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각 러트닉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일본 도쿄를 떠난 전용기에 있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러트닉 장관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석 달여를 끌어온 한·미 관세협상의 극적 타결을 위한 마지막 카드가 던져졌다.

30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기 직전 두 장관은 ‘마지막 기회’라는 판단 아래 문자로 숨 가쁜 협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일정을 시작하면 김 장관의 카운터파트인 러트닉 장관도 물리적 시간이 없기 때문에 착륙 직전을 협상이 가능한 최종 시점이라고 봤다고 한다.
한·미는 한 달여간의 협상으로 큰 틀의 합의에는 도달한 상태였다. 그러나 ‘연간 현금 지급 한도’를 두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2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이뤄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 간 막판 협상에서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이후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 간 화상 협상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날 김 장관이 러트닉 장관에게 마지막 통보 문자를 보냈고, 러트닉 장관은 이를 받아들여야 할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기 내에서 미국 측이 우리 측 최종 협상안을 받을지 막판 조율을 한 셈이다.
김 장관은 평소에도 러트닉 장관과 문자메시지로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조지아주 사태’ 당시에도 문자메시지로 강하게 항의하자 러트닉 장관이 ‘매우 유감, 고치겠다’는 사과 메시지를 보낸 일화가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항에 내릴 때까지도 협상단에 제대로 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 마르는 순간’이 이어진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날 아침까지 노딜이라는 관측이 많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환하게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연설하고, 이례적으로 ‘김정관 장관은 터프한 협상가’라고 말하자 협상이 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회담 전날 밤만 해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회담 당일 점심쯤 연간 한도 문제가 합의됐고 두 정상이 만나며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초반 비현실적 목표를 설정하고 기준점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뒤 최종 합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트럼프식 앵커링’ 전략을 폈다. 미국은 한국의 높은 대미 수출 의존도, 안보 동맹,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대한 미국 시장 접근권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이에 한국은 역할 분담으로 대응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은 피스메이커’라고 치켜세우는 ‘굿캅’ 역할을 맡았고, 김 장관은 실무 협상에서 러트닉 장관에게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는 ‘배드캅’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APEC CEO 서밋 연설에서 김 장관을 두고 “까다롭고 터프한 협상가”라고 말한 배경이다. 김 장관은 앞서 기자회견에서 “(러트닉 장관과의) 협상 과정에선 책상을 치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통상당국 내부에선 “김용범 실장은 협상장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 대미 펀드 구조가 일본에 비해 불리하지 않게 체결된 배경도 금융정책과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김 실장의 역량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하지은/김대훈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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