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4일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돈을 풀겠다는 정책 기조를 두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노믹스 망령과 결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 정책으로,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가 핵심이다.
다카이치는 이날 연설에서 경제·안보 등 주요 정책 구상을 밝혔다. 경제 분야에선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내걸고 재정 지출을 확대하기로 했다. ‘책임 있는’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방점은 ‘적극 재정’에 찍혔다는 평가가 나온다.‘강한 경제’를 가장 강조했다. 다카이치는 “강한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재정 지출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소득을 늘리고 소비 심리를 개선해 세수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물가 안정 대책도 내놨다. ‘휘발유세 잠정세율’ 폐지 등이 대표적이다. 재원 확보를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짜겠다는 방침이다.
지방교부금도 늘려 지역 실정에 맞게 지원하겠다고 했다. 물가 상승을 반영해 소득세 기초공제를 늘리는 한편 소득세가 공제액을 밑도는 저소득층에는 차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이른바 ‘급부형 세액공제’ 제도를 설계하겠다고 했다. 일률적 감세나 현금 지급보다 저소득층 지원에 초점을 맞춘 제도다.
산업 정책에선 ‘일본 성장 전략 회의’ 출범을 내세웠다. 경제 안보,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 등에 대응해 ‘위기 관리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조선, 양자 등 전략 분야는 투자 촉진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카이치의 재정 확장은 ‘아베노믹스 시즌2’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도입된 아베노믹스가 지금 같은 인플레이션 시대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 풀기’ 정책이 물가를 더 자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 소비자물가는 2022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줄곧 정부와 일본은행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현재 일본 경제 상황은 아베노믹스 도입 때와 다르다”며 “대처해야 할 것은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라고 지적했다.
다카이치가 앞서 자민당 총재 선거 기간 적자 국채 발행까지 용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재정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작년 일본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36.7%로 세계 최고다. 일본 정부는 내년 국채 이자 지급비로만 13조엔가량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보다 24% 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아울러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국 확대에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 “중요한 이웃 나라인 한국과 정상 간 대화로 관계 강화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CPTPP 가입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에 대해선 안보상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경을 통해 GDP 대비 방위비 2%를 연내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일본 정부의 기존 목표는 2027년 달성이었는데 2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내년엔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안보 3문서’를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다카이치는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 일본을 다시 세계의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