’이라는 개념이 글로벌 시장의 표준 언어로 자리 잡았다. 최소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단기 수익률 중심의 펀드 경쟁이 아니라, 글라이드패스, 위험 관리·글로벌 분산 전략을 중심으로 한 장기 투자 문화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로 확산될 것이다.

둘째,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ETF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세제 혜택, 낮은 비용, 투명한 구조 덕분에 ETF는 이미 개인투자자에게 익숙한 상품이다. DC·IRP 가입자가 디폴트옵션 또는 자신의 자산 배분을 통해 TDF에 투자하면서도, 자신의 성향에 맞춰 ETF로 직접 리밸런싱하거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다. 특히 TDF+ETF 결합형 포트폴리오는 ‘자동+자율’의 균형을 맞춘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퇴직연금데이터는 TDF와 ETF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시대’가 한국에서도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TDF는 연금 투자의 기본 토대이자 자동화된 생애 주기 솔루션이 되고, ETF는 개인 맞춤형 자산관리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국퇴직연금데이터는 한경머니와 공동으로 진행한 ‘베스트 퇴직연금 어워즈 2025’를 위한 리서치의 일환으로 국내 41개 연금사업자의 TDF, ETF, 디폴트옵션 상품의 운영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와 시사점을 살펴본다.



TDF
운용 펀드 180개 넘어…투자 선택지 다양


현재 한국 시장에는 클래스(판매 상품 수) 기준 1800개가 넘는 TDF가 존재하며, 서로 다른 포트폴리오(운용 펀드)만 180개 이상이다. 퇴직연금 사업자별로 제공하는 상품 수의 편차가 크다. 상위 사업자는 500개 이상, 상위 톱10은 300개 이상을 제공하는 반면, 하위 사업자는 숫자가 크게 못 미친다. 물론 클래스별로 모두 카운트했기 때문에 ‘숫자가 많다=좋다’로 단정할 수는 없다(보통은 대표 클래스 몇 개가 자금을 끌어모은다). 그럼에도 숫자가 많다는 것은 다양한 운용 펀드를 제공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KB국민은행,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신한은행, KB증권,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우리은행, 하나은행이 가장 다양한 TDF 라인업을 제공하는 퇴직연금사업자다.

2025년 6월 30일 기준, 한국퇴직연금데이터의 글라이드 리서치가 추적하는 총 184개의 TDF 운용 펀드를 기반으로 작성된 글라이드패스 분석은 한국 TDF 시장의 자산 배분 전략과 은퇴 시점별 포트폴리오 구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글라이드는 자체 개발한 컨센서스 글라이드패스를 통해 은퇴 시점까지 남은 기간에 따른 평균 주식 및 채권 비중의 변화를 정량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퇴까지 25년이 남은 시점의 평균 주식 비중은 약 71.03%, 은퇴 직전 시점은 37.11%, 은퇴 후 5년이 지난 시점에는 36.17%까지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다수 TDF가 퇴직연금제도에 부합하는 ‘적격 TDF’ 구조를 기반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한국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상품은 TDF다.




같은 빈티지(목표 은퇴 시점) 안에서도 주식 배분은 2030부터 2055 빈티지까지 대략 20% 수준의 차이를 보인다. 즉, 은퇴 예정 연도가 같아도 서로 다른 주식 비중을 가진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돼 있으며, 상품이 다양할수록 각기 다른 위험 성향의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서비스 체계가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이러한 차이를 한눈에 비교해주는 곳이 거의 없다. 둘째,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이를 이해하고 실행할 만큼 충분한 퇴직연금 교육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ETF
증권사, 투자 가능 전 종목 제공…편의성도 압도적


한국 퇴직연금에서는 국내 상장 ETF만 투자 가능하며, 이 중 인버스 등 부적합 상품은 제외된다. 결과적으로 약 900개의 ETF가 퇴직연금에서 투자가 가능하다. 증권사는 사실상 전 종목 제공이 일반적이다. 비(非)증권사 중에서는 교보생명보험이 가장 많은 ETF를 제공하고, 삼성생명보험이 그 뒤를 잇는다. 아직 ETF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 보험사도 적지 않다. 거의 모든 은행은 일부를 제공한다.

