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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아니라 ‘문맥’을 읽는 기술

입력 2025-10-24 09:01   수정 2025-10-24 09:02

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 서로 마주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는 정말로 마법 같은 행위다. 서로 차례를 지켜가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신경 메커니즘이 동원돼야 한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빠르게 이해해야 하고, 동시에 어떤 말을 건넬지 생각하면서 입을 떼야 한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교대하는 순간을 ‘턴’이라고 부르는데, 영국의 언어학자인 스티븐 C. 레빈슨의 연구에 따르면, 턴을 위해 필요한 시간은 평균 0.2초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고 상대방이 말을 이어받기까지 걸리는 시간 ‘0.2초.’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대화의 0.2초(?話の0.2秒)>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놀라운 언어의 세계로 안내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언어학 전공자이자 출판사 편집자, 그리고 36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로 ‘느슨한 언어학 라디오’를 진행하며 지식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미즈노 다이키(水野太貴)가 썼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면접에서 떨어진 자신의 흑역사를 공개하며 책을 시작한다. 한창 취업 활동을 하던 시절, 한 출판사 면접에서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미즈노는 “최근 대학을 은퇴한 은사를 만나고 싶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썰렁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관은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하면서 당황스러워했다. 출판사 면접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묻는 질문에 대한 바람직한 답은 무엇이었을까? 긴장한 까닭에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문맥을 파악하지 못한 미즈노의 면접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1952년 영국에서 발생했던 무장강도 사건과 법원 판결은 문맥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다. 19살의 데렉 벤틀리와 16살의 크리스토퍼 크레이그가 제과 회사 창고에 침입하려다가 주민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과정에서 크리스토퍼는 경찰을 향해 총을 쐈고, 머리에 총을 맞은 경찰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법정에서는 크리스토퍼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 데렉이 했던 말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데렉은 “Let him have it, Chris!”라고 외쳤는데, 검찰은 이를 ‘경찰을 쏴라’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의도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데렉의 변호인은 같은 말을 두고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let’은 ‘주다’의 뜻이고, ‘him’은 ‘경찰’을, 그리고 ‘it’은 ‘총’을 가리키는 것으로, 맥락상 ‘총을 경찰에게 건네줘’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따지고 보면 두 가지 해석 모두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데렉은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실제로 총을 쏜 크리스토퍼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혹시 시계 있어?”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질문의 의도는 “시간을 좀 알려달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응. 시계 있어”라고 답변할 게 아니라, “지금 몇 시 몇 분이야”라고 답해야 한다. 책은 실제로 많은 대화에서 문맥을 이해하지 못해 이러한 오류나 착각이 발생한다고 전하면서, 대화에서 생기는 어색한 침묵이나 끊김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생겨난다고 지적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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