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주요 법무법인의 합병으로 본격화된 국내 대형 로펌 시대가 25년을 맞았습니다. 개인 송사 중심에서 기업자문, M&A, 경영권 분쟁, TMT 등 전문·세분화된 법률 서비스 체계로 전환되며, 대형 로펌들은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주요 로펌의 탄생부터 성장기까지의 역사를 조명하며, 대한민국 리걸 마켓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망합니다.

법무법인 세종에 2025년은 의미가 남다르다. 연매출 4363억원(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두며 '4000억 클럽'에 가입한 동시에 광장을 제치고 로펌업계 3위로 우뚝 올라섰다. 2007년부터 굳건하게 유지돼 온 김앤장법률사무소, 광장, 태평양의 '3강(强)' 체제가 무려 18년 만에 깨진 것이다. 세종 내부에선 태평양을 넘어 김앤장과 'Top 2'에 오를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만큼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조직 문화 속에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업무 시너지가 가감 없이 발휘되고 있는 로펌이란 평가다.
이런 고무적인 분위기는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창립 이래 연매출이 1000억원을 넘어서기까지 28년, 2000억원까지는 그로부터 10년이 걸렸는데, 3000억원까지 4년, 4000억원까지는 단 2년이 소요됐다. 2021년부터 세종을 이끌어 온 오종한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8기·사진)의 수평적 리더십이 조직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취임한 이래 5년간 매출 증가율은 93%에 달했다. 오 대표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대화를 우선시하는 부드러움으로 조직을 북돋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세종에 있거나 세종을 거쳐 간 모든 이들이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게 그의 평소 신조다. 사명에 담은 세종대왕의 '인재 중시' 철학이 40년 넘게 유지돼오고 있는 셈이다. 세종은 1990년대 초 국내 로펌 최초로 도입한 서구식 파트너십 제도에 따른 민주적 경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경영대표(MP)인 오 변호사를 포함해 직접 선거로 선출된 운영위원 5인이 경영에 고루 관여하고 있다.

'1호 증권법 박사'가 만든 로펌
세종의 역사에선 창립자인 신영무 변호사(사법시험 9회)를 빼놓을 수 없다. 세종의 영문명 'SHIN&KIM'의 SHIN이다. 국내 1호 증권법 박사였던 그는 '증권·금융 특화 로펌'이라는 세종의 초기 정체성을 확립했다. 신 변호사를 로펌업계로 이끈 건 그가 군법무관 시절 처음 인연을 맺었던 김영무 변호사(김앤장법률사무소 창립자)였다. 전역 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그는 서울대 법학과 3년 선배였던 김 변호사로부터 미국 로스쿨에서 유학한 얘기, 베이커앤드맥킨지에서의 근무 경험을 전해 들은 뒤 2년 만에 법복을 벗고 로펌업계로 뛰어들었다.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신 변호사는 예일대 로스쿨에서 증권법을 파고들어 박사 학위 논문까지 써냈다. 미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 연수, 뉴욕 로펌 쿠데르 브러더스 근무 등을 거치며 실무도 익혔다. 1980년 10월 5년 만에 귀국한 뒤 고(故) 황주명 변호사와의 인연으로 남산합동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이 사무소가 1983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으로 이전하며 세종합동법률사무소로 명칭을 바꿨고, 신 변호사는 그즈음 어쏘(급여를 받고 일하는 로펌 소속 변호사)로 합류한 김두식 변호사(KIM)와 함께 현재 세종의 기틀을 만들었다. 신 변호사 이후 김 변호사, 강신섭 변호사에 이어 현재의 오종한 변호사까지 세종의 리더십을 쥐었던 대표들은 모두 기업 분쟁과 금융·증권에 특화한 인물들이다.