제공 개수 외에도 주문·체결 방식과 속도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증권사는 연금계좌라도 거래시간대 근접 실시간 체결, 시세·호가 반영, 주문 유형·리밸런싱 도구 지원이 가능하다. 은행, 보험은 하루 1~수 회 배치 체결, 컷오프가 있어 입력과 실제 체결 시점이 어긋나는 경우가 생긴다. 개인퇴직연금에서 ETF 투자를 고려한다면, 증권사가 압도적 우위를 가진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퇴직연금 내에서 투자가 가능한 ETF는 약 900개이며, 이 중 약 200개는 안전자산, 나머지 700개는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이 위험자산 가운데 국내외 섹터 및 테마형 ETF가 약 500개를 차지하고, 나머지 200개 중에서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코스피200 등 주요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가 약 120개에 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ETF 상품 라인업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은행, 보험사의 경우에도 ETF 중심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는 핵심적이라 할 만한 주요 상품을 대부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상품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핵심 ETF를 중심으로 필수 라인업을 갖추려는 노력이 뚜렷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리서치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ETF만이 아니다. TDF 라인업에서도 은행, 보험사는 증권사에 비해 상품 구성이 현저히 제한적이었다. 상품의 폭뿐 아니라 체결 경험, 운용 도구, 거래 속도 등에서도 퇴직연금사업자 간 격차가 명확히 존재함이 드러났다.



디폴트옵션
다수 상품 섞어 제공…정체성·리스크 파악 어려워


2025년 6월 말 기준 디폴트옵션 시장은 총 319개 상품, 403개 구성 펀드로 빠르게 다변화되고 있다. 적립금은 상위 10개 사업자가 91.3%를 차지해 은행권 중심의 집중 구조를 보이지만, 위험등급이 높아질수록 점유율이 분산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이번 조사는 디폴트옵션의 수익률뿐 아니라 상품 다양성과 도입 현황까지 함께 반영했다.




좀 더 상세한 설명에 앞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고용노동부가 공표하는 퇴직연금사업자별 수익률은 이번 조사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 수익률은 가입자의 선택에 크게 좌우돼 사업자의 노력만으로 개선하기 어렵고, 따라서 평가 지표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디폴트옵션 상품 자체의 수익률은 평가에 포함했다. 2025년 6월 30일 기준 디폴트옵션 1년 수익률은 최저 2.5%에서 최고 17.4%까지 분포했다.



디폴트옵션 상품의 다양성은 논란이 될 만한 평가 지표다. 디폴트옵션이 다양하다는 것은 이질적인 퇴직연금 가입자를 더 잘 맞춰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하나의 디폴트옵션 상품 성과가 부진할 경우 모든 가입자가 동시에 나쁜 성과를 겪는 집중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반면, 다양한 디폴트옵션은 ‘좋은 상품을 골라 디폴트옵션을 설계·운영한다’는 데 따르는 책임감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디폴트옵션 상품 수는 사업자별로 최대 10개에서 최소 4개까지로 다양했다.

이번 조사에서 직접적인 지표로 쓰이진 않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한국의 디폴트옵션은 하나의 디폴트옵션 안에 여러 상품을 섞어 넣는 관행이 있어, 상품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리스크 이해도도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립투자형포트폴리오1에 예금 30%와 TDF 두 개를 넣거나, 적극투자형포트폴리오1에 TDF 세 개를 담는 식이 대표적이다.
이는 글로벌 퇴직연금 시장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커스텀 TDF를 만드는 것은 보편적이지만, 이미 존재하는 TDF들을 섞어 하나의 디폴트옵션으로 제공하는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 조사에서 활용한 지표 중 하나인 디폴트옵션 운용률은 퇴직연금 총 적립금 대비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되는 적립금 비중을 뜻한다. 단순평균 운용률은 각 사업자의 도입률을 동일 가중으로 평균한 값으로 업권 전반의 ‘사업자별 참여 수준’을 보여준다. 반면 가중평균 운용률은 각 사업자의 도입률에 적립금 규모를 가중치로 반영해, 실제 자금이 얼마나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되는지를 더 현실적으로 나타낸다.

2025년 2분기 도입 현황을 보면, 은행권이 단순평균 31.29%, 가중평균 28.14%로 가장 높은 운용률을 기록했다. 보험권은 일부 사업자를 중심으로 운용률이 높았고, 증권업권은 3%대에 그쳤다. 총 적립금과 디폴트옵션 적립금 모두 은행권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으며, 상위 10개 고운용률 사업자도 대부분 은행·보험권에 집중됐다. 이는 보수적 투자 성향의 고객군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며, 전체 시장에서 가중평균 운용률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은 대형 사업자를 중심으로 실제 자금이 빠르게 디폴트옵션으로 유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비록 퇴직연금사업자의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이 퇴직연금사업자의 역량을 알려주는 숫자는 아니라 여기지만, 가입자가 더 나은 선택을 내리도록 돕는 일은 퇴직연금 사용자(기업·HR)와 퇴직연금사업자(은행·증권·보험)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본다. 그래서 이번 조사에서는 퇴직연금 교육과 고객센터(상담·디지털 도구·응답성)를 별도의 항목으로 반영했다. 단순한 상품 나열이 아니라, 가입자가 자신의 위험 성향, 목표 시점, 비용 구조를 이해하고 실제로 의사결정까지 이어가도록 지원하는 역량을 점수에 담았다.

영주닐슨 성균관대 교수·한국퇴직연금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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