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지난해 기준 1928억달러 규모인 연간 교역액을 3000억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건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새로운 경제 활로를 찾아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미·중에 편중된 무역 구조를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분산해 ‘지경학(지정학+경제학)적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차원이다.
2019년부터 이어진 말레이시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최종 타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한·말레이시아 FTA를 통해 수출입 품목 다양화, 핵심 원료 공급처 안정화 등 상호 호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FTA로 말레이시아는 682개, 우리나라는 288개 품목의 관세를 추가 인하하거나 철폐하게 된다.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는 아세안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이지만 프로톤, 페로두아 등 자국 자동차 기업 점유율이 70%에 달한다. FTA가 발효되면 국내 기업의 현지 자동차 시장 경쟁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전기차 조립용 부품세트(CKD)에 부과되던 관세 10%가 0%로 바뀌고, 완성 전기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관세는 30%에서 15%로 낮아진다. 냉연 등 9개 철강 품목의 관세가 철폐되고 열연 등 일부는 15%에서 10%로 인하된다.
한국은 두리안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과 가리비 등 수산물 위주로 시장을 추가 개방한다. 말레이시아는 전기차 등 자동차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지분 제한 규제를 이번 FTA에서 철폐하기로 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이번 FTA는 자동차 철강 등 핵심 분야를 더 깊이 있게 개방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합의”라고 했다.
정부는 이번 FTA 타결을 아세안 다른 국가와의 개별 FTA를 확대해 신남방 정책을 가속화할 기회로 삼고 있다. 아세안 중 개별 FTA를 맺은 국가는 싱가포르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5개국이다.
한·아세안 FTA가 2007년 발효돼 아세안이 중국 미국에 이어 우리의 세 번째 교역 상대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으며 앞으로의 잠재력은 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1199억달러인 교역액은 지난해까지 9년간 60.8% 증가했다. 이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유력 일간지 더스타 기고문에서 “한·아세안 간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 보건, 에너지와 같은 미래 주력 산업 분야 협력과 함께 인재 양성, 기술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현지 브리핑에서 “비공개회의에서 각국 정상이 한·아세안 FTA 업그레이드, 디지털·기후 변화 대응, 인프라 협력 등을 희망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한·아세안 간 디지털 분야 협력 규범이 마련되면 관련 분야 무역 규모가 최소 220억달러 이상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김형규 기자/하지은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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