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로토는 불과 2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일본의 기술 제휴사 미로토는 자사 기술로만 회사를 운영할 것을 강요했다. 기어이 독자 기술을 개발하면 인연을 끊겠다고 했다. 기업 존립이 위태로운 암담함 속에서 48세의 이경수 대표는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떠날 테면 떠나라. 영원토록 하청업체로 남을 수는 없다.’ 한국미로토는 코스맥스의 전신이다. 글로벌 1위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로 성장한 바로 그 코스맥스 말이다.연 매출 2조원을 훌쩍 뛰어넘으며 ‘K뷰티 제국’을 이끈 코스맥스의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지금 코스맥스의 연간 화장품 생산능력은 38억 개에 이른다. 글로벌 1위 화장품 ODM 업체란 타이틀을 거머쥔 것도 벌써 10년째다. 자사 기술만 쓰라고 윽박지르다가 떠나가 버린 제휴사 미로토의 매출은 일본 내에서도 30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얼마 전 기자에게 말했다. 특유의 담담한 어투로. “창업 2년 만에 제휴사를 놓쳤는데 겁이 왜 안 났겠어요. 그런데 겁먹고 있을 틈도 없었어요. 그저 해야겠다 싶은 일을 했죠. 어떻게 해냈을까요.”
코스맥스 성공은 코스맥스만의 경사가 아니었다. 한국 화장품 회사들이 연간 100억달러(약 14조원)를 수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발판이 됐다. 현재 한국의 뷰티 브랜드는 4만 개가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생산설비가 아예 없다. 생산설비는커녕 화장품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말만 하면 만들어주는 회사가 있으니 시장에서 먹힐 만한 기획·마케팅 역량만 있으면 된다.
코스맥스는 중국, 미국에 이어 인도와 유럽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인도에서는 인도 브랜드의 화장품을 제조해 인도인들에게 팔고, 유럽에서는 유럽 브랜드의 화장품을 생산해 유럽인들에게 판매한다. 한류가 시들더라도 유효한 전략이다. 지금도 상위 20개 글로벌 화장품 업체 가운데 16곳이 코스맥스와 거래하고 있다.
어느덧 79세인 이 회장은 오늘도 꿈을 꾼다고 한다. “회사 창업해서 어려운 것은 다 잊어버리자. 이제 우리는 글로벌 넘버원이다. 자신 있게 나가자.” 이 회장의 새로운 꿈과 지금 이 순간에도 30여 년 전 이 회장과 같은 결기로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나아가는 우리 기업인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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