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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 축제·3단 굴절버스…'최초 시도'로 대전의 유니콘 키우겠다

입력 2025-10-26 17:18   수정 2025-10-27 00:46


요일 안 가리고 1주일 내내 붐비는 대전역. 프로야구 경기가 끝난 오후 10시 전후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다른 지역에서 기차 타고 원정 응원을 온 한화 이글스 팬까지 합세해 온 도시가 거대한 주황 물결로 뒤덮인다.

주말이면 주택가 빵집과 칼국수집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골목마다 긴 줄이 이어지면서 대전이 ‘웨이팅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매년 대전 방문객이 늘고 비수도권 지역 중 이례적으로 인구도 반등했다. 코스닥 상위 10개 업체 중 4개가 대전 기업일 정도로 경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1993년 대전 엑스포 이후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으로는 온기가 퍼지지 못하고 있다. 2022년 2만3000개이던 대전 내 폐업 업체는 지난해 2만8000개로 급증했다. 지난해 말 대전신용보증재단의 보증사고율과 대위변제율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보다 되레 4~5배 높아졌다.

이렇게 엇갈리는 상황을 대전의 경제주체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장우 대전시장과 40여 년간 가구업계에 몸담아온 고호경 한양인테리어가구 대표(대전·세종·충남 중소기업회장), 김종숙 경동오징어국수 사장이 한자리에 앉았다.
인구 반등에도…원도심 공동화
이 시장의 30년 단골집인 경동오징어국수는 대전시의 고민과 희망이 함께 담긴 공간이다. 가게가 있는 동구 성남동은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지만 이렇다 할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동네다. 그런 곳에서 경동오징어국수는 올해로 47년째 지역 맛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엔 김종숙 사장(74)이 개발한 두부오징어국수를 맛보려는 이른바 ‘칼국수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김 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완전히 장사가 꺾였는데 그나마 젊은 청년들이 대전을 찾아줘서 유지하고 있어요. 한때 직원 6명을 썼는데 지금은 아들 부부와 겨우 꾸려갑니다. 최근엔 주변 공사장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저녁 손님이 줄어 매출 내기가 쉽지 않아요.”

이 시장은 성남동 같은 원도심에 대한 고민이 크다며 거들었다. 이 시장은 “대전 인구가 올 들어 3000명가량 늘며 12년 만에 반등했지만 새 아파트나 기업은 신도심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인구가 유지돼도 원도심이 공동화하니 ‘동네 손님’이 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고 대표도 “대전 원도심 상권을 지탱하는 것은 중소기업인데,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인건비가 1.5배로 늘어나니 점점 고용이 줄고 있다”며 “일감이 있다고 한들 야근을 못 하니 야식 먹는 사람도 회식도 없어져 동네 상권이 죽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상권 살리기’ 첫 실험
이 시장은 원도심 상권을 살리기 위해 “이전에 아무도 안 한 ‘최초 시도’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년 8월에 열흘간 대전역 앞 1㎞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0시 축제’다. 열흘간 다양한 문화 공연과 대전 대표 맛집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이 축제엔 지난 3년간 526만 명이 다녀갔다. 이 시장은 “교통 문제나 소음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면서도 “한 명이라도 더 대전에 와보고, ‘여기 재미있네’라고 느껴야 대전을 다시 찾는다”고 강조했다.

0시 축제를 통해 대전역 인근 중구와 동구 원도심 상권은 청년층에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전국구 명소가 된 중앙로 성심당 본점뿐 아니라 진로집(두부두루치기), 신도칼국수(칼국수), 태화장(중국집) 등 노포와 철길 건너 소제동 카페거리까지 새롭게 조명받았다.

경동오징어국수가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국수와 부추김치를 집으며 이 시장은 말을 이어갔다. “2028년 개통 예정인 도시철도 2호선을 국내 최초로 지상 트램으로 추진하고, 유럽에서 볼 수 있는 3단 굴절버스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할 계획입니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고 역시 반대가 많아요. 하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이 느껴지는 도시를 만들지 못하면 지방은 점점 죽어갈 겁니다.”
“대전이 기업 키워내야 진짜 일자리”
원도심을 살릴 해법을 논하는 대화는 ‘일자리’로 넘어갔다. 참석자들은 원도심 관광자원을 개발하더라도 인구 감소에 따른 공동화를 막기 위해선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시장은 “다른 곳에 있던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정된 일자리를 지방자치단체끼리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돼선 안 된다”며 “대전에서 나온 혁신 기술을 대전에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키워내는 것이 제대로 된 성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덕구와 동구 경계에 있는 한남대에 국내 최초 도시첨단산업단지인 ‘캠퍼스혁신파크’를 조성한 것은 이 같은 고민이 담긴 산물이다. 88개 벤처·중소기업이 자리 잡았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은 법인세와 재산세를 각각 최대 3년, 7년간 면제받는다.

