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와인킹'(본명 이재형). 구독자 68만 명(24일 기준)을 보유한 세계 1위 와인 유튜버다.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3개국에서 와인마케팅, 포도재배학, 와인양조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와인 전문가다. 그러나 와인을 설명할 때 지식보다 '경험'을 앞세운다는 점이 그의 채널을 특별하게 만든다. 비싸고 어려운 술이라는 선입견 대신, 누구나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술로 와인을 소개한다. 또 생산자 중심의 평론이 아니라 소비자 관점에서 솔직하게 평가하고 추천하는 방식이 시청자의 호응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그의 콘텐츠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언어'에 있다. 여덟 개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는 현지어로 와인을 주문하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한 잔을 나누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1000만 조회수를 기록한 '프랑스 식당에서 무시당했을 때 대처법', 와인 최고 권위 자격자인 마스터 오브 와인(MW)과 함께한 저가 와인 시음 영상 등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와인 유튜버 가운데 최초로 50만 구독자를 돌파한 그는 최근 '구매 전 시음이 가능한' 와인 숍 '와인무'를 열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와인이 아닌 '언어 학습법'을 들고 독자를 찾았다. 신간 <와인킹의 8개 국어>는 서른 살이 다 되어 처음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 10년 만에 여덟 개 언어를 유창하게 익힌 그의 여정을 담았다. 대다수의 한국인은 영어를 십수 년 배우고도 막상 외국인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히곤 하는 고질병을 갖고 있다. 와인킹은 그 오래된 고민에 분명한 답을 건넨다. "우리가 영어를 못했던 건 재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의 와인 숍 ‘와인무’에서 그를 만나 언어와 와인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 와인킹을 모르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근황 소개를 해주세요.
"와인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유튜브 채널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와인 팝업 행사를 많이 열었어요. 입장료 없이 '무료 시음' 개념을 도입했는데, 국내에선 처음 시도된 방식이에요. 고민이 많았어요. 협력하는 수입사 대표님들 중에는 '공짜로 마시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그럴 리가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마트 시식 코너를 봐도 맛있고 가격이 괜찮으면 다들 사 가시잖아요. 우리도 그 방식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죠. 처음엔 의구심이 많았지만 막상 해보니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렇게 팝업을 여러 번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쌓이더라고요.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럼 직접 와인 매장을 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엔 누가 와인 숍 낸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말리던 사람이에요. 거의 다 망하거든요. 제 매장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컨셉은 분명합니다. 모든 와인은 손님이 직접 맛을 보고, 마음에 드는 걸 사 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어요."
▶ 와인을 직접 만들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와인은 예전에 만들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프랑스 보르도의 한 그랑크뤼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곳에는 보통 '셀러 마스터(Cellar Master)'라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아래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팀이 있거든요. 저는 그 팀의 일원이었어요. 그때 만들었던 와인이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와인의 신'으로 불리던 세계적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거든요. 그게 제 중요한 경력이 됐죠.
그 이후로는 '이제 내 이름을 건 와인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3년 정도 프랑스 보르도 와이너리를 다니며 알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현장을 다니다 보니, 거기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인생을 그곳에 묻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와인의 세계는 결국 '다양성'이 핵심이니까, 직접 한 가지 와인을 만드는 대신 그 다양성을 탐구하고 소개하는 일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 이번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제가 비교적 잘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요. 외국어를 배우는 일, 와인을 공부하는 일,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일이에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세 가지 모두 바탕에는 '언어에 대한 관심'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와인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외국어를 익혔는데, 공부하다 보니 외국어 자체에 흥미가 커졌습니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배우다 보니 깨달은 게 있어요. 우리나라엔 특정 외국어, 예를 들어 영어를 잘하는 분들은 많지만, 여러 언어를 편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그 경험을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단순히 언어 공부법이 아니라 제가 어떻게 언어를 통해 와인을 배우고,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어 왔는지를 책으로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 책에서 반복해서 '나는 언어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8개 국어를 한다는 건 보통 재능으로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실제 본인은 언어적 재능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원래는 평균 이상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평균 이하였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언어적 재능이 있었다면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 과목(독일어)을 잘했겠죠. 그걸로 대학 입시를 치르고, 그 과목을 살려서 대학에 갔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입시 준비하면서 제2외국어 공부가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이건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과목이 아니다' 싶어서, 차라리 못하던 수학을 택했어요. 그 시절엔 본고사 제도가 있어서 제2외국어로 승부 보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저는 그 친구들보다 외국어를 훨씬 못했죠. 만약 제가 언어적 재능이 뛰어났다면, 아마 그때 외국어로 대학에 갔을 거예요."
▶ 공무원 시험과 회사 생활 등 인생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겪었다고 밝혀서 의외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실패들이 있었나요?
