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돌아왔습니다. 올 3분기 영업이익이 3년 만에 처음 12조원을 넘었고 매출은 사상 최초로 8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주가도 10월 중하순 기준 올 들어 80%가량 올랐어요. 시가총액은 600조원을 바라보고 있죠.
모두가 ‘왕의 귀환’을 반기고 있는 이때 씁쓸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한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LG전자입니다. 한때 삼성전자의 라이벌로 불렸던 LG전자는 현재 삼성전자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실적은 추락하고, 위상은 떨어지고, 경쟁력은 뒤처지고 있습니다. 그 영향에 만 50세 이상 또는 저성과자를 상대로 희망퇴직까지 받는 상황에 처했죠. 2020년 말 기준 3만9000여 명에 달했던 임직원 수는 올 6월 말 기준 3만5000여 명까지 감소했어요.
삼성전자는 분기당 10조원 이상 이익을 내지만 LG전자는 1조원도 못 내고 있고 연간으로 해도 올해 2조원대에 그칠 전망입니다. 시가총액은 삼성전자의 40분의 1도 안 될 만큼 이제는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LG전자는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일까요.
◆중국에 치이고 관세에 멍들어
LG전자가 궁지에 몰린 이유는 중국 기업의 부상 탓이 컸어요. 그동안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TV 부문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TV가 속한 미디어엔터테인먼트솔루션(MS) 사업본부는 올 3분기에만 2000억원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됩니다. MS사업부는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분기당 1000억원 넘는 이익을 가져다 준 ‘알짜’였어요. 하지만 TCL, 하이센스, 샤오미 같은 중국 업체들에 시장 주도권을 내주면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중국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이미 LG전자, 삼성전자를 앞질렀어요.
특히 LG전자는 프리미엄 OLED TV를 고집한 게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OLED 기술을 선점한 LG는 과거 삼성과 경쟁할 때도 기술 우위를 내세웠는데요. 하지만 삼성전자가 QLED, QD-OLED, 크리스털 UDH 같은 신기술로 기술 격차를 좁혔고 중국 업체들은 대대적인 가격 공세로 LG전자의 몫을 가져갔습니다. 또 중국 업체들은 구글, 로쿠 같은 미국 기업과 손을 잡고 동영상 스트리밍에 특화된 제품을 내놨어요. LG전자는 결국 프리미엄 전략을 일부 포기하고 가격을 낮춰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 탓에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져 적자를 내고 있는 겁니다.
TV뿐 아니라 가전 시장에서도 ‘명가’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어요. LG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같은 백색가전만큼은 삼성전자보다도 낫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선 LG전자의 프리미엄 브랜드 ‘시그니처’가 최고급 가전 부문에서 월풀, GE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고요. 코로나 사태 땐 ‘코로나 특수’도 크게 봤죠. 하지만 특수가 끝나고 프리미엄 수요가 위축되면서 가전 부문 또한 거센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가전이 속한 HS사업부의 분기당 매출은 6조원대 수준에서 정체된 상태입니다. 더구나 최근엔 미국의 관세 부과 폭탄까지 얻어 맞고 있어요.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 알루미늄에 품목 관세를 50%나 부과한 탓입니다. 세탁기, 냉장고 원가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기 때문에 품목 관세 여파가 컸어요. LG전자 가전 매출의 약 3분의 1이 미국에서 나오는데 미국에서 대규모 관세를 물게 되면 미국 업체들과 경쟁이 힘들어져요. 여기에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 낮추기로 한 것도 협상이 지연되면서 타격을 줬어요.
어려움은 또 있죠. 가전 분야에서도 중국의 도전이 거셉니다. 사실 세계 최대 가전기업은 LG전자도 삼성전자도 아닌 중국 하이얼입니다. 작년 매출은 2859억 위안, 약 58조원에 달했어요. LG전자의 HS사업부의 작년 매출 33조원을 크게 넘어섰어요. 하이얼은 미국의 GE 가전 부문을 2016년 인수해서 현재 북미 가전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생산부터 판매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LG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세 문제에서도 자유롭죠.
중국 가전은 과거엔 싼 맛에 샀지만 지금은 성능 때문에 삽니다. 예컨대 ‘대륙의 실수’로 불렸던 샤오미는 더 이상 ‘실수’란 조롱을 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혁신 가전을 내놓고 있어요. 청소기 시장에선 로보락이 휩쓸고 있어요.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죠. 한국에선 점유율이 45%에 달해요. 로보락은 가성비 제품이 아니라 프리미엄 제품이에요. 가격이 100만원을 훌쩍 넘죠. 그럼에도 인기가 있는 건 압도적인 성능 때문입니다.

