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탄소감축 성과를 미리 보상하는 ‘미리 인센티브’ 방식을 한국에 적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의 변화가 필요하고, 정책의 변화도 필요합니다.”(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
최태원 SK회장이 제안한 환경성과 크레디트가 구체적 논의 궤도에 올랐다. 최 회장이 지난해 11월 도쿄포럼에서 처음 소개한 환경성과 크레디트(Environmental Progress Credit)는 미래 탄소감축 성과를 예측하여 ‘미리’ 인센티브를 지급, 환경 성과 프로젝트가 ‘지금’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환경 성과 투자자가 성과에 따라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협력적 매커니즘 설계가 중요하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한경ESG와 공동 주관으로 지난 10월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연 ‘탄소중립 시계를 앞당기는 미리 인센티브, EPC’ 세미나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부, 학계, 금융, 시민사회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민관협력을 통한 EPC의 확대 방안이 모색됐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은 세미나에 앞서 “EPC논의가 현재는 시작이지만, 지속적으로 가다 보면 성과가 만들어지고 우리 사회에서 실제 작동하기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정수종 서울대 기후테크센터 교수와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국가 탄소감축 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한 기후테크의 육성을 강조했다. 특히 탄소 감축을 위해 규제와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각 국가의 사례들이 소개됐다. 싱가포르에서의 탈석탄을 위한 전환 크레디트 발행이나 청정에너지 투자를 하는 영국의 녹색투자은행 사례 등이 언급됐다.
정 교수는 “기후테크를 육성하려면 산업계의 관성을 깨고, 산업 전반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으며, 김 대표는 “정부가 산업 정책을 통해 규제와 인센티브 결합으로 투자자에게 기후 고려 투자에 대한 명확하고 안정적인 조건을 제공하고, 민간 자본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PC 개념을 확산하려면 무엇보다 환경 성과와 경제 성과의 동시 달성을 위한 투자 수요 확대가 중요한 과제다. 공급망의 압력으로 탄소 감축 실적을 필요로 하는 기업뿐 아니라 투자 수익을 바라는 기업들도 환경 성과에 주목할 수 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한 한국형 자발적 탄소크레디트(VCM) 시장을 기획하는 진승우 기획재정부 미래전략국 팀장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진 팀장은 해외 감축량을 국내에서 거래되게 하여 기업에 탄소 감축 수요를 만들고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을 소개했다. 진 팀장은 “정부가 VCM을 통해 시장에 인센티브가 없는 부분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려고 하며, 향후 미래 탄소감축 성과도 선물처럼 거래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동아시아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크레디트들이 거래될 수 있는 허브가 되었으면 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금융 세션은 수요 창출과 관련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금융 세션에서 심건호 후시파트너스 부대표는 한국 배출권거래제에서 상쇄감축분을 인정받는 미래배출권 사업에서의 개발사업 기회에 대해 경험담을 나누었다.
이철희 한국투자증권 카본솔루션부 차장은 자발적 시장의 탄소저감 프로젝트 개발로 인한 금융의 투자 기회를 언급했다. 두 패널은 입을 모아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 설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전약정구매를 통한 탄소 상쇄 사업 진출, 해외 골드만삭스나 HSBC등 주요 플레이어의 프로젝트 투자사례, 활발한 투자자간 투자 연합체 조성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블록체인과 관련한 세션에서는 민거홍 해시드오픈리서치 연구원이 나서 탄소시장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블록체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블록체인 기반 감축 서비스를 통해 탄소 크레디트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언급됐다. 민 연구원은 “일본도 엔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과 탄소 크레디트 토큰을 결합한 시범 시장이 추진 중이며, 싱가포르에서도 녹색채권을 블록체인으로 토큰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금융과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한 협력 거버넌스 구축으로 시장 신뢰 창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인소영 카이스트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와 김혜성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박용진 KIS자산평가 상무,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팀장이 참여해 EPC의 확대 가능성에 대해 타진했다.
김 변호사는 “그린워싱 우려를 불식하고 신뢰성을 높이려면 제도 개선과 함께 미래 환경 성과의 프레임워크가 실제 시장 혹은 사회에 이익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인 교수 역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자발적 시장에서의 크레디트는 금융사 포트폴리오 관리의 한 부분으로서 주목받고 있다”고 확대 가능성을 내다봤다.
박 상무는 “민관의 금융 매커니즘을 통한 크레디트 발급과 거래가 경제적 성과와 연결되고 있다”라며 “파리협정의 철학을 반영하는 정교한 방법론을 베스트 프랙티스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팀장은 “탄소감축이 자본적으로도 충분한 이익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상당하고 꾸준한 수준의 탄소가격 상승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D-Lab 실장은 “환경문제 해결을 경제적 성과와 관련해야 시장에서의 지속가능한 해법이 나올 수 있다”라며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와 금융기관의 참여로 탄소 ‘투자’ 시장을 활성화하고 시장 전반의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마무리했다.
구현화 한경ESG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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