"우선 공무원 시험이 있었죠. 20대 때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외무고시로 바꿨는데, 몇 년을 공부했어요. 솔직히 정말 열심히 한 건 아니었어요. 학창 시절부터 국사를 유독 못했는데, 행시 준비할 때도 그 약점이 발목을 잡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 그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경험'이 제겐 여러 번 있었어요. 공무원 시험이 그랬고, 이후 회사 생활에서도 비슷한 좌절을 몇 번 겪었습니다."
▶ 어떤 회사에 다녔나요?
"전분, 포도당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저는 입사 뒤 마케팅 업무를 맡았어요. 그런데 회사가 워낙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제게 체계적으로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늘 겉도는 느낌이었죠.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을 계속했죠. 그러다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겠다' '시장을 개척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와인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와인을 공부하거나 외국에서 배워온 사람이 드물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한번 제대로 배워보자' 마음먹었죠."
▶ 원래부터 와인을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니군요?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와인은 집에서 가끔 마셨어요. 부모님 드리려고 제가 종종 사 갔거든요. 주로 어머니와 식사하면서 한두 잔씩 나눠 마시곤 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시다 보니 점점 입맛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건 알면 알수록 참 묘한 음료다, 공부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와인 관련 용어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한국어 자료도 거의 없었습니다. 와인을 배우려면 먼저 관련 언어부터 알아야 했죠. 그래서 와인을 공부하기 위한 수단으로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다시 잡은 게 독일어였어요. 대학 입시 때 제2외국어로 배웠던 언어라 조금은 익숙했거든요. 사실 와인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는 프랑스어지만, 아예 생소한 언어보다는 그래도 한 번 배웠던 독일어로 시작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독일어를 다시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와인을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 서른이 다 되어 시작한 외국어 공부가 인생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잠깐 배웠던 독일어를 10개월 만에 독일 대학 입시를 볼 정도로 익혔다고 하셨는데, 일반인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입니다. 어떻게 그런 성장이 가능했나요?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서른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와인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했죠. 남들처럼 안정된 길을 가던 걸 내려놓고 전혀 다른 길로 가는 거니까 불안하고 절박했어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두 달 만에 독일로 떠났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외국인이 정규 프로그램에 들어가 와인을 배울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어요. 대학 과정도 없고, 와인 학원 몇 곳이 전부였죠. 그때 생각했어요. '와인은 다양성이 중요하니까, 여러 나라에서 현지 와인을 직접 배우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
당시엔 한 나라에서 와인을 배우고 오는 사람은 있었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며 각국의 와인을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짰어요.'이 도시에 이런 와인 학원이 있으니 거기서 공부하자', '그럼 이 학원에 들어가려면 어떤 언어가 필요하니까, 어디서 먼저 배우자.' 이렇게 2개월 동안 조사해서 커리큘럼을 만들고, 어학원 등록까지 마친 뒤 독일로 떠난 거죠."
▶ 처음부터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와인을 배우겠다는 계획을 세우셨던 거군요.
“네, 처음부터 아예 5개 나라를 정해놨습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이렇게 다섯 나라를 돌면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와인을 직접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물론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배울 수는 없겠지만, 와인을 배우는 데 필요한 만큼이라도 익히자는 생각이었죠. 그게 스물아홉 살 때 세운 계획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택한 독일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어학 학원과 와인 학원에 함께 등록했죠. 그런데 학원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더라고요. 마침 학원 근처에 뒤셀도르프 대학이 있었는데, 그냥 교실에 들어가 청강을 했습니다. 주로 심리학 관련 강의를 많이 들었고, 학생들이 쓰는 교재도 똑같이 샀어요.
물론 처음엔 하나도 못 알아들었죠. 그런데 거기에는 저처럼 나이가 좀 있는 늦깎이 학생들도 있어서 친해지게 됐어요. 그분들이 집으로 초대해 주시기도 했고, 함께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대화를 통해 학원에서 배웠던 것들을 써보며 10개월을 지냈죠. 그리고 밤이 되면 대학생들이 사는 기숙사에 놀러 갔어요."
▶ 말을 배우러 무턱대고 대학 기숙사에 놀러 갔다고요? 그때는 아직 독일어도 유창하지 않으셨을 텐데요.
"맞아요. 처음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죠. 그 기숙사가 제 숙소에서 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와인 한 병을 사 들고 기숙사 입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인상이 좋아 보이는 학생에게 말을 걸었죠. '나 독일어 배우는 학생인데, 혹시 저녁 안 먹었으면 와인 한잔하면서 같이 식사할래요?'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첫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날 이후로 자주 기숙사에 놀러 갔어요. 학생들이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저녁 한 끼를 해 먹기도 빠듯했는데, 제가 매번 와인 한 병씩 들고 가니까 정말 반가워했죠. 와인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저는 그 자리에서 독일어를 귀로 익혔어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쓰는 말, 반복되는 표현들이 있잖아요. 그걸 유심히 들으면서 '지금 저 단어는 무슨 뜻이야?' 하고 물으면 친구들이 친절히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이 표현 뒤에 이런 말을 붙이는구나' 하고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저도 그걸 따라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실전에서 익히다 보니, 언어가 빠르게 몸에 배더라고요.”

