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까진 '안 되면, 뭐 어때' 이런 마음이었거든요. 어차피 제 돈으로 제가 좋아서 한 거라. 그런데 벤처 사업은 그게 아니잖아요. 꼭 이익이 나고,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 게 현재 제 목표에요."
11월 20일 자신이 개발한 헤어롤을 출시하는 '사업가' 구혜선의 말이다.
구혜선의 경력은 개성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연예계에서도 손에 꼽힌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얼짱'으로 명성을 얻어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의 유명 매니지먼트사와 연습생 계약을 맺고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구혜선은 이후 MBC '논스톱5'를 시작으로 SBS '서동요', '왕과나'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주목받았다. 특히 2009년 KBS 2TV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 금잔디 역을 맡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부터 구혜선은 자신만의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연출작을 준비했다. 연기와 연출뿐 아니라 제작, 각본, 음악, 기획, 편집까지 멀티맨으로 활약하며 그만의 영상물을 만들어온 것. 그가 뒤늦게 성균관대 영상학과에 진학한 것도 이 같은 활동의 연장선이었다.
여기에 음반을 제작해 발표하고, 꾸준히 그린 그림을 전시하며 종합예술인의 면모를 보여줬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면서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한 구혜선은 이곳에서 벤처 창업 소식을 알려왔다. 구혜선에게 "완전 새로운 분야의 도전 아니냐"고 묻자, "따로 떨어져 보이지만 다 연결돼 있다"며 "특허는 성대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 낸 거였는데, 카이스트에 오니 바로 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전하며 웃었다.
구혜선이 진학한 영상학과에서는 영상 기기를 다루고, 그와 관련한 기술 등도 함께 배웠는데, 이 때문에 특허 출원이 졸업 요건이었던 것. 구혜선은 "문과의 사고로 이과의 도구를 다루면서 예체능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고 학부 과정을 소개했다.

구혜선이 개발한 헤어롤 '구롤(KOO ROLL)'은 일반적인 둥근 헤어롤과 달리 휴대 시엔 판판한 직사각형 형태로 접혔다가 사용할 때 구부리면 동그랗게 말리는 구조다. 구혜선은 '카이스트 탈모 샴푸'로 유명한 그래비티 샴푸를 내놓은 교내 벤처 폴리페놀팩토리와 손잡고 상용화 작업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구혜선의 법인 '스튜디오 구혜선'이 벤처 인증을 받으며 협업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구혜선은 "곧 출시될 헤어롤에 집중하기 위해 미리 수업도 다 듣고 논문도 썼다"며 "논문이 통과돼야 하는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 불안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보였다.
"사업과 학업, 둘을 병행하기 힘들 거 같아 전투적으로 했죠. 목표는 조기졸업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웃음) 그동안 방학도 없이 대전에서 살았어요. 주중 수업, 주말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데, 전 주중 수업을 선택해서 주말 수업까지 다 들었어요. 2년 과정을 1년 안에 끝내려 2배로 수업을 들은 거죠. 수업이 없는 날에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학교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굉장히 바쁘게 살았어요. 지난주에야 모든 과정이 마무리됐어요. 이제는 사업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구혜선은 대학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 특허를 냈을 때만 해도 구롤이 이렇게 빨리 세상에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구혜선은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할 때 롤을 가져갔는데, 그 방송을 학교 분들이 보신 거 같다"며 "그래비티 팀과 밥을 먹자고 하셨고, 그게 인연이 돼 이것저것 함께 하게 된 거 같다. 학교에 오니 기회가 많아졌고, 그걸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생각지도 못한 길들을 걷게 됐다"고 전했다.

구혜선은 본격적인 제품 출시에 앞서 최근 회사 사옥도 직접 지었다. 그야말로 '직접' 짓기 위해 "학교에서 건축, 토목 수업도 들었다"고. 건물에는 구혜선의 이전 작업을 이어온 '구혜선 필름'과 앞으로 그가 시행할 모든 작업이 이뤄질 '스튜디오 구혜선'이 있다. 구혜선은 "아직 직원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고 했지만 그런데도 그만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들여 해당 건물을 지었다고.
그는 "이제는 이전에 해왔던 것들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면서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얼마 전 엄마랑 통화하는데, '안돼도 괜찮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아니야, 이제 성과를 낼 거야'라고 했어요.(웃음) 그간 많이 실패해 봤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으니까요. 물론 저에겐 굉장히 필요한 시간들이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창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엔 '답답하다', '자아가 비대하다' 이런 식으로도 보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전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조금 더 알려진 사람이라 튀어 보이는 거 같아요."
연예계에서는 "다소 엉뚱하다"는 평가도 듣던 구혜선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자기 객관화가 된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가장 주목받았던 시기에도 쉼 없이 다른 길을 찾고, 시도했던 것도 "성향상 언제까지나 선택받길 기다릴 수 없을 거 같았다"는 메타 인지가 바탕이 됐다.
그렇게 자기 생각과 이야기를 꾸준히 그림으로, 글로, 음악과 영상으로 만들어가고 쌓아갈 뿐 아니라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온 구혜선이다. "20대는 배우였고, 30대는 경제적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면, 40대에는 지금까지 해온 걸 다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면서 앞으로의 활동을 더욱 기대케 했다.

구혜선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아티스트"라고 답했다.
"아티스트라고 하면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데, 제가 하는 것들을 다 떼서 보면 그거 말고는 없는 거 같아요. 물론 지난 몇 년간 가장 몰두했고, 마음에 드는 직업은 학생이지만요.(웃음) 원래는 구롤에 앞서 영화를 먼저 만들려고 오랫동안 작업해 온 것도 있어요.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연출, 기획, 제작, 음악 등 저의 원맨쇼로 크레딧에 '구혜선, 구혜선, 구혜선'이 올라가는 결과물이 나올 거 같아요."
내년이면 구혜선이 연출을 시작한 지 20년이 된다. 구혜선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는데, 배우들은 몰라도 감독님들은 다 아는 사람들이라 놀랐다"며 "이 정도 하니까 이제 어딜 가도 무시하지 않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면서 웃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고, 꾸준히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제안은 정중히 거절한다"면서 나름의 기준도 명확했다.
"허황한 꿈과 사업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내가 못 하는 건 다른 사람과 협업하면 되지만, 욕심내진 않아요. 실패도 자산이에요. 제 인생은 안정화 단계로 가고 있어요. 성공은 보장되지 않지만, 그래도 가야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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