시장 자유화·IMF 사태 전후 '두각'
세종은 1981년 도입된 자본 시장 자유화 조치와 함께 '물 만난 고기'처럼 움직였다. 외국인전용수익증권 발행, 코리아펀드(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한국 최초의 주식 상품) 설립 등에서 경쟁력 있는 자문을 제공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밖에 국내 최초 해외 전환사채(CB) 발행(삼성전자), 국내 최초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삼미종합특수강), 국내 최초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삼성물산), 국내 최초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포스코) 등 증권 시장 세계화의 시대에 주요 대기업들과 역사를 함께 했다.1990년대 후반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기업들과 살을 맞댔다. 세종은 IMF 사태 전후로 국내에서 있었던 거의 모든 도산 및 기업 개선 작업에 관여했다. 당시 대농, 한일합섬, 통일, 쌍방울그룹, 미도파, 국제상사, 삼성자동차, 기아자동차, 보성, 진로 등 100여 개 기업이 부도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세종의 도움을 받았다. 대우그룹 워크아웃과 하이닉스·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구조조정, 굿모닝시티 회생 등 굵직한 사건에서 자문을 제공한 것도 세종이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도산 및 기업 개선 사례는 현재 우리나라 도산법의 기틀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초 로펌 간 M&A로 '비약'
2000년대 들어 세종은 큰 변화를 맞는다. 2001년 1월 1일, 열린합동법률사무소(이하 열린합동)와의 합병으로 김앤장에 이어 2위 종합로펌으로 올라선 것이다. 열린합동은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을 지낸 황상현 당시 부장판사(사법시험 8회)와 사법시험 6회 수석 합격자였던 이건웅 부장판사 등 고위 법관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곳으로, 송무 역량이 뛰어난 곳이었다. 2013~2019년 세종을 이끌었던 강신섭 변호사(13기)도 열린합동 출신이다.국내에선 처음 있었던 법무법인 간 인수·합병(M&A)은 서울고등학교 동기였던 신영무 변호사와 황상현 변호사 간 교감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법률시장 세계화에 발맞춰 기업 자문과 송무 역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세종은 사회적 파장이 큰 주요 기업 사건을 수임하고 승소까지 거둬내며 또 한 번의 도약에 성공했다. 이후 광장-한미(2001년, 현재 광장), 화백-우방(2003년, 현재 화우) 등 로펌 간 합종연횡이 줄을 이으며 합병이 로펌업계의 주요 성장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합병 이후 세종은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담배, 술, 자동차 배기가스, 고엽제 등 '제조물'을 둘러싼 여러 소송에서 연이은 승소 실적을 내며 제조물책임법 분야에서 유의미한 판례들을 다수 확립했다. '세기의 소송'으로 불리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분쟁에선 SK브로드밴드를 대리해 상대편에 섰던 김앤장에 패배를 안겼다. 최근 들어선 미술품 조각 투자, 커버드본드 발행 등 새롭게 등장하는 시장으로 자문 범위를 공격적으로 넓혀 가며 경쟁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베트남(호치민, 하노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까지 아시아 지역 곳곳에 거점을 만들어 글로벌 역량 강화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기세 남다른 로펌…업계 2위 넘봐
오 대표변호사의 공언대로 세종은 지난해 4000억원 연매출 목표를 달성했다. 2024년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한 그의 임기는 올해까지다. 한때 리더십 세대교체 과정에서 안팎으로 잡음이 일던 시기도 있었지만, 오 대표 취임 후 지배 구조 안정화와 체질 개선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평가다. M&A, 사이버보안, 기업 송무, 조세, 공정거래, 금융 규제 등 주요 분야에서 안정적인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M&A 부문에서 세종은 김앤장에 이어 리그테이블 2위에 오르며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시가총액 기준 규모가 65조원에 달하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간 합병,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와 신세계그룹 간 온라인 플랫폼 합작법인 설립(6조원), SK에코플랜트의 리뉴어스 등 환경 자회사 매각(1조7800억원),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경영권 인수(9000억원)와 소수 지분 양수도 거래, 아워홈 대주주의 경영권 지분 매각(8600억원), 웰투시PE의 에스아이플렉스 인수(4300억원) 등이 대표적인 성과다. 항공업계 초대형 '빅딜'인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합병에 대한 자문은 공정거래 분야 전문 저널인 GCR 어워즈 2025에서 '올해의 아·태 지역 기업결합상' 수상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사이버보안 부문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근무 경험이 있는 강신욱 변호사(33기)를 주축으로 꾸려진 세종 정보통신기술(ICT)그룹은 업계에서 '대체 불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출신의 정연아 변호사(32기), 방통위·쿠팡 출신의 장준영 변호사(35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고문 변호사를 지낸 안정호 변호사(38기) 등 방송정보통신(TMT)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선제적으로 영입해 경쟁력을 갖췄다. 이들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났던 SK텔레콤과 쿠팡 등에 법률 자문을 제공하며 정부 조사 및 분쟁 조정, 형사 고발 건 등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송무그룹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자본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송들을 연달아 수임하면서다. 세종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영풍·MBK 연합을 대리해 왔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간 분쟁에서도 소송 초반부터 관여했다. 아시아나항공과 HDC현대산업개발 간 2500억원 규모 위약금 분쟁에서 아시아나항공을 대리해 상고심까지 최종 승소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조세 분야에서도 2022년 백제흠 대표변호사(20기)의 합류한 이래 글로벌 법률 평가 매체 '체임버스앤파트너스' 평가에서 최우수(Band1) 등급을 획득하며 타 그룹에 뒤지지 않는 실적을 내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전방위적으로 규제가 강화되며 기업들의 법률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세종은 이재명 정부 출범에 발맞춰 △'기업지배구조 전략센터' 발족(상법 개정 대응) △노란봉투법 태스크포스(TF) 출범 △'기업 전략과 조세 센터' 출범(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 대내외 조세 환경 변화 대응) △각종 규제 대응을 위한 형사·송무·공정거래 부문 인력 대폭 강화 등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리스크에 촘촘히 대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올해에는 교보빌딩, 경희빌딩, 에이스타워, 스테이트타워에 이은 5번째 사무실인 광화문디타워(사진)로부터 약 200m 떨어진 그랑서울 꼭대기 층을 임대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고객 응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주요 로펌 중 가장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세종의 행보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시점이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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