▶ 언어도 잘 안 통하는데, 외국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어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말을 잘한 건 아니에요. 외국인들과 있을 때는 처음엔 거의 말을 안 하고 무조건 듣는 데 집중했어요.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잠깐 얘깃거리가 끊기거나 공백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제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식이었죠.
그들이 흥미를 보였던 건 '아시아 사람이 와인을 배우러 왔다'는 점이었어요. 그게 좀 신기하게 느껴졌던 거죠. 그래서 그 주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너희 나라에도 이런 와인이 있는데 몰랐어?' 같은 식으로 이야기를 던지면, 친구들이 흥미를 보이고 그걸 계기로 대화가 이어졌어요.
제가 아는 걸 나누면, 그들이 또 거기에 대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죠. 저는 그걸 들으면서 새로운 표현을 계속 배우는 거예요. 게다가 와인은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니까, 그 안에서 쓰이는 단어나 문장은 금방 이해가 됐어요. 그렇게 듣고, 복사하고, 바로 써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어가 익혀졌습니다."
▶ 대화하면서도 언어 표현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셨다는 거네요.
"맞아요. 정말 피곤하고 힘든 일이에요. 대화하면서 그들이 쓰는 언어 표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니, 진이 다 빠져요. 제 귀에 '이건 중요한 표현이다' 싶은 게 들어오면, 그건 끝까지 물고 늘어졌습니다. 의미를 묻고, 반복해서 말해보고, 문장 속에서 다시 써보는 식으로요. 그렇게 하다 보니 단어 하나라도 완전히 내 것이 되더라고요."
▶ 한국인의 문화나 정서를 생각하면 더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도 낯선 사람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편이셨나요?
"전혀요. 지금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원래는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이었어요.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영어 공부할 때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마 독일어 초반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그 때문일 거예요. 그런데 막상 외국에 나가서 어학 공부를 시작하니, 바뀌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배우는 게 없으니까요.
제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말할 줄 모르면서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시간이었어요. 정말 정신적으로 괴로웠어요. 가끔 누가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엉뚱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웃기도 했죠. 그게 수치스럽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텼습니다. 다음 날이 되면 또 그 자리로 갔어요. 말을 잘 못 해도 그냥 앉아 있었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귀가 먼저 뜨이더라고요. 들리는 단어와 표현을 익혀서 써보고, 그걸 또 다른 표현으로 이어 붙이고, 그렇게 조금씩 확장해갔습니다.
결혼 후에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내에게 이 방법을 가르쳐줬어요. 그런데 아내가 무척 힘들어하더라고요. '정말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요.(웃음)"
▶ 독일어를 익힌 뒤에는 어떤 나라로 향하셨나요?
"두 번째가 프랑스, 세 번째는 스페인이었습니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는 모두 라틴어 계열이라 문법 구조가 비슷해서 스페인어를 배울 때는 훨씬 수월했죠. 네 번째 나라는 영국이었어요. 영국에는 두세 달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도 어학 학원에 다니는 동시에 저녁마다 와인 모임이나 사회적 모임이 열리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와인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좋은 공부였거든요. 다만 영국은 좀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인종차별이 꽤 심했어요. 특히 런던의 와인 모임에는 '나는 귀족이다'라는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외국인으로 섞여들기는 쉽지 않았죠."
▶ 독일어는 학창 시절에 배운 기본 문법이라도 있었지만, 프랑스어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신 거잖아요. 처음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완전히 처음이었지만 똑같이 했어요. 프랑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 Francaise)'라는 어학원에 등록했죠. 지금도 그 첫날이 기억나요. 1층에서 새로 등록한 학생들을 위한 환영 다과 모임이 열리고 있었는데, 저는 또 그냥 그 자리에서 종일 죽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자원봉사로 온 60세 정도의 프랑스 할아버지를 만나 친해지게 됐습니다.
