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인 2005년 4월 한경비즈니스의 커버스토리는 ‘지수 900대 생존전략’이었다. 연초만 해도 “드디어 코스피 1000을 넘는다”는 기대가 무르익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어닝 쇼크가 잇따르면서 시장은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코스피가 처음 1000선을 돌파한 건 1989년 3월의 일이었다. 저금리·저유가·저달러, 이른바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1000선의 고지를 밟았지만 단 3일 만에 미국발 ‘블랙먼데이’의 후폭풍에 무너졌다. 다시 1000선을 회복한 건 5년후인 1994년, 그리고 또다시 1995년에 붕괴됐다. 한경비즈니스가 창간되던 바로 그 시기에도 한국 증시는 ‘1000을 눈앞에 둔 박스피’에 갇혀 있었다.
30년이 지난 올해 들어서야 코스피는 빛을 발하고 있다. 2007년 문을 연 2000 시대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18년 만인 2025년에 와서야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반등의 흐름을 탄 한국 증시는 지난 6월 3000선을 회복했다. 2021년 12월 28일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이후 코스피는 파죽지세다. 10월 27일 40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박스피’로 불리던 영욕의 세월, 한국 증시에서는 보기 드문 속도다. 집권 초기부터 ‘자본시장 대전환’을 국정 어젠다로 내건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 불을 붙였다.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넘어섰고 하루 거래대금도 40조원을 웃돌고 있다.
리서치센터장들의 답변도 1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C학점의 성적표를 받은 한국 증시는 A학점을 받았다.
2024년 6월 한경비즈니스가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20인과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3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스피 4000 시대의 조건’ 설문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52%)은 한국 자본시장에 ‘C학점 이하’를 매겼다.
당시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글로벌 주요국 대비 저평가된 가장 큰 이유로 ‘기업 거버넌스 미비’(34%), ‘주주친화정책 부재’(20%), ‘과도한 규제’(20%)를 꼽았다. 전 정부의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이 막 시행된 시점이었지만 전문가 54%가 70점 미만의 낮은 점수를 줬다. “기업의 이익 증가와 주주환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코스피 4000은 요원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25년 10월 후속 조사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리서치센터장 15인 중 14인이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코스피 5000 달성이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의 배경으로는 상법 및 세법 개정을 꼽았다. 새 정부에서 상법 1·2차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회사’뿐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으로 확대됐고 대형 상장사의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로 주주 참여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또한 감사위원 선임 시 3%룰 적용 확대를 통해 지배주주의 영향력은 줄고 소액주주의 권한은 커졌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한국 자본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리서치센터장들은 평가했다.
코스피 5000을 향한 남은 과제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정책의 신뢰, 기업의 투명성, 시장 참여의 책임을 ‘디스카운트 해소 트리오’로 꼽았다. 하지만 해법에서는 차이가 뚜렷했다. 금융당국은 공정한 제도, 기업은 규제완화, 시장은 지속 개혁을 강조하며 ‘코스피 5000 시대의 조건’이 엇갈렸다.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은 “자본시장 신뢰의 핵심은 공정하고 투명한 질서 확립”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불공정 거래를 일벌백계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와 기관투자가의 책임투자 강화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 점검제를 추진 중이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은 정부 기조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코스피 5000을 위해선 규제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최근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이 경영 리스크를 과도하게 키웠다고 지적했다. 정 부회장은 특히 자사주 의무소각제에 대해 “충실의무가 강화된 상황에서 불공정 활용은 불가능하다”며 현행 제도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외이사 겸직 제한 완화, 장기보유 주주 인센티브 도입 등으로 기업의 투자 여력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신뢰’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정부와 정책의 신뢰가 흔들리면 외국 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며 “정부가 개혁 로드맵을 정권 말까지 일관되게 추진한다면 코스피 6000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이번이 자본시장 제도 개혁의 다시 오지 않을 호기”라며 “기업 거버넌스 문제 개혁과 세제를 포함한 제반 제도 개혁이 코스피 5000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상시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세율 25% 이하의 영구적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의 증시 정책 밑그림을 그린 홍성국 전 의원(전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장)은 “한국 증시는 스스로 만든 ‘디스카운트의 늪’이 문제였다”며 “이제는 투자문화와 자본순환의 구조를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신뢰와 일관성, 그리고 장기투자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코스피 5000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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