화제가 대전 기업으로 바뀌자 이 시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 시장은 “대전에 본사를 둔 상장사가 2020년 53개에서 현재 66개로 늘었다”며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현재 76조원으로 인구가 두 배 이상 많은 부산과 대구보다 크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 시장은 “기업의 성장을 결정하는 건 결국 땅과 돈, 인재”라며 “대전시는 535만 평(약 1760만㎡)에 달하는 산단을 조성했고, 전국 최초의 공공벤처캐피털, 바이오창업원 설립으로 기업을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실성 있는 가업승계 정책 나와야”
경동오징어국수의 또 다른 별미인 매운 족발양념구이를 앞에 두고 정책 이야기가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고 대표가 작심한 듯 말했다. “공장을 자동화한 대기업들조차 중국보다 원가가 30% 더 든다는데 여전히 사람을 써야 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어떻겠습니까. 높아지는 인건비에 수익이 안 나니 투자를 못 합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니 한국 청년은 차라리 쉬지 중소기업에 안 오고, 숙련도 떨어지는 외국인에게 의존합니다.” 김 사장도 “전통 있고 창의적인 맛집들이 2대, 3대에 걸쳐 계승된다면 외국인까지 지방 상권으로 끌어올 수 있지 않겠냐”며 “현실성 있는 정책을 짜달라”고 요구했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 차원의 소상공인 정책이 지방정부와 제대로 조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통시장 지원책만 해도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지자체가 제각각이라 효과는 떨어지고 현장의 혼란만 가중될 때가 많다”며 “진짜 소상공인을 살리고 싶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고 지방정부와 함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딥테크 벤처도시로 변신중
대전이 정부·기업 연구소가 밀집한 ‘과학도시’를 넘어 혁신기술(딥테크)의 벤처도시로 변신하고 있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가운데 4개가 대전 기업이다.

지난 24일 종가 기준 코스닥 상장사 중 시총 1위는 대전의 바이오 플랫폼 전문 기업 알테오젠(23조9000억원)이다. 2008년 LG생명과학 대전 연구소 출신 과학자 3명이 세운 회사로 연구실 창업 신화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시총 4위는 레인보우로보틱스(6조6000억원)다. 국내 최초 인간형 이족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KAIST 연구진이 2011년 창업했다. 이 밖에 바이오 신약 개발사 펩트론(5위·6조원)과 리가켐바이오(8위·4조9000억원)도 대전에서 출발해 터를 잡았다.
칼국수 유니버스·빵지순례…개척자 정신으로 '노잼' 탈출
사람·물자 통로…이주민이 일군 땅
“옛날에 먹을 게 있었나요. 벼 벨 때 농부들이 양푼에 밥, 고추장, 김치 비벼 먹는 걸 보고 두루치기랑 면도 같이 비벼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1979년 경동오징어국수를 차려 47년째 운영 중인 김종숙 사장이 식당 대표 메뉴 ‘오징어국수’를 내놓은 배경이다.

‘그래봐야 두루치기 아닌가’ 싶지만 사람들을 끄는 매력은 칼국수와의 ‘조합’에 있다. 대전 명물인 칼국수에서 육수가 밴 면을 건져 두루치기 양념과 비벼 먹는다. 대전 대표 칼국수집으로 꼽히는 동구 삼성동 오씨칼국수는 한가득 나오는 ‘물총 조개’에 혀에 불이 날 정도로 매운 겉절이 김치로 차별화했다. 이 밖에 대전엔 주말 아침마다 ‘오픈런’을 하는 칼국수집만 700개가 넘는다. 대전역 신도, 김화칼국수, 둔산동 칼국수만드는사람들, 대선칼국수, 대흥동 복수분식, 스마일칼국수 등이 대표적이다. 식당마다 자기만의 조리법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대전에 다양한 칼국수집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이장우 대전시장은 “전국 각지의 이주민이 모인 개척자들의 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25전쟁 당시 대전은 동서남북으로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 성심당도 고(故) 임길순·한순덕 부부가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으로 남으로 내려온 뒤 서울로 가던 중 기차가 고장 난 게 창업 계기가 됐다. 부부가 머무르던 대전의 한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가 빵집의 시작이었다.

성심당이란 절대 강자가 대전 제과점 상권을 잠식할 법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레하레, 슬로우브레드, 아른 등이 유명 빵집으로 성장해 “대전에 가면 ‘빵지순례’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빵 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 시장은 “성심당을 이겨야 대전에서 빵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대전 제빵인들의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개척자들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이 대전을 ‘노잼 도시’에서 ‘유잼 도시’로 탈바꿈한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대전=황정환/임호범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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