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을 배출하고 있는 한국에 크레모나와 비견할 만한 곳이 있다면 서울 서초구다. 서초동 우면산 초입엔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이 모여 있다. 악기 공방과 음악 연습실도 가득하다. 서초역 주변은 10년째 가을마다 서리풀뮤직페스티벌이 열린다. 강은경 서초문화재단 대표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신문사에서 기자와 만나 “서초구를 아시아의 크레모나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공연과 악기 제작 산업이 맞물린 서초구만의 정체성을 살리겠단 얘기다.

예술과 법, 모두 아는 전문가
“세계적으로도 서초구처럼 공연장, 악기 공방, 축제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은 드물어요. 민간, 공공기관 등과 연계해 서초구를 하나의 예술 플랫폼으로 만들 것입니다.”
1970년생인 강 대표는 예술과 행정 분야를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동경해 예원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더 넓은 길을 체험하고 싶어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사법고시 1차 시험에 붙기도 했지만 유럽 여행에서 본 악단 공연이 마음에 남았다. 강 대표는 음악계로 돌아와 금호문화재단에서 일하며 예술 관련 법을 공부했다. 미 벤저민 엔 카도조 로스쿨에서 지식재산법으로 석사 학위를,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선 예술경영을 가르치기도 했다.

2018년부터 3년간은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직을 맡았다. 공연계가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겪었던 시기다. 교향악단을 위한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가며 어렵게 공연을 성사시켰을 땐 세계 곳곳의 음악인들에게서 격려도 받았단다. 최근엔 문화예술과 국가 간의 관계를 주제로 논문을 쓰며 현장 경험을 지역 문화와 연계하겠다고 다짐했다. “음악·악기 시장과 공연 인프라가 모여 있는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다 보면 문화예술계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서초문화재단 대표 일이 올해 3년차가 됐습니다.”
악기 공방 위한 축제도 연다
서초구는 반포대교부터 예술의전당까지 이르는 반포대로 일대를 서초문화벨트 내 5개 공간으로 구획했다. 서리풀 악기거리, 서리풀 음악축제거리, 아·태 사법정의 허브, 서초책있는거리, 고터·세빛 관광특구 등이 이어져 서초구를 관통하는 구조다. 서초책있는거리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고터·세빛 관광특구는 고속터미널역 주변 상권, 세빛섬 등과 묶어 예술 공간으로 만든다.
벨트 구성의 핵심은 서리풀뮤직페스티벌이다. 지난달 10주년을 맞은 이 축제는 소프라노 조수미,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와 같은 클래식 음악가뿐 아니라 에픽하이, 멜로망스 같은 K팝 가수들도 함께하는 음악제가 됐다. 평상시 법조타운인 서초역 일대가 이 행사 기간엔 음악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 찬다. 예술의전당도 공연장 투어를 지원해 연대의 의미를 더했다. 강 대표는 “올해 축제에만 25만여명이 몰렸다”고 했다. 그는 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참가자 수인 20만여명보다 많은 수”라며 “역대 구청장분들과 관내 공무원들이 서리풀뮤직페스티벌을 민·관 협력 축제로 나날이 발전시킨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일주일간 ‘서리풀 K-스트링 페어’도 연다. 공방이 모여 있는 지역 특색을 살려 악기 전시·연주·강연·판매 등을 아우르는 축제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 장인들이 만든 악기를 시연하는 행사도 연다. 강 대표는 “뛰어난 솜씨를 지닌 악기 제작자들이 음악인들과 교류하고 시민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악기 제작과 관련한 대회도 개최해 관련 산업을 지원하고 장인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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