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 시작하면서 아이 어린이집 준비물에 기저귀, 물티슈까지 새벽배송 잘 이용했는데 정말 없어지는 건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택배기사의 근로조건 개선 명분으로 '새벽배송 금지'를 주장하고 나서자 걱정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약 2000만명이 새벽배송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생활필수 서비스'가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9일 택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지난 22일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에서 야간배송 근절을 위해 심야시간(0~5시)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얘기다.
사회적대화기구는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르면 연말까지 과로사 방지를 위한 최종 대책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대화기구는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협의체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과거 민주노총이 주도해 주요 택배사 대상으로 하루 작업시간, 주당 업무시간 등을 정해왔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제기한 문제의식이나 의견이 비중 있게 반영돼 왔다. 앞서 민주노총과 정치권은 2021년 사회적합의기구를 열어 1월과 6월 두차례에 거쳐 사회적 합의문을 도출했다. 일 작업시간(12시간 이내), 주당 업무시간(60시간 이내) 등을 정해 택배사들이 준수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에 언급된 '새벽배송 금지'도 단순 제안이 아니라 현실화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이나 주부들이 밀집한 주요 맘카페 등에서 불만과 우려가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밤 11시 넘어 퇴근해 장 볼 시간이 없는데, 새벽배송이 없으면 어쩌라는 말이냐"라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퇴근하고 왔는데 분유나 기저귀가 하필 똑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유용한데 새벽배송 서비스를 없애자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적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정말 황당한 주장"이라며 "민노총 주장대로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늦게 퇴근하는 맞벌이 부부를 비롯해 이제는 새벽 장보기가 필수가 된 2000만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생산자와 소상공인들, 새벽 배송으로 돈을 벌고 있는 택배 기사들의 삶이 모두 망가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24 소비자시장평가지표'에 따르면 새벽배송은 40개 생활 서비스 중 총점 71.8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가격, 신뢰성, 선택 가능성 등 주요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비자 10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선 새벽배송이 없는 지역의 소비자 84%가 "새벽배송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반발이 일자 택배노조는 새벽배송을 전면금지 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종전대로 0~5시 배송을 제한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이날 택배노조는 보도자료를 내고 "쿠팡과 같은 연속적인 고정 심야 노동은 생체 리듬을 파괴해 수면장애, 심혈관 질환, 암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면서 "노조는 새벽배송 자체를 전면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심야배송에 따른 노동자의 과로 등 건강장애를 예방하고, 지속가능한 배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주간·야간 배송을 오전 5시 출근조와 오후 3시 출근조로 변경해 일자리와 물량 감소가 없도록 하고 오전 5시 출근조가 긴급한 새벽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택배업계에선 불가능한 주장이란 반응이 나왔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기사는 배송을 시작하기 전에 배송물품을 적재하는 등의 준비업무를 해야 한다. 오전 5시부터 배송을 해도 새벽에 출근해 일해야 하기에 초심야 시간 근무를 근절하자는 노조 주장과는 배치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과 소상공인들이 밀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조치"라고 꼬집었다. 한 누리꾼은 "배송기사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새벽배송이 없어지면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 텐데 왜 민주노총이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느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근로 여건을 개선하고 논의하면 될 일을 왜 무작정 금지부터 하느냐"라거나 "결국 중국 업체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만 도와주는 꼴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국물류과학기술학회 조사에 따르면 야간배송 기사들은 '교통 혼잡이 적다(36.7%)', '주간배송보다 수입이 더 좋아서(32.9%)', '낮 시간에 개인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20.7%)' 등의 이유로 현재 업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2000만 국민의 편익과 다수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며 "일방적 규제는 국민적 저항과 함께 농가, 자영업자 등 연관 산업의 연쇄적 붕괴와 심각한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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