그냥 인사말 몇 마디 하고, '봉주르' 하면서 웃고. 그분이 하시는 말을 흉내 내니까 또 그분이 웃고. 그분도 영어 단어 몇 개를 섞어서 말씀하시려 했는데 영어가 유창하진 않으셨어요. 그래도 성품이 참 따뜻한 분이셨죠. 그분이 어느 날 학생 몇 명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더라고요. 저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그렇게 주말마다 그 집에 놀러 갔어요. 밥 얻어먹고, 와인도 마시고, 그분과 이야기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를 익혔죠. 함께 다니던 학생 중에서 제가 프랑스어를 제일 빨리 배웠어요. 독일어를 배우며 쌓은 언어 학습 노하우가 있어서였죠. 제가 빠르게 익히니까, 그분도 흥미를 느끼셨는지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 낮에는 어학원에 다니고, 모임에 나가 말을 익히신 건데요.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가만히 있지 않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체국 같은 공공기관이나 상점 등을 찾아다니면서 일부러 말을 걸었어요. '이건 어떻게 하면 되나요?' 하면서요. 그게 전부 실전 연습이었죠. 물론 대부분은 처음엔 못 알아들어요. 그럼 바로 제 상황을 설명했죠. '제가 지금 프랑스어 배우기 시작한 지 한두 달밖에 안 돼서 잘 못 알아듣는다. 그러니까 조금 천천히 말해달라. 혹시 못 알아들으면 같은 걸 여러 번 물을 수도 있다'고요."
▶ 그렇게 자꾸 말을 걸면 사람들이 짜증을 내진 않던가요? (웃음)
"그렇지 않아요. 미리 설명하면 대부분 이해합니다. '제가 이제 막 프랑스어 배우기 시작해서 말을 잘 못 한다'고 먼저 말하면, 오히려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돼요. 저는 항상 뭔가를 배울 '건수'를 미리 만들어뒀죠. 예를 들어 어학원 선생님께 물어봅니다. '외국인들이 들을 수 있는 무료 수업이나 복지 제도가 있나요?' 그러면 여러 기관을 알려주시거든요. 그곳들을 하나하나 다 찾아다니면서 담당자들과 계속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우체국에서도 그랬어요. 줄을 서면 앞뒤가 다 프랑스인이잖아요. 앞사람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하면서 말을 겁니다. '이거 제가 이렇게 써왔는데, 이렇게 보내면 되는 게 맞나요?'라고 물어보죠. 앞사람이 무뚝뚝하게 '맞아' 하고 끝내면, 저는 뒷사람에게 또 물어요. '앞에 분께 확인은 받았는데, 아직 잘 이해가 안 돼서요. 혹시 한 번만 더 봐주시겠어요?' 이렇게요. 그러면 그 사람은 앞사람의 차가운 반응을 봤기 때문에,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프랑스엔 왜 왔어요?' '여행 중이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해요. 그러면 저는 '프랑스 와인을 배우러 왔다. 당신네 나라의 와인이 너무 훌륭하다'고 말하죠. 그 말에 싫어할 프랑스인은 없어요. 자부심이 확 올라가니까요. 그렇게 해서 현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 문법 공부는 얼마나 하셨어요?
"문법은 사실 기본 정도만 했어요. 처음부터 문법 위주로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날그날 배운 단어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려고 했죠. 예를 들어 하루에 10개의 단어를 배웠다면, 대부분은 그걸 외우고 다른 공부를 하잖아요? 저는 반대로 그 10개를 가지고 계속 문장을 만들어봤어요. 내가 지금까지 배운 문장 구조 안에서 이 단어를 어디에 넣으면 말이 통할까, 이렇게 실험해보는 식이었죠. 밖에 나가서 직접 써보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써서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단어 하나를 훨씬 깊이 기억하게 되고, 실제로 쓸 수 있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언어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너는 아직 단어를 100개도 모르는 것 같은데, 말은 참 잘한다'고요. 그 이유가 있어요. 단어가 부족하니까 부정형이나 우회적인 표현을 많이 쓰게 되거든요. '정확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니까 어떻게든 돌아서 설명하자'는 식으로요. 그러다 보니 문장이 점점 길어지고, 자연스럽게 복잡한 구조로 말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머리를 계속 쓰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언어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 언어를 배울 때 교재나 책을 따로 사서 공부하지는 않았나요?
"스물아홉 살 이전까진 저도 그랬어요. 단어장을 만들고, 교재를 사서 외우고, 그런 식으로 공부했죠.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학원에서 쓰는 교재 외엔 따로 공부용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좋아하는 와인 책들을 그 나라 언어로 샀어요. 당시엔 와인 서적이 많이 없어서, 그 나라 언어로 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거의 이해가 안 됐어요. 글은 읽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 거죠. 그러면 추측하고, 또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사전을 찾아봐도 그 나라 언어로 된 사전을 봐서, 설명 안에 또 모르는 단어가 나오고... 결국엔 단어를 찾아도 찾아도 미로처럼 꼬이더라고요.
