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집단 납치·감금 사건의 여파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국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캄보디아에 대한 ODA를 중단하고 필요하다면 군사적 조치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선 캄보디아 원조를 이어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캄보디아 ODA 프로젝트를 백지화한 지방자치단체도 등장했다. 새마을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캄보디아 원조를 준비 중이던 경상북도는 최근 편성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태국과 국경분쟁이 불거진 데 이어 납치·감금 사건까지 터진 상황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건 무리라는 게 경북도의 설명이다.
캄보디아 내 범죄 단지는 시아누크빌 등 50여 곳이며, 활동 인원도 20만 명에 이른다. 중국 범죄 조직이 세계 각국에서 조직원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세를 불리고 있다. 캄보디아인은 물론 한국인도 범죄 조직에 가담 중이다. 이 지역은 현재 마약, 사기, 폭행, 강제노동 등이 만연해 있다. 캄보디아 내 범죄 집단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공직사회 부패가 극심해 경찰이 뇌물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권력자와 범죄 조직이 결탁한 사례도 허다하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도 실종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공권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한국의 캄보디아 원조는 외려 늘고 있다. 2025년 ODA 예산은 4353억원으로, 전년(2178억원)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캄보디아의 경제발전을 지원,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ODA의 목적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ODA 사업을 이어가는 것은 적절치 못해 보인다.
OD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현지에 설치한 시설이나 장비가 범죄 집단에 넘어갈 우려가 상당하고, 현지에 파견된 한국인 직원들의 안전도 담보하기 어렵다. 한국에 비협조적인 범죄 국가를 나랏돈 들여 도와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캄보디아 사태가 진정되고 현지 범죄 조직이 소탕될 때까지 ODA 사업을 중단하는 게 맞다. 적어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갑작스럽게 ODA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지금까지 캄보디아에 들인 노력이 수포가 된다. 최근 캄보디아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엔 국내 뉴스를 접한 현지인의 불만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죄를 저지른 건 중국인과 한국인인데, 왜 캄보디아가 범죄의 온상이라고 욕을 먹어야 하느냐’는 게 골자다. 범죄 조직에 가담한 한국인이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ODA 프로젝트까지 중단되면 캄보디아와의 관계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지 진출 기업과 교민 사회에도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은 취소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도 이런 사정을 두루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캄보디아 사태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현지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사안을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갑갑하더라도 캄보디아 정부에 수사 협조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 정석이다. 양국 간 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관련국들과 다자간 협력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범죄 조직은 있기 마련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에서 범죄가 일어났다고 해서 국가 전체를 ‘악의 제국’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ODA 이슈에 대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연기하는 건 불가피하지만, 아예 ODA 지원을 끊거나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사태 해결은 물론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정치인들도 자극적인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ODA 전면 중단, 군사적 조치 검토 같은 날 선 주장은 반한 감정만 부추길 공산이 크다.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