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고두현
저를 좀 바꿔 주십시오.
지금은 말고 조금 있다가요.
그때 내 나이 스물하고 둘이었어라.
스물하고 둘이었어라.
물소리 듣다 잠 깬 새벽
밀라노에 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무화과나무 아래 발가숭이 눈물 쏟으며 이번엔
왜 지금 아니고 내일 내일인가요.
탄식할 때 하늘엔 듯 꿈엔 듯 아이들 노랫소리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경전 펼치고 첫눈 들어온 곳 읽으니
오 빛이 있어라. 빛이 있어라.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등짝을 후려치는 장대 뿌리 소금기둥
먹장 걷고 해 비추니 섬광이 눈부셔라.
비로소 말문 트이고 귀 열리던 그날
내 나이 서른하고 둘이어라. 서른하고 둘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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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초대교회 교부(敎父)였던 아우구스티누스. 그의 생애는 진리를 향한 구원의 불꽃, 진리에 대한 열애의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숱한 역경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여러 사상을 전전하며 깊은 내면 방황을 겪었고,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노예 출신 여자와 동거하면서 사생아까지 낳았지요. ‘지각없이 들뜬 정욕’ 때문이었습니다. 세속적인 출세욕에 휘둘리기도 했습니다.
정욕과 출세욕 때문에 휘청거리던 그는 자신을 바꿔 달라고 몇 번이나 기도하면서도 “지금은 말고 조금 있다가”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마음을 돌이켜 먹는 게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가 과거를 뉘우치고 진정으로 신앙에 눈뜬 회심(回心)의 계기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로마에서 밀라노로 옮겨온 뒤, 집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를 거닐며 고민하던 그는 어디선가 “집어 들고 읽어라(Tolle, lege)!” 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뭐라도 집어 들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에 들어와 눈에 띄는 책을 들고 펼쳐봤는데, 그건 성서 ‘로마서 13장 13절’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장 13~14절
이 구절에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충격을 받은 그는 회심을 결심하고 암브로시오 주교 밑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기 시작하고 마침내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32세. 그동안 동거했던 여인은 그의 회심을 알고 곁을 떠났습니다. 그녀 역시 회심해 수녀원에 들어가 남은 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고백록』 8권에 당시의 회심 과정이 감동적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영감을 주고 있지요. “사람들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센 파도와 넓게 흐르는 강과 별들을 보며 놀라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명언도 함께 새기게 됩니다.
제가 이 시 「무화과나무 아래의 회심」을 발표하고 난 뒤, 김재홍 시인?문학평론가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의 <평신도>에 짧으면서도 강렬한 독후감을 써 주었습니다. 시인과 평론가, 사도의 시각을 겸비한 그의 귀한 리뷰를 아래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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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있어 당신을 모르면서 부르오리까?” - 『고백록』
스스로 고백한 대로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한 삶을 살았다. 육체가 지배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며, 궁핍하지 않음에도 도둑질을 하는 등 수치스러운 죄를 갈망하고 하느님을 멀리 떠나 있었다. 오래도록 마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가스테에서 카르타고로, 또 로마에서 밀라노로, 다시 히포로… 하느님을 향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여정은 그 어떤 유혹과 술수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의 타락과 방탕도 하느님을 알아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어떻게 ‘당신을 모르면서 부르오리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하는 친구가 죽어 “보이는 것마다 죽음”으로 보일 때에도 “저 슬픔이 내 맘에 사무치기는 죽을 사람을 안 죽을 것처럼 사랑함으로써 내 영혼을 모래 위에다 쏟아 놓은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었더이까.”라며 마침내 삶도 죽음도 하느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고두현 시인의 작품에서 “저를 좀 바꿔 주십시오.”라는 첫 행은 시의 주제이자 두괄식 구성의 묘미를 한껏 뽐낸다. 시를 읽는 첫 순간부터 절박감이 읽는 이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다. ‘누가 있어’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너나없이 부족한 사람, 불량한 인간이다.
이어지는 구절들. 눈물과 탄식을 거쳐 방탕과 술과 정욕의 유혹을 지나 기어이 도달하고야 마는 눈부신 섬광. 그러나 10년이 걸렸다. 스물두 살 청년이 서른둘이 되어서야 비로소 말문이 트이고 귀가 열렸다.
「무화과나무 아래의 회심」은 마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삶을 보는 듯, 아니 아니 우리 모두의 솔직한 현실을 보는 듯 하느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하느님, 제발 “저를 좀 바꿔 주십시오.” -김재홍 사도 요한/ 시인, 문학평론가, <평신도> 편집장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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