그래서 방식을 바꿨어요.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사람에게 물어보자.' 와인과 관련된 단어나 표현을 들으면, 그 뜻을 직접 물어봤습니다. 예를 들어 와인에서 자주 쓰는 '팔레트(palate)'라는 말이 있어요. 처음엔 '그림 그릴 때 물감 올리는 팔레트(palette)'밖에 모르니까, 그 뜻이 와인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죠. 그런데 현지인이 설명해주더라고요. '그림에서 팔레트는 물감의 색감을 인지하게 한다면, 입안의 팔레트는 맛을 느끼게 하는 감각 기관이다.' 그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 입안에서 전체적인 맛을 느끼는 감각을 말하는 거구나' 하고 이해됐어요. 그렇게 단어 하나를 완전히 자기 언어로 체득하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 국내에서 새로운 언어를 처음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하시겠어요?
"무엇보다 알파벳을 정확히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발음과 읽는 법을 완전히 익히는 게 첫걸음이에요. 언어를 배우다 보면 모르는 단어나 발음을 상대방에게 물어볼 때가 많은데, 그럴 때 그 단어의 철자를 듣고 이해하거나 스스로 설명하려면 알파벳을 정확히 알아야 하거든요. 누군가 단어를 말했을 때 '그 단어 스펠링에 A가 들어가요?' 하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해요. 특히 독일어나 프랑스어처럼 알파벳 발음이 영어와 다른 언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본을 잊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외워도 실제로 언어를 쓰기 시작하면 알파벳 이름조차 헷갈리기 쉽죠. 그런데 단어를 배울 때 이런 기초가 흔들리면 언어 전체가 구멍 나듯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듣고, 말하고, 쓸 수 있을 만큼' 알파벳을 정확히 익히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가능하다면 알파벳부터 원어민에게 직접 배우는 것을 추천합니다. 발음은 독학으로 한계가 있어요. 물론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따라 하긴 어렵지만, 초반에 최대한 정확히 배워두면 나중에 말할 때 상대방이 알아듣기 훨씬 쉽습니다. 저는 초기에 조금 투자하더라도 원어민에게 배우라고 권해요. 외국어를 배우며 돈을 들여야 하는 구간이 있다면 처음에 들이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법은 몰라도 괜찮아요. 오히려 진짜 중요한 건 단어 하나라도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면 그냥 넘기지 말고, 그 뜻을 끝까지 파고들어 자기 언어로 완전히 체화시켜야 해요. 대부분은 외국인이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모르는 채로 넘어가죠. 하지만 그 단어를 집요하게 물어 정확히 익히고, 직접 문장 안에서 써보려는 집요한 시도가 꼭 필요합니다. 언어는 결국 그 집요함이 실력을 만듭니다."
▶ 언어 하나를 넘어설 때마다 기회가 곱셈으로 늘어났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언어로 인해 특별한 기회를 만들었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된 순간이 있었나요?
"그런 순간은 사실 너무 많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일본어를 배울 때였어요. 일본어는 여덟 번째로 배운 언어였는데, 그때는 솔직히 외국어 공부에 많이 지쳐 있었어요. 그래서 배우기가 싫었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를 배우기 쉬운 언어라고 하지만, 저에겐 오히려 가장 힘들었습니다. 의욕이 완전히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본에 가서 마트에 들렀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와인 진열대가 정말 다양하고 수준이 높은 거예요.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와인 관련해서 일본어는 필요한 언어인 것 같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처럼 학원에 등록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서 나가기 싫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와인 모임에 나가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는 일본 사회에서 이미 인기도 많고 인맥도 넓은 사람이었어요. 처음엔 '나는 일본어도 못하고, 영어도 통하지 않는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도 용기 내서 다가갔고, 결국 그 친구와 가까워졌어요. 그 친구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됐고, 어느 순간 일본 와인 업계의 핵심 인물들을 두루 알게 됐어요. 서로서로 소개해주는 구조라, 원래는 외국인이 절대 들어가기 힘든 세계였거든요. 그 친구들은 제가 만날 때마다 일본어가 확확 늘어서 오니 또 재밌어하더라고요. 더구나 제가 유럽에서 와인 관련 학위를 여러 개 따왔고, 여러 언어를 하니까 그들에게도 흥미로운 존재로 보였던 거죠. 일본어를 하나 더 배우면서 저는 일본 와인 업계에 대한 경험의 질을 확 높일 수 있었어요."
▶ 어떤 언어를 배우실 때마다, 현지에 가서 바로 배우기 시작하시는 편이군요.
"그편이 가장 빨라요. 가능하다면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좋습니다. 그게 어렵다면 한국에서도 그 나라 언어를 쓰는 친구를 사귀거나,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낯선 환경에서 도움을 받을 때 마음의 문을 쉽게 열 거든요. 그렇게 친구가 생기면 그 언어는 훨씬 빠르게 익혀요.
