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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는 B사 소유 건물을 임차해 사업을 영위하던 중 경영난에 직면했다.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A사의 지급정지나 회생절차 신청 시 B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두었다. 한편 A사는 C사로부터 물품을 공급받으며 자사 소유 토지에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결국 A사는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고, C사는 그 이후에도 계속 물품을 공급했다.
이 경우 B사는 약정대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또 C사가 회생절차 개시 후 공급한 물품대금도 근저당권으로 담보받을 수 있을까? 기업 회생 실무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 두 가지 쟁점은 채무자의 재기 가능성과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 보호라는 가치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을 보여준다.
도산해지조항의 효력,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계약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재산 상태 악화에 대비해 이른바 '도산해지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키곤 한다. 지급정지나 회생절차 신청 등이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당연히 종료되도록 정하는 조항이다. 특히 고가의 부동산 임대차나 대규모 거래에서 이런 조항을 흔히 볼 수 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자기 보호 장치로 보인다. 그러나 회생절차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기를 위해 회생절차를 신청한 기업이 그 신청 사실만으로 사업 기반이 되는 핵심 자산을 잃게 된다면, 회생절차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조항의 효력을 부정하는 견해가 주류다. 대법원도 회생절차의 목적과 취지만으로 일률적인 무효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에는 효력을 부정할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이란 당사자 쌍방이 서로 대가 관계에 있는 채무를 부담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이행하지 않은 상태의 계약을 말한다. 이런 계약에서는 채무자 회생법이 관리인에게 계약 이행 또는 해제·해지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회생절차 개시, 근저당권 피담보채권의 마지노선
두 번째 쟁점은 회생절차 개시가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 범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근저당권은 계속적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특정 다수의 채권을 일정 한도까지 담보하는 저당권이다. 그렇다면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 발생한 채권도 당초 설정한 근저당권으로 담보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학계와 실무계의 논쟁이 있었으나, 회생절차 개시로 피담보채권이 확정된다는 '확정설'이 다수 견해다. 회생절차 개시로 채무자의 재산 관리·처분권이 관리인에게 전속되면서 법률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을 중시한 것이다.
대법원 역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기준으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확정되므로, 그 이후 발생한 채권은 근저당권으로 담보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판단했다.
회생 기업에 숨통을 트다
이런 법리를 바탕으로 앞의 사안을 분석해보자. A사와 B사의 임대차계약은 전형적인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이다. A사는 월차임을 계속 지급하고 기간 종료 시 건물을 반환해야 하며, B사는 A사가 건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따라서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이 부정되어 B사는 회생절차 신청만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C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사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 시점에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확정되므로, 그 이후 공급한 물품대금은 근저당권으로 담보받지 못한다. 다만 이 채권이 회생절차상 공익채권에 해당해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할 문제다.
결국 이 두 법리는 모두 위기에 처한 기업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채권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기업 회생이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서는 때로 개별 채권자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법제의 기본 철학이다. 경영 위기를 맞은 기업과 거래하는 당사자들은 이런 법적 원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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