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날 서울 대학로 아르코 극장에선 중국 상하이 현대무용단 타오 댄스 시어터가 신작 ‘16’과 ‘17’로 무대에 올랐다. 숫자 시리즈로 불리는 이 단체의 작품은 서사를 거부한다. 이야기 대신 숫자만 남겨둔 자리엔 철저한 미니멀리즘 아래 오로지 몸의 언어만 있었다. 무대에는 배경도, 소품도 없었다. 오직 빛과 호흡 그리고 움직임의 리듬만이 공간을 꽉 채웠다.
‘16’에서는 16명의 무용수가 한 줄로 연결돼 거대한 파도처럼 움직였다. 각자의 몸이 용을 연상케 하는 유기체의 분절처럼 흐르고, 무대는 한 몸이 16으로 나뉘는 순간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무용수들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 때마다 흩어지는 땀방울이 다이아몬드처럼 흩어졌다. ‘17’에서는 그 흐름이 흩어지고 다시 뭉쳐지는 과정을 그려냈다. 무용수들의 몸에서 발생하는 소리와 호흡, 발과 등의 마찰음이 음악이 되고 신체와 소리가 서로를 반사하듯 내치며 얽히고설킨다. 타오 예가 고안한 ‘원형 움직임 기법’은 이번 작품에서도 핵심이었다. 무용수들은 이마, 귀, 정수리 등을 중심축으로 공간을 360도 회전한다. 이 반복적 움직임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미세한 차이와 타이밍의 어긋남 속에서 새로운 파동을 빚어냈다.
무용수들은 관객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지속적인 몰입과 관찰의 태도만을 요구했다. 정적인 순간과 반복되는 구성이 이어지고 관객은 자신의 호흡과 무대의 호흡이 맞물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지점이 이 단체가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해외 평론가가 이 무대를 ‘차가운 명상’(cold meditation)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날 무대는 무용이 여전히 언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서사 대신 움직임, 음악 대신 호흡, 장치 대신 몸. 이 모든 결핍의 미학은 결국 몸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표현 수단으로 회귀하는 것에 있었다. ‘무엇을 봤는가’보다 ‘무엇을 느꼈는가’를 묻는 진한 여운을 느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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