저는 와인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았어요. 와인은 기본적으로 수입산이고, 해외 유통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외 현장을 자주 다니게 되거든요. 그런 이유로 현지에서 배우는 게 제게는 훨씬 효율적이었죠. "
▶ AI 통·번역 시대에도 여전히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I가 대체하기 힘든 게 언어력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산수’를 떠올립니다. 예전에는 주판을 썼고, 그다음엔 계산기가 나왔죠. 지금은 엑셀이나 AI에 수치를 넣으면 복잡한 계산을 다 해줍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산수를 배우고, 머릿속으로 간단한 암산 정도는 하잖아요. 왜냐하면 계산기나 툴만 의존하면 오히려 불편할 때가 많거든요.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와인 디스펜서를 수리할 때 드라이버를 자주 쓰는데, 이 도구를 늘 손에 익혀두는 게 훨씬 효율적이에요. 언어 역시 몸에 붙은 도구처럼 기본적으로 장착해 두어야 합니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마다 번역기를 켜거나 앱을 꺼내는 건, 손끝의 감각이 없는 드라이버를 쓰는 것과 같죠.
AI는 훌륭한 비서입니다. 하지만 비서가 내 일을 대신해도, 그 결과가 맞는지 판단하려면 기본 지식이 필요하잖아요. 언어도 그래요. AI가 번역을 대신해줄 수는 있지만, 그 번역이 진짜 내가 의도한 뜻인지, 미묘한 뉘앙스를 놓친 건 아닌지 확인할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언어 감각은 필수입니다. 오히려 AI를 더 잘 활용하려면 언어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앞으로 언어 공부보다 AI에 의존할 텐데, 저는 오히려 그게 기회라고 봅니다. 기본만 꾸준히 갖추고 있으면, 그 자체로 두드러질 수 있거든요. 원래는 '와인과 외국어를 이 정도로 공부하면, 2~3년 안엔 누군가가 나를 따라잡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사람들은 점점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아요.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벌고 있는 셈이죠. (웃음)"
▶ 유튜브 이야기도 여쭤볼게요.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건 사실 마케팅 때문이었어요. 당시 저는 유럽의 와인 관련 대학원 세 곳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와인 관련 석사 학위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됐죠. 그런데 '내가 이만큼 공부했지만, 아무도 모른다'는 현실이 문제였어요. '이걸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처음엔 네이버 밴드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밴드는 너무 정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생동감 있게 소통할 방법을 찾다가 유튜브를 보니, 그때만 해도 와인 관련 콘텐츠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 시작하면 기회가 있겠다' 싶어서 바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방 안에서 앉아 '부르고뉴 지역은요, 보르도 지역은요'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영상을 열댓 개쯤 찍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괴감이 오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과감히 그 영상을 전부 내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갔습니다. 와인을 딱딱한 지식으로 전달하는 대신, 외국어와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로요. 그게 지금의 '와인킹' 채널이 된 거죠."
▶ 앞으로 채널의 방향성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사실 지금은 저도 방향을 명확히 잡지 못한 상태예요. 제 유튜브가 크게 반응을 얻었던 시기를 돌아보면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어요. 처음은 '8개 국어 배우는 법' 콘텐츠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을 때였죠. 그때 한 번 크게 성장했습니다. 두 번째는 미국에 가서 만든 와인 콘텐츠, 그리고 세 번째는 유럽에서 식당을 찾아다니며 밥 먹는 콘텐츠였습니다. 이 세 번째 콘텐츠가 지금까지 제 채널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아요. 프랑스 식당에서 무시당했던 경험이나 주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영상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결국 제 본업은 와인이고, 잘하는 건 외국어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니까 이 세 가지를 엮은 콘텐츠로 다시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와인 자체가 어렵고, 영상 속 대화에 외국어가 섞이다 보니 편집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편집자를 여러 번 바꿔봤지만, 결국 와인 용어도, 언어 맥락도 이해가 어려워서 편집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방향을 다시 세우는 중이에요. 와인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학습적이고 전문성이 강해서 대중적인 재미나 공감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거든요. 사실 와인 유튜브의 시장 자체가 좁아요. 제가 처음 채널을 시작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유튜브가 미국의 '와인 라이브러리(Wine Library)'였는데, 그때 구독자가 2만 명대였어요. 지금도 비슷합니다. 결국 와인에만 집중하면 한계가 있어요. 와인 얘기만 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고, 저보다 훨씬 더 재밌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진 강점들을 잘 조합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앞으로의 과제이자 방향이죠."

