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시 모가면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환하게 익어가는 들판에 눈길을 두느라 표지판도 내비게이션의 알림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동안 넋 놓고 있다가 목적지를 이미 지나쳐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책방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황금빛 들판의 한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벌써 분주한 풍경이었다. 색색의 꽃을 아담하게 포장하는 사람들의 손길로 활기가 돋았다. 책방을 방문하는 손님들과 백일장 참석자들을 위한 소소한 선물이라고 했다. 오늘은 처음책방의 1주년을 기념해서 제1회 필사백일장과 고두현 시인 초청 북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필사와 시인이라는 두 단어가 나를 이끈 동력이었다.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이라는 처음책방의 콘셉트 역시 매혹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부산 국제시장 인근에 자리한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쏘다니던 향수도 간직하고 있거니와 문청으로 스무 살을 시작했으니 나의 처음이 거기에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제작된 저작물을 초판이라고 부르며, 인쇄기에서 뽑힌 첫 번째 쇄를 1쇄라 한다. 신문 및 잡지 등 간행물의 첫 번째 호는 창간호라 부른다. 특정 독자에게 있어서 초판본과 창간호보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게 또 있을까. 한정된 부수가 모두 소진되면 중쇄를 하게 되는데, 쇄를 거듭할수록 처음이라는 단어와 멀어져 버린다. 달리 표현하면 독자가 늘어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처음은 더 단단해진다. 눈이 밝은 독자는 아끼는 책의 초판1쇄본을 보물처럼 간직할 것인데, 실제로 그 가치는 해가 갈수록 소중해진다. 출판권과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바로 서면서 초판과 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그런데 대체 누가 그 귀한 초판 1쇄만을 모아 서점을 만든단 말인가. 책방지기가 1세대 출판평론가이자 저작권 전문가인 김기태 교수라면 얼른 납득이 된다.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십 년간 수집한 책들이 한데 모여 있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몇만 권은 족히 되는 이 공간을 방이라 불러도 될까. 차라리 집, 아니 마을이 더 좋겠다. 이 모든 게 처음을 위한 것이라니 조금은 숙연해지고 만다.
제목만 살피는 데에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독자를 만나기 위해 세상에 나온 책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표지만 면면이 본다 해도 두어 달은 족히 지새워도 부족할 판이었다. 조금 더 관심이 가고 하릴없이 발길이 머무는 건 소설 앞이었다. 거기에는 내가 사랑하고 동경한 작가들의 초판본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판본들도 많았다. 처음책방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존재들이었다.

필사백일장의 첫 참가자는 여든 살이 넘은 노부부였다. 행사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는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되었다. 아이를 데려온 가족이 마지막 참가자였다. 아이는 열 살이라고 했다. 열 살부터 여든까지 필사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서 모였다.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 다들 책방으로 여행을 떠나왔다. 우리네 삶은 정작 디지털화의 정점으로 치닫는데, 아날로그 시절을 되살리겠다는 듯 손으로 글씨를 쓰려는, 이리도 귀한 풍경이 처음책방에 모여 앉았다.
모두가 책방에서 특별히 제작한 필사용지를 받아 들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친다. 오늘의 주제는 처음책방에서 기획 및 출간한 『고두현 따라쓰기?아직 태어나지 않은 말』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고두현 시인이 직접 심사를 진행할 참으로 필사자들의 진중한 얼굴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도,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열 살이 된 아이도, 먼 길을 찾아온 노부부도 마찬가지다. 오직 손에 쥔 펜이 시를 따라 쓰는 소리만이 책방을 채운다.

아주 어릴 적, 셜록 홈즈를 샀던 그즈음의 나는 오늘을 예감했을까. 칸칸이 새겨지는 글자가 시인의 것에서 나의 것으로 스며든다. 필사란 활자를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잉크가 스미는 속도로 시인을 만나는 일이다. 진중하고 숭고한 느린 독서법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같은 풍경이 꼭 언젠가 내가 경험했던 일인 듯 그리우면서도 생경한 이중적인 감정에 빠져든다.

현장에서 심사를 마친 고두현 시인과 책방지기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앉기 시작했다. 시를 먼저 만났으니, 이제는 시인을 만날 참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시인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그건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 시가 된 사람이라는 뜻과 같았다. 시인은 시를 짓는 직업이 아닌 시를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시인의 육성은 책방을 찾은 독자들에게 선물이 될 게 틀림없었다.

고두현 시인은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글을 쓰게 된 배경에서부터 한 편 한 편 시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사건’들을 중후한 목소리와 감칠맛 나는 언어로 들려주었다. 송신자보다 수신자의 감상을 강조한 롤랑 바르트의 미학에서부터 시로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의 애환을 노래처럼 읊어주었다. 그러니 ‘늦게 온 소포’에 담긴 어머니와의 일화는 순식간에 우리의 시간을 과거로, 남해 물건리 포구의 너른 해안으로 데려가고 마는 것이었다. 값이 비싸 대학나무라 불린 유자나무의 그 귀한 열매를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아들에게 보내는 정성과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한 어머니의 음성과 그 모든 것을 늦게 알아차린 아들의 마음을 거기 있는 모두가 공감한 듯한 얼굴이었다. 열 살의 아이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장 사진을 찍는 척 슬쩍 책방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내 어머니가 떠오른 탓이었다. 이 순간의 감정이 흐려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잠시 혼자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익어가는 것들은 왜 이리도 환하게 타오르는가. 계절이 막 열리는 참이었고, 하늘이 낮고 무겁게 보였다. 책은 사람과 닮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서일까, 온기가 전해져서일까. 소국 한 다발과 책이 선물처럼 놓인 책방이라니.
그러고 보니 내가 이곳에서 제일 많이 본 건 책을 고르는 사람들의 뒷모습, 등이다. 책을 살피는 등이 즐거우면서도 고독해 보이는 건 거기에 그들의 과거가 숨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실 책에도 등이 있다. 책장에 꽂았을 때 좁고 길게 보이는 표지의 한 부분이 그것이다. 책등에는 제목과 지은이와 출판사가 함께 들어간다. 뒷모습만으로도 그 사람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책도 그러하다. 나는 처음책방에서 처음을 귀하게 살피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다. 책의 과거와 미래가 거기에 있다. 거기, 이천의 처음책방이 귀하게 익어가는 중이다. 처음의 첫 번째 미래가 이제 막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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