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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첨단의 그늘, 리튬이온 배터리가 불러온 '국가 정전'의 공포

입력 2025-10-29 15:50   수정 2025-10-29 15:51


지난 9월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은 단순한 산업사고가 아니었다. 이 사고로 국가 주요 정보시스템 700여 개가 마비되었고, 정부의 온라인 행정 서비스도 일시 중단됐다.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 안전’은 곧 ‘국가 안전’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고는 UPS(무정전전원장치) 배터리 점검 중 발생한 불꽃이 연쇄 폭발로 이어지며 주요 국가 자원을 소실시켰다. 그러나 현장에는 위험구역 설정도, 방폭 설비도, 전문 인력의 감독 체계도 없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장비가 아니라, 한국 산업 안전문화의 구조적 결함에 있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효율적이지만, 과열로 인한 ‘열폭주’가 일어나면 수소·메탄 등 폭발성 가스를 내뿜는다. 따라서 배터리실은 단순한 전기실이 아니라 ‘폭발위험구역’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전 사고 시설은 방폭 인증과 환기 설비가 부실했고, 주요 장비와 같은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 통계(2024)에 따르면 폭발성 가스·분진 사고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했으며, 특히 2차전지 시설에서의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

방폭의 핵심은 ‘설치’가 아니라 ‘신뢰성’이다. 작은 결함 하나가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데, 많은 현장은 ‘설비가 있다’는 이유로 안심한다. 방폭 시스템이 멈추는 순간, 첨단시설은 순식간에 위험시설로 변한다.

이번 사고의 본질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전문 인력의 부재다. 현장에는 발열과 가스 냄새 등 명확한 위험 신호가 있었지만, 이를 판단할 공인 방폭 전문가는 없었다. 선진국에서는 폭발위험 지역의 설계·시공·유지보수를 공인 자격자가 수행한다. 호주는 EEHA 자격을 국가제도로 운영하고, 유럽은 ATEX 지침에 따라 자격기록부를 관리한다. 반면 한국에는 아직 방폭 자격제도가 없다. 우리의 안전관리 체계는 오랫동안 ‘소방’과 ‘방폭’을 따로 운영해왔다. 그러나 실제 사고에서는 화재와 폭발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두 체계가 따로 작동하면 대응은 무력화된다. 리튬배터리실에서 가스가 누출된 상태로 소화설비가 작동하면 오히려 폭발을 유발할 수 있다. 방폭 설계가 미흡하면 소방대의 진입이 늦어 피해는 더 커진다. 이제는 소방과 방폭이 함께 작동하는 통합 안전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화재·가스 감지기, 환기 팬, 방폭 전기설비가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체계가 그것이다. 설계 단계부터 방폭 전문가가 소방 기준과 함께 참여해야 한다.

데이터센터는 전통적으로 폭발위험 산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AI·클라우드·전자상거래 확대로 그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2025년 현재 전국 240여 개 데이터센터 중 70% 이상이 리튬이온 UPS 시스템을 사용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배터리실이 ‘IT 설비실’로만 분류되어, 방폭 설계나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전기설비 기준(KS C IEC 60364)에는 폭발위험 구역 분류가 없어, 고온·밀폐·고전류 환경이 그대로 잠재적 폭발위험 구역을 만든다. 유럽과 호주는 이미 IECEx 기준에 따른 방폭 관리를 시행 중이며, 자동 환기·가스 감지·열폭주 감지 AI 등 복합 안전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데이터센터의 UPS·배터리실을 폭발위험 구역으로 재분류해야 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와 산업계는 방폭 설비의 법적 의무화, 전문 인력 양성, 디지털 안전관리체계 구축, 소방·방폭 통합 기준 제정, 데이터센터 방폭 가이드라인 신설 등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방폭 설비와 전문 인력은 첨단 산업의 기본 인프라다. 소방과 방폭이 하나로 작동할 때 비로소 진정한 안전이 완성된다. 리튬배터리와 데이터센터는 디지털 사회의 심장부다.

이제 한국은 실질적이고 과학적인 방폭 체계를 세워야 할 때다. 그것이 산업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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