▶ 요즘 와인 업계의 고민은 젊은 세대가 알코올을 덜 선호하면서 와인 소비층이 줄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시장의 파이가 커지지 않으면 콘텐츠 수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텐데요. 앞으로 와인 시장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와인 시장의 파이를 지금부터 크게 키우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와인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들여 즐겨야 하는 술인데, 한국 사람들의 식사 문화는 빠르고 짧잖아요. 그런 생활 습관이 단기간에 바뀌긴 어렵습니다. 사실 '와인 소비가 줄고 있다'는 말은 이미 수십 년째 나오는 이야기예요. 유럽에서도 1940~60년대부터 계속 그런 얘기를 했어요. 중세 시대에는 와인을 물처럼 마셨으니, 그때를 기준으로 하면 당연히 계속 줄어드는 시장이죠. 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에 와인 소비가 감소한다고 느끼는 건, 그 흐름의 한 지점을 보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다시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울까'보다는, 지금 존재하는 시장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코로나 때처럼 외부 요인으로 사람들이 집에 머물며 소비가 급증하는 특수 상황이 오면 시장이 잠시 커질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계획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줄어드는 시장은 받아들여야 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와인을 즐기게 할 것인지, 그게 저의 숙제이자 앞으로 와인 산업이 고민해야 할 방향이라고 봅니다."
▶ 와인은 '공부해야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있습니다. 실제로 초보자는 와인의 맛 차이를 잘 느끼기 어려운데요.
"그걸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는 거예요. 사실 와인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체로 호기심이 많고 지적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에요. 와인은 알면 알수록 신세계가 펼쳐지는 술이죠. 대부분은 어떤 계기로 시작합니다. 와인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이 있거나, 예상 밖의 맛을 느끼고 놀라거나, 아쉬움을 느낀 순간이 있죠. 그게 기폭제가 되어 다시 한번 다른 경험을 찾아보게 됩니다.
처음엔 당연히 몰라요. '왜 다 똑같은 맛 같지?'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지?' 그렇게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마시면서 조금씩 배우는 거예요. 와인을 안다는 건 결국 입 안의 감각을 훈련하는 일이에요. 그냥 입에 머금는다고 맛이 구분되는 게 아니라, 차이를 느끼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처음엔 누가 '여기서 버섯 향이 난다'고 하면, 대부분 '무슨 버섯이야, 그냥 포도주 맛이지'라고 느끼죠. 하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정말로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그 과정을 즐기는 게 와인의 매력이에요."
▶ 그런 미세한 향이나 맛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 아닐까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독일에서 처음 와인 공부를 시작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이 와인에서는 버섯 향이 나고, 젖은 낙엽 냄새가 나고, 무슨 흙냄새가 난다'고 하시는데, 속으로는 '무슨 소리야, 그냥 포도주 냄새밖에 안 나는데?'라고 생각했죠. 솔직히 '거짓말하는 거 아닌가' 싶은 정도였어요.
그런데 배우다 보니, 정말 조금씩 그 차이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건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면서 배워야 하는 감각이에요. 그래서 저도 직원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와서 물어봐라. 나중에 몰아서 묻지 말고, 지금 궁금할 때가 가장 배울 타이밍이다.' 그렇게 해야 그 와인을 함께 마시며 그 순간의 향과 맛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거든요.
책으로 공부하면 오히려 실전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릿속엔 지식이 쌓여 있는데, 실제로 와인을 마시며 들리는 표현이나 향의 느낌이 그 지식과 연결되지 않는 거예요. 머리가 너무 무거워져서 감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조금 배우고, 바로 써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와인도, 외국어도 마찬가지예요. 책으로만 공부하는 대신, 실제로 입에 담고, 말로 표현하고, 그 경험을 몸으로 익히는 게 훨씬 빠릅니다."
▶ 와인을 잘 모르지만 배워보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서 마셔보는 게 방법일까요?
"무작정 마셔보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저는 '기준'을 세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와인을 배우고 싶다면 자신에게 맞는 기준점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로버트 파커든, 제임스 서클링이든, 혹은 저든, 자기 취향과 비슷한 평론가나 인플루언서를 하나 정해두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이 설명하는 와인을 직접 맛보면서, 내가 느낀 것과 얼마나 비슷한지, 어디서 다른지를 비교해 보는 겁니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자신만의 미각 데이터가 쌓이고, 점점 해석력이 생겨요. 그런 과정을 거쳐 스스로 기준이 확실해진 분들은 어느 순간 제 곁을 떠나갑니다. 저는 그걸 '졸업'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시라'고 축하하죠. 그러다 보면 '왜 아직도 이런 와인만 소개하세요?' 같은 불만이 생기는데, 그때가 바로 독립할 때예요.
와인을 배우는 건 결국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와인 전문가들이나 평론가들이 모여 대화할 때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거든요. 예를 들어 '젖은 낙엽 향이 난다'고 말했을 때, 모두가 그 감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프랑스 보르도에서 시음학 과정을 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이 있었어요. 향수 학교의 교수를 초빙해 와인의 향에 대해 배웠는데, 거기서 '수박 향이 난다'고 하면 실제 수박 향과 비슷한 다른 향들을 찾아 묘사해보는 연습을 했어요. '그 향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단어들을 쓸 수 있을까'를 끝없이 탐구한 거죠. 결국 그렇게 쌓은 게 '향의 사전'이에요. 와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런 와인 언어 학습과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홉 개 언어를 하는 상태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재수 없어 보이죠? (웃음)"
▶ 궁극적으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요?
