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는 말로는 백남준(1932~2006)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종일 미디어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그의 낡은 브라운관 TV들이 그저 투박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설명은 어떨까. 백남준 스스로 말했듯 그는 ‘미래에서 온 무당’이었다. 오늘날 인터넷과 동일한 ‘전자초고속도로’의 개념, 누구나 화면을 조작해 자신을 표현한다는 발상 등을 일찌감치 떠올려 작품으로 만든 게 백남준이다. 그가 상상한 미래에 사는 우리에게 그 원형(原形)인 작품들은 투박해 보일 수밖에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스케치’가 보잉747 여객기보다 단순한 것과 같다. 이런 통찰력과 예지력 덕분에 백남준은 전 세계 주요 미술사 교과서에 반드시 실리는 이름이 됐다.

경북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백남준 : 휴머니티 인 더 서키츠(Humanity in the Circuits)’는 그의 작품과 판화 등 12점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맞는 작품은 백남준이 1991년 우양미술관 개관을 기념해 제작한 ‘고대 기마인상’이다.
이 작품은 역사 교과서에 많이 나와 친숙한 신라시대 유물 ‘말 탄 사람 토기’를 재해석한 것이다. 텔레비전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지역과 세계의 연결을 상징한다.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의제 ‘연결·혁신·번영’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백남준의 대표 연작 ‘나의 파우스트’ 두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괴테의 책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 사회에 대한 백남준의 생각을 분야별로 표현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는 ‘경제학’과 ‘영혼성’이 나왔다.
고딕 성당 같은 구조물과 지폐, 동전 등으로 구성된 경제학은 자본이 신과 같은 절대적 가치가 됐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화려한 구조물과 여러 스크린을 통해 종교적 상징을 보여주는 영혼성은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지속될 수 있는지 묻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후 줄곧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가 대대적인 수리·복원을 거쳐 30여 년 만에 세상의 빛을 봤다.


이 밖에도 1980~1990년대 백남준의 주요작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 시대를 예견한 작품 ‘전자초고속도로-1929 포드’가 대표적이다. 1929년식 포드 자동차 위에 나무로 만든 전통 가마를 배치하고 ‘전자초고속도로’라는 글씨를 붙였다. 이지우 우양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은 세계가 예술로 하나 될 수 있다고 봤다”며 “전통과 현대, 동서양,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며 하나 되는 백남준 특유의 시각언어가 드러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30일까지.


오아르미술관에서는 소장품 기획전 ‘잠시 더 행복하다’가 관람객을 맞는다. 지난 4월 개관한 이곳은 창 전체를 통해 고분이 보이는 ‘왕릉뷰 미술관’으로 입소문을 타며 개관 6개월 만에 18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국내외 작품 49점이 나온 이번 전시에서는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이배 등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설립자인 김문호 관장은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6일까지.
경주=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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