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인식 바꿀 수 있게 하는 매개체
이런 생각을 공원 건축에 이론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있다. 1983년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설계한 파리의 라빌레트 공원이다. 그는 도살장이었던 곳을 공원으로 개발하면서, 20세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원이어야 한다는 설계조건에 맞춰, 보통의 공원처럼 목가적 풍경을 갖는 픽처레스크한 공원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탐색의 장소로서 정보가 상호 전달되는 지적인 장소로 만들려고 하였다.

빨강색으로 강하게 표현된 10mX10mX10m 크기의 3층 규모의 폴리라는 조형물을 추상적인 그리드 체계의 26개 지점에 설치하여 이것을 바라보며, 기억하며, 공원이라는 공간의 존재를 다르게 인식하게 하였다. 어떤 것은 카페로, 어떤 것은 전망대로, 매표소로, 다양한 기능들을 품으면서 공원을 유기적으로 조합한다. 창조된 기억의 파편들을 공원 곳곳에 심어 도살장의 이미지를 지워버리는 새 이미지를 창조해낸 것이다.
폴리는 원래 유럽에서 별 쓰임새 없이 만들어진 공원 내의 조형물 같은 것들을 일컬었다. 로마 유적지의 탑이나 기둥을 모방해 조형물로 만들었던 폴리를 추미가 의미를 변형하여 도시공간을 기억나게 하는 형체들의 연속극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폴리를 건축물에 현대적으로 적용한 건축가는 1990년 일본의 오사카 꽃박람회 프로듀서를 맡았던 아라타 이소자키이다. 12명의 건축가에게 공원 내 오브제를 폴리처럼 만들게 하며 폴리의 건축적 의미를 찾아보려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별 소득이 없었다. 조그마한 임시 조형물들이 지어졌을 뿐 도시공간의 요소로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꾸준한 노력 뒷받침, 광주의 새 명물로
우리나라의 승효상 건축가는 골프장을 계획하며 조각이 있는 공원 개념을 제안하며 쉼터 등, 조그만 건물들에 여러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폴리처럼 만들게 하려 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 또한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2011년 승효상 건축가가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되면서 광주비엔날레 행사의 한 항목으로 도시공간 내 폴리를 제안하였고, 예향 도시 광주의 염원과 맞아떨어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광주시를 방문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조형물들을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그것이 폴리이다.

처음 승효상씨의 폴리는 디자인을 도시공간이라는 현장으로 끌어내려는 의미로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도시공간의 재생을 목적으로 독특한 기능을 갖는 작은 구조물로 인식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광주의 폴리는 2024년까지 5차례 진행되었다. 광주에는 이미 30여 개의 폴리가 만들어져 있다. 기능이 없이 오로지 조형물처럼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지만, 몇몇은 다양한 기능들을 담고 있어 도시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한 도시에서 폴리를 체계적으로 만들어간 사례가 없기에, 앞으로 광주는 세계적 명성을 얻는 폴리의 메카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도시공간을 이해하고 조직하는데 폴리가 점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구성 방식이 도심 내에 특정한 장소만 의미가 있고 그 주변 보통의 장소들은 의미가 없게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을지 우려되기도 한다. 어린아이처럼 지역 전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점적인 랜드마크에 초점을 맞추고 기억이 형성될 수 있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게 되면 지역 전체의 영역이 도시의 이미지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역, 시청,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특정한 랜드마크 건물에 대한 인식이 도시공간을 이해하는 데 좋은 역할을 하지만 북촌, 강남, 신촌 등 한 지역 전체에 좋은 인식이 생기며 사람들에게 좋은 도시공간으로 이해되는 것이 전체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 더 좋은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