◆휴대폰 사업 포기도 뼈아퍼
LG전자의 위기는 중국의 부상이 표면적이지만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휴대폰과 반도체를 놓친 게 결정적이었어요.
삼성전자의 경우 휴대폰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끝내 꺾이지 않고 버텼어요. 갤럭시의 경우 발열이나 혁신의 부재 같은 내부 문제부터 애플의 견제와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 같은 외부 이슈까지 끊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이걸 다 이겨내고 현재 큰 성과를 내고 있죠. 국내에서 10대, 20대가 아이폰이 아닌 갤럭시를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해외에서도 그렇죠. 미국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은 스마트폰은 아이폰이 아니라 갤럭시였어요. 이건 수치로도 나와요. 올 2분기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1%에 달했어요. 작년 2분기 23%에서 껑충 뛴 것이었어요. 애플의 점유율은 기존 56%에 49%로 뚝 떨어졌죠.
물론 삼성전자가 잘해서 점유율이 올랐지만 한편으론 애플이 너무 못한 것도 있었어요. 애플은 최근 수년간 전혀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거의 같은 디자인에 기능만 조금 좋게 하거나 색상만 바꾸는 식이었어요. 그러자 삼성전자에 기회가 찾아왔어요. 삼성전자는 접는 휴대폰 Z플립과 Z폴드 같은 제품으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승부를 걸었고 인공지능 기술도 계속 선보였어요.
특히 갤럭시 Z폴드 같은 폴더블폰은 삼성전자의 입지를 더 강하게 하고 있어요. 과거엔 폴더블폰이 내구성 문제가 있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요즘은 성능이 크게 개선됐거든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일본에서조차 삼성전자 점유율이 10%에 이른 것도 폴더블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폴더블폰의 위력은 죽은 모토로라마저 살려낼 정도였어요. 모토로라는 삼성전자 갤럭시 Z플립보다 30~40% 저럼한 ‘레이저’ 시리즈로 최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어요. 최소한 폴더블폰 시장에서만큼은 삼성전자마저 제쳤을 정도입니다.
2021년 휴대폰 사업을 접은 LG전자가 이 사업을 이어갔으면 모토로라처럼 기회를 잡았을지도 몰라요. LG전자는 자회사 LG디스플레이를 통해 애플 아이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를 공급해요. 또 아이폰의 카메라 모듈은 LG이노텍이,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맡고 있어요. 스마트폰 핵심 부품을 다 갖고 있으면서 정작 스마트폰은 없는 것이죠. 주력 고객사인 애플이 잘해주면 그나마 괜찮은데 그것도 아니라 아픔은 배가 되고 있죠.
인공지능 시대에 반도체 산업이 부상한 것도 뼈아픈 대목이죠. LG전자도 한때 메모리 반도체 강자였어요. 하지만 IMF 사태 직후인 1999년에 정부 주도의 산업 빅딜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에 넘겼어요. 대신 현대전자의 LCD 사업을 받았죠. 작고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훗날 “내 생애에서 가장 괴로운 결단이었다”고 할 만큼 반도체 사업 포기를 아쉬워했어요. 이 현대전자가 오늘날 SK하이닉스의 전신이죠. SK하이닉스는 현재 시가총액 300조원을 넘어 삼성전자 다음 가는 한국 굴지의 기업이 됐어요. 반면 현대전자 LCD를 받아서 키운 LG디스플레이는 시가총액이 7조원대 수준에 불과하죠. 물론 LG가 반도체를 잘할 수 있는가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긴 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 게 두고두고 ‘한’이 될 듯합니다.
물론 LG전자가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에요. 반등의 여지도 있죠. 자동차부품 사업을 꾸준히 키워서 성과를 낸 게 대표적이에요. LG전자는 자동차 내부의 디지털 계기판, 센터 디스플레이, 내비게이션, 차량용 운영체제, 통신 모듈 같은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요. 고객사도 GM, 폭스바겐, 볼보, 벤츠 등으로 꾸준히 넓혀가고 있고요. 이런 부품은 LG에너지솔루션의 자동차 배터리, LG이노텍의 차량용 카메라와 시너지 효과도 크게 내고 있어요. 자동차부품을 담당하는 LG전자의 VS사업부는 올 들어 분기당 1000억원 넘는 이익을 안겨 주고 있어요. OLED가 자동차 디스플레이에 광범위하게 쓰일 경우 또 한번 기회를 맞을 수도 있죠.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도 여전히 우위를 점유하고 있고요. 위기 때마다 새 길을 제시했던 LG전자가 이번엔 어떤 새 길을 보여줄까요.
안재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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