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산업은 경쟁력 있는 기업 위주로 재편한다. 무분별한 증설은 허용하지 않고, 오래된 설비는 퇴출한다.”
2013년 이후 중국 국무부가 지방정부와 산업계에 내린 ‘산업별 지도 의견’ 등에는 이런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전통 제조 분야에서 과잉 생산 문제가 불거지자 공산당이 칼을 빼든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중국은 정부 주도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를 도려내고 ‘1등 기업’ 중심으로 재편했다. 반독점법에 명시된 담합 금지 조항은 눈감아줬다. 공정거래법을 지키는 것보다 비효율을 제거하는 게 중국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에서다.
중국 1, 2위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 간 합병이 그런 사례다. 지난달 두 그룹은 6년간의 합병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새롭게 태어날 회사는 시가총액(약 50조원), 자산 규모(약 76조원), 영업이익(약 18조원)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 간 출혈경쟁을 멈추고 몸집을 키워 고부가가치 선박에서도 한국을 넘어서려는 의도”라며 “20년 정도 걸린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매각 작업과 비교하면 속전속결로 끝낸 셈”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프로세스는 석유화학업계에서도 일어났다. 2021년 양대 화학기업인 시노켐(중국중화그룹)과 켐차이나(중국화공그룹) 합병을 승인한 것. 비슷한 사업을 벌이는 국유 회사 간 경쟁이 비효율을 낳는다며 담합 예외를 허용해줬다.
‘잘하는 기업은 규제를 덜어주고, 뒤처지는 기업은 버린다’는 공식은 철강업계에도 적용됐다. 2000년대 중반 1500개에 달하던 중국 철강회사는 구조조정을 거쳐 현재 600여 개로 쪼그라들었다. 방식은 경쟁을 통한 자연도태였다. 정부는 고속철도망을 전국에 깔면서 높은 운송비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철강업계 특유의 ‘지역 독점’을 깼다. 완전 경쟁에 내몰린 영세 업체가 도태되면 국유 기업이 이들 업체의 설비를 흡수해 덩치를 키웠다. 이런 방식의 산업 구조조정은 현재진행형이다. 군소 업체 난립을 막고 업계의 수익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 대해 연간 최소 생산량 기준(에틸렌 80만t·폴리에틸렌 20만t)을 두고, 이보다 큰 대형 설비에만 신규 허가를 내주고 있다.
베이징=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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