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더글로리'의 성공 이후 배우 김건우는 꽤 오래 '손명오'로 불렸다.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내뱉고, 악행을 일삼는 손명오는 그만큼 강렬하고 거친 캐릭터였다. 이후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던 김건우의 입에서 다시금 거친 언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브라운관을 거치지 않은, 생생한 뮤지컬 무대 위에서다.
김건우가 출연 중인 뮤지컬 '아몬드'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아몬드처럼 생긴 뇌 속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라는 신경학적 장애를 지닌 소년 윤재가 분노로 가득 찬 또래 소년 곤이를 만나며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22년 초연해 호평을 얻었고,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윤재와 상반된 성격의 곤이는 등장부터 욕설을 내뱉고 주변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성향을 지녔다. 어린 시절 납치된 후 소년원을 거치며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이다. 아버지마저 그를 항상 부끄러운 골칫거리로 생각한다. 감정 과잉인 그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를 만나 치열하게 내면의 성장을 겪는 과정이 펼쳐진다.
김건우는 곤이 역할로 '아몬드' 재연 공연에 합류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만난 김건우는 "'아몬드'는 알고 있던 소설은 아니었다. 뮤지컬 제안을 받으면서 알게 됐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완성됐다. 뮤지컬 대본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느낌이 있었는데, 책을 통해 갈증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작품 선택을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욕설이 많은 대사였다고 했다. "욕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김건우는 "욕이 (작품 내에서)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저렇게까지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을 때는 이유 없는 욕이 많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대표 배역인 '더글로리' 손명오와 이미지가 다소 겹친다는 점도 그를 고민스럽게 했다. 김건우는 "예전에 했던 캐릭터와 비슷한 결이니 잘해도 본전이라는 느낌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소설 원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곤이 캐릭터에 가깝게 다가서자 따뜻함, 사랑 등의 감정을 발견했다고 한다. 손명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지점이었다. 곤이는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고,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속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는 윤재와의 관계에서 뜨거운 우정을 보여준다.
김건우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고 보니 납득이 됐다"면서 "소설을 읽으니 욕은 더 많더라. 부담은 있었지만, 할 거면 잘해야겠다 싶더라. 귀에 아주 때려 박아주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곤이와 손명오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손명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애다. 계획이 있고 비열하다. 하지만 곤이는 사랑을 갈구하는, 그 나이대의 정제되지 않은 화를 가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 잡아준다면 잡힐 수 있는 거다. 윤재를 만나면서 조금씩 사회를 알게 된다. 자신이 바라보던 세상에서 일반적인 세상을 알아간다. 충분히 개선의 여지가 있는 친구라서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폭력적인 부분만 뺀다면 곤이와 닮은 점도 있다고 했다. 김건우는 "남자다운 성향이 있다. 곤이에게는 '테토남'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약간 그런 기질이 있다. 또 반대로 곤이가 윤재랑 장난치는 걸 보면 아기자기한 면이 있다. 나 역시 그런 게 있다"고 말했다.
곤이가 마음을 열고 윤재를 친구로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지 묻자 "엄청난 편견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나를 나대로 바라봐주고 나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건우에게 '아몬드'는 4번째 뮤지컬이다.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렸음에도 그는 2023년 '빠리빵집'을 시작으로 '그날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그리고 '아몬드'까지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다.
김건우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굉장히 매료되어 있다"면서 "하면서 더 대단한 장르라고 느낀다. 모든 일과 직업에 변수가 많지만 특히 무대는 라이브라서 정말 변수가 많다. 아무리 대사를 달달 외웠어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 대사를 까먹을 때도 있다. 이런 변수가 많은 일을 멋지게 해내는 배우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특히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목이 굉장히 예민하지 않나. 선배, 동료들의 컨디션 관리를 보면서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공연 전날은 절대 술을 못 먹는다. 이틀 전에도 심각하게 고민한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또 "잠을 늦게 자는 편이었는데, 수면시간이 확보되어야 목 컨디션이 좋더라. 일상 패턴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노래해야 한다는 점도 그를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김건우는 "드라마랑 조금 다르게 뮤지컬은 내겐 부족한 노래라는 부분이 있어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까지 한 뮤지컬 중에 '아몬드' 넘버가 가장 어렵다. 고음이 많고, 계속 고음에서 플레이가 된다. 더 잘 소화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아직은 좀 부족해서 음악적인 스트레스가 조금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내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노래를 왜 이렇게 잘해요?'라는 반응이 많다. 전혀 기대를 안 하니까 조금만 잘해도 노래를 잘한다고 해주신다. 이득을 보고 있는 배우"라고 유쾌하게 말하고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두, 세 작품이면 끝날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최근에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통해 첫사랑 선배 이미지까지 갖췄다. 손명오로 김건우를 기억하는 이들은 두 배우가 동일 인물이냐며 깜짝 놀랄 정도다. 김건우는 "예전에는 다들 날 보면 '어! 손명오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상학 선배로 불러준다. '손명오다!'라고 했을 때는 쾌감이 있었다면, 상학 선배는 따뜻하게 불러주고 바라봐주는 느낌"이라며 미소 지었다.
특정 이미지를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하고 싶다. 주어진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다. 난 이게 전부"라고 단단한 신념을 밝힌 김건우였다.
요즘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아몬드'라고. 김건우는 "현장감 있는 곤이를 만나고 싶다면 저의 회차를 예매하시면 된다. 조금 더 살아있는 생물 같은 느낌을 받으실 거다. 아직 뮤지컬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어떠한 형식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곤이를 보고 싶다면 오시면 된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보고 싶은 배우,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다. 좋아하는 배우의 소식이 들리면 '저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지 않나. 공연으로 예시를 든다면 직접 찾아가서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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