"저는 20대 때부터 많이 돌아다녔어요. 사실 처음엔 주식 투자로 번 돈으로 와인과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IT 버블 시기에 운이 좋아 수익이 크게 났는데, 계획하지 않았던 돈이 생기니까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고민이 들었어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처럼 허무하게 쓰고 싶진 않았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배워보자. 그게 와인과 언어였습니다.
지금의 궁극적인 목표는 와인과 언어를 통해 사람들이 더 깊고 즐겁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에요. 와인을 단순히 마시는 술이 아니라, 언어·문화·사람을 잇는 매개로 보여주고 싶어요. 세대나 문화가 달라 생기는 거리감, 혹은 '나는 몰라서 어렵다'는 벽을 콘텐츠로 낮추는 거죠. 최근 몇 달간 고민이 많았는데, 결론적으로는 '결국 콘텐츠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해보니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매장과 콘텐츠를 별개로 봤는데, 결국 서로 연결돼 있더라고요. 제가 콘텐츠로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만들어야 매장에도 사람이 오고, 브랜드도 살아나는 구조예요.
그래서 지금은 단순히 와인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와인과 언어, 문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지금 만드는 콘텐츠가 당장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그걸 발견하고 공감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한 잔 곁들이며 즐기기 좋은 와인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이 책을 읽으실 때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이 좋아요. 저는 소비뇽 블랑을 권하고 싶습니다. 어느 나라 것이든 상관없어요. 그게 소비뇽 블랑의 매력이거든요.
제가 예전엔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를 자주 추천했어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 아스티 지방에서 나오는, 달콤하고 산뜻한 스파클링 와인이죠. 하지만 지금은 소비뇽 블랑을 더 추천해 드려요. 뉴질랜드가 가장 유명하지만, 원래는 프랑스에서 시작됐고 아르헨티나나 호주, 남아프리카에서도 훌륭한 품질의 소비뇽 블랑을 생산합니다. 이 와인의 좋은 점은 어느 나라에서 생산되든 기본적인 퀄리티가 안정적이라는 거예요. 즉, 언어처럼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와인이에요. 프랑스의 소비뇽 블랑이 정말 궁금하면 프랑스어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비뇽 블랑이 궁금하면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와인도 언어와 닮았습니다. 생산지마다 개성이 다르죠.
가격대는 2만~3만 원 선이면 충분히 좋은 와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3만 원대 소비뇽 블랑을, 책 사느라 예산이 빠듯하다면 2만 원 전후의 와인으로도 좋아요. 가벼운 산미와 신선한 과일 향이 있는 소비뇽 블랑 한 잔을 곁들이며 책을 읽는다면, 언어와 와인의 세계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드시지 않을까요?"
▶ 와인킹 님의 추천 책 10권을 소개해 주세요.

1. <더 이상 오해받지 않는 말투의 기술> | 후지타 다쿠야- 의사소통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해 오해와 갈등을 줄이는 방법을 다룬 책. 비대면 사회에서 더욱 읽을 필요가 있는 실용 커뮤니케이션서.
2. <말 잘하는 사람은 말투부터 다르다> | 장신웨-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가장 작은 단위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다.
3. <여행의 말들> | 이다혜- 여행 중 떠오르는 상념과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재치 있게 기록한 에세이.
4. <부의 전략 수업> | 폴 포돌스키- 경제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쓴, 그러면서도 의외로 깊이 있는 경제서.
5. <<strong data-end="546" data-start="522">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 | 현성운- 대한민국의 수많은 자영업자가 참고하면 좋은 실질적 지침서.
6. <<strong data-end="640" data-start="618">권력의 심리학> | 브라이언 클라스- 사람들의 행동 예시와 그 원인을 분석하며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7. <<strong data-end="742" data-start="718">와인 테이스터스 가이드> | 조 로버츠- 기본적인 사항부터 꽤 전문적인 영역까지 폭넓게 다루는 와인 전문 서적.
8. <<strong data-end="834" data-start="815">무조건 심플> | 리처드 코치- 다양하고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기회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책.
9. <<strong data-end="1029" data-start="1000">뇌의 하루: 공감의 뇌과학> | 에벨리너 크로너- 요즘 주목받는 뇌과학 분야를 '공감'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낸 책.
10. <<strong data-end="929" data-start="912">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마음을 넓히기 위해 반드시 한 번은 읽어야 할 고전. 와인킹이 여덟 개 언어로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i>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i>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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