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한된 공간에 고가 브랜드를 더 많이 들여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금까지 백화점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더현대서울은 오프라인 몰 쇠퇴 속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공간의 절반을 조경·휴식용으로 내주고, 팝업스토어 등 즐길 거리를 채워 넣었다. 온라인 쇼핑이 제공하지 못하는 ‘체험’과 ‘경험’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에 힘입어 2021년 개장 직후 화제를 모으며 단숨에 MZ세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매출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 매장 없이도 고속 성장해 리테일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더현대서울 매출은 전년 대비 8%가량 늘어난 1조3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개점 당시 연 매출(6700억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두 배가량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백화점업계 전반의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이룬 성과다.통상 백화점 매출에선 고가 해외 명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더현대서울은 개점 이후 2년간 3대 명품으로 통하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없이도 고속 성장하며 연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이후 2023년 말 루이비통이 입점하며 해외 명품 매출도 확대되고 있다.
에루샤 없이도 고속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엔 공간 마케팅이 있다. 방문객이 공원, 휴양지처럼 공간을 둘러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계해 사람을 끌어모았다. 대표적인 예가 5층에 자리 잡은 사운즈포레스트다. 3300㎡(약 1000평) 규모 공간에 잔디와 나무, 식물 50여 종을 심어 방문객이 쇼핑 중에도 편하게 쉴 수 있게 했다. 상업시설에 대규모 녹지 공간을 조성한 국내 첫 사례다.
이 공원은 계절에 따라 크리스마스, 하와이, 핼러윈 등의 테마 공원으로 바뀐다. 덕분에 SNS 인증샷 명소로 떠올랐다. 성수기 일평균 방문객만 3000명에 달한다.
더현대서울에서 휴식·조경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매장 면적의 49%다. 대부분 백화점은 이 비중이 30~35%에 그친다. 매장을 최대한 촘촘히 배치해 매출을 높이는 기존 백화점 전략과 정반대다. 더현대서울은 공간을 내주는 대신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위치정보기업 로플랫에 따르면 더현대서울 방문객의 주말 평균 체류 시간은 59분으로 국내 백화점의 주말 평균(46분) 대비 1.28배 더 길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열리는 팝업스토어는 ‘힙한’ 감성을 추구하는 MZ세대를 끌어모았다. 패션·뷰티부터 아이돌,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스포츠까지 팬심을 자극하는 콘텐츠로 공간을 채우는 전략이다. 현대자동차는 물론 일본 잡화점인 돈키호테 같은 기업도 브랜드 홍보를 위해 더현대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놀 공간을 제공하자 MZ세대 씀씀이도 커졌다. 작년 더현대서울 전체 매출에서 20~30대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8%로 절반을 넘는다.
힙스터 감성을 자극하는 신진 패션 브랜드를 유치한 것도 MZ세대를 끌어모은 배경으로 꼽힌다.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던 ‘디스이즈네버댓’ ‘쿠어’ 등 신진 브랜드를 오프라인에 처음 입점시키며 유통 경계를 허물었다. 이후 ‘미스치프’ ‘드파운드’ ‘세터’ 등 MZ세대 감성의 브랜드를 지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정지영 현대백화점 사장은 “더현대서울은 단순 쇼핑 공간에 머물던 백화점에 대한 인식을 깨고 공간 경험의 가치를 극대화해 리테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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