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횃불처럼 나도 뭔가 되고 말겠어!’
1983년 3월 28일, 새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이탈리아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 모두가 잠든 어둠 속 한 동양인 유학생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페라의 본고장’에 막 도착한 스물한 살 조수미였다.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오페라의 주역 여성 성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홀로 떠나온 유학길. 붉게 일렁이는 횃불을 바라보는 조수미의 큰 눈망울에 두려움 대신 기대가 가득 찼다. 세계 오페라 무대를 평정한 ‘신이 내린 목소리’의 시작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조수미(62)는 변함없이 세계 각지의 무대에 오른다. 더 이상 이룰 게 없는 정상의 자리에서도 새로운 다짐을 품는다. 횃불처럼 활활 불태우던 젊은 날의 열정을 오래도록 지키며 “꺼지지 않는 은은한 불꽃이 되고 싶다”는 그를 최근 마카오에서 만났다.황금빛 호텔들로 빛나는 도시 마카오. 그 풍경을 닮은 듯한 금빛 드레스의 조수미가 취재진 앞에 섰다. 오는 12월 28일 마카오 최대 럭셔리 리조트 그룹 갤럭시마카오가 여는 ‘갤럭시 뮤직 갈라: 매드 포 러브’를 앞두고서다. 이번이 첫 마카오 방문인 조수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20대 이탈리아 유학 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새벽 3시, 마카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40여 년 전 로마 공항에 첫발을 디딘 그때와 우연찮게 겹쳤다. “당시 제일 저렴한 비행기 티켓으로 서울에서 도쿄, 홍콩을 거쳐 로마에 갔어요. 그때 마중 나오기로 한 지인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아 고생했죠. 처음 유학 갔을 땐 정말 힘들었어요.”
조수미는 1983년 로마 명문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해 5년 과정을 2년 만에 졸업했다. 1986년에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자 주인공 질다 역으로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전설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남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후 밀라노 라 스칼라, 파리 국립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동양인 최초로 주역을 꿰차며 세계적인 프리마돈나로 자리매김했다. 유학 생활 10년 만이었다.
타향살이는 고됐지만 돌이켜보면 인종차별은 크게 겪지 않았다. 압도적인 실력 앞에 피부색을 운운할 사람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문화 강국은 자신들이 인정한 실력자는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나라 출신 성악가를 제치고 무대에 설 기회를 주죠.”
조수미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갠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공연장뿐 아니라 현지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닌다고. “그 나라에 가면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현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 경험을 공연에 녹여 관객과 교감하는 거예요. 나를 풍성하게 채워주고 성장시켜야 노래에도 깊이가 생깁니다. 목소리만 가지고 노래하는 건 너무 싫어요.”
요즘에는 관심사가 바뀌었다. 그는 “지난 40년간 음악적 욕구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며 “최근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료 공연에 서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9월에는 서울 서리풀뮤직페스티벌, 경기 시흥아트센터 프리뷰 페스타 등 무료 공연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예전 같으면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는 무대에 섰을 거예요.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같은 날 어떤 무대에 설 건지 고르라고 한다면 이제는 더 많은 분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을 택할 것 같아요.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식사하며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공연,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아, 어젯밤 공연 너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공연이요.”
조수미는 “자신이 참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정당당하게 참 잘 걸어왔거든요. 오직 제 목소리 하나로 여기까지 왔어요. 지난날의 저한테 잘 견뎌왔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는 이어 “이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건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섰기 때문”이라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조수미 콩쿠르를 통해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꾸는 아이들을 많이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조수미에게 가장 무의미한 단어를 꼽으라면 ‘라이벌’일지 모른다. “라이벌은 저 자신이죠. 지금까지 안 오른 무대가 없고, 안 탄 상도 없어요. 제 인생 전체를 음악에 걸고 살아왔잖아요. 모든 개개인이 그렇듯 저도 스스로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20~30대 때 타오르던 횃불이 은은한 불꽃으로 남아 있죠. 그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계속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카오=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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