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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 논란과 주주 보호의 새 열쇠, 디스커버리 제도 [최성수의 똑똑한 자본시장]

입력 2025-10-26 07:00   수정 2025-10-26 15:42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최근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M&A(인수합병)에 대한 업무상 배임 무죄 판결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인수기업의 임원은 배우자가 대주주로 있는 엔터사를 인수하면서 외부 회계법인의 가치평가나 기업실사 절차를 생략했다. 특수관계인 거래로서 이해 상충 회피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검찰은 이 임원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경영상 필요에 따른 결정이고 객관적 손해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불명확한 배임죄의 한계
이번 남부지법 판결은 “기업 경영진의 어떤 행위가 범죄로서의 배임죄에 해당하는가”라는 논의를 다시 한번 환기한다. M&A 과정에서 인수기업의 가치는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정도의 금액 범위에서, 어떠한 근거를 남기고 결정해야 배임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표이사 또는 이사회가 동의한 거래라면 형사상으로는 더 이상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보아야 할까.

또 대주주가 찬성한 거래라면 M&A의 위법성은 사라질까. 해당 거래가 결국 성공적인 M&A로 평가됐다면 절차상 위법이 있더라도 처벌할 수 없을까. 이런 질문은 기업 인수합병 현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고,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와 형사법 체계가 맞물린 복합적 문제를 드러낸다.


현행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를 업무상 배임죄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타인의 사무’, ‘임무 위배’, ‘손해’ 등 업무상 배임죄의 핵심 개념이 모두 불분명해, 법관 및 수사기관 담당자에 따라 처벌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임죄는 “명확한 법률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a poena sine lege certa)”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배임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배임죄의 폐지 또는 대폭 개정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으며, 최근 그 논의는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디스커버리, 배임죄의 대안이 될까
현재 논의되는 배임죄의 입법 대안은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배임행위 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명확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예컨대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영업비밀을 제삼자에게 누설하는 행위 등 명시적 유형만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둘째, ‘경영판단의원칙’을 법률에 명문화해 경영상 판단을 형사면책 사유로 인정하는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형사처벌 대신 ‘증거개시제도(Discovery)’를 도입하여 피해자나 주주가 필요한 정보를 민사 절차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한국에서는 주주가 기업 인수합병이나 투자 과정에서 피해를 보더라도 회사 내부 자료에 접근해 민사상 손해배상에 필요한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 상법상 회계장부 열람청구권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료는 계약서나 회계장부 등 공식 문서에 그친다.

이 때문에 실제 거래 과정에서 오간 이메일, 검토보고서, 내부 의사결정 자료 등에는 접근할 수 없다. 주주는 경찰이나 검찰 수사에 기대어 ‘업무상 배임’ 고소를 통해서만 실질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즉, 형사절차가 사실상 민사 증거 수집의 우회적 경로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는 주주의 정당한 감시 기능을 왜곡시키고, 회사 내부 문제를 곧바로 형사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경영진 견제·소송 효율화... 주주권 실질화 위해선
미국식 디스커버리가 도입된다면 이러한 비효율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법원의 명령으로 거래에 관여한 경영진의 이메일이나 관련 자료를 제출받고 제삼자인 거래상대방도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다면 디스커버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경영진이 주주를 의식하고 사익적 거래를 자제하게 되는 견제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단순히 소송 절차의 효율화가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적·문화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디스커버리는 재판 전에 당사자들이 소송 관련 증거를 상호 공개하는 절차고, 미국 민사소송의 90% 이상이 이 단계에서 합의로 종결된다. 정보가 투명하게 드러나면 쟁점이 명확해지고, 불필요한 재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도 소송 기간이 단축되고, 분쟁 조정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디스커버리서 드러난 자료는 형사절차 없이도 주주의 민사적 권리행사를 돕고, 실질적인 경영 감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디스커버리의 중대한 부작용으로 영업비밀 유출을 우려한다. 그러나 미국식 디스커버리 역시 이를 충분히 고려해 보호명령(Protective Order) 제도 등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와 법리를 마련하고 있다. 제도 도입을 반대할 결정적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디스커버리의 도입은 형사처벌 중심의 사후 규제에서 정보 공개와 책임 경영 중심의 예방적 규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상법 개정이 주주권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만큼, 디스커버리가 정착된다면 소송 절차적 측면에서도 한국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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