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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 327억 낙찰, VVIP 전략으로 시장 주도권 재확인

입력 2025-10-31 10:47   수정 2025-10-31 11:01

아트바젤 파리 2025가 10월 26일, 복원된 그랑 팔레에서 네 번째 개최를 성황리에 마쳤다. 206개 갤러리가 참가했으며 7만 3천여 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올해 신설된 VVIP 프리뷰 아방 프리미에르(Avant-Premiere)에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이 2300만 달러(약 327억 원)에 판매되며 고가 작품 거래를 이끌었다. 여성 및 젊은 컬렉터의 부상과 파리 도시 전체의 문화적 융합이 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받았다.



VVIP 전략, 고가 거래 견인

아트바젤 파리는 올해 신설한 아방 프리미에르를 통해 최상위 구매력을 확보하고 거래의 속도와 집중도를 높였다. 이는 불황 우려 속에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주최 측의 적극적인 움직임이었다. 아방 프리미에르는 기존 VIP 프리뷰보다 하루 빠르게 시작하며 최상위 컬렉터만 초청했다.

빈첸조 드 벨리스 글로벌 디렉터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 내에서 갤러리들이 최상위 컬렉터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VIP 프리뷰가 이틀로 나뉘면서 혼잡도가 줄었다고 덧붙였다.

최고가 작품 거래는 하우저 앤 워스에서 나왔다. 리히터의 '추상화'(1987)가 2,300만 달러(약 327억 원)에 판매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페이스 갤러리는 모딜리아니의 '머리를 옆으로 묶은 소녀'(1918)를 1,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에 판매했다. 화이트큐브는 줄리 메레투 작품을 1,150만 달러에, 타데우스 로팍은 알베르토 부리 작품을 420만 유로에 판매하는 등 주요 갤러리들의 고가 거래가 이어졌다.

타데우스 로팍 설립자는 "파리에서 예상보다 성과가 좋았다. 분위기도 확실히 살아났다"며 "이러한 흐름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시장이 더 안정적인 상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벨기에의 자비에르 후프켄스 갤러리 대표는 "작품은 거의 완판됐고, 진짜 눈에 띄는 건 분위기"라며 "사람들이 파리에 와서 작품을 보고, 느끼고, 다시 미술과 사랑에 빠졌다"고 전했다.



한국 미술, 글로벌 위상 재확인

한국 미술은 이번 페어에서 지속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글로벌 시장 위상을 공고히 했다. 4회 연속 참가한 유일한 한국 갤러리인 국제갤러리는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 거장들을 비롯해 김윤신, 최재은, 함경아, 이광호 등 한국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 판매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갤러리 관계자는 "경기 침체 우려에도 한국 미술의 강세를 재확인했고, 다이내믹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국제갤러리 측은 "이번 페어가 판매 성과와 더불어 미술 담론의 장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한국 미술의 차별점과 강점을 다양한 맥락에서 보여주며 지속적인 교두보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티나 킴 갤러리는 한국 섬유미술 선구자 이신자 작가를 단독으로 선보였고, 페어 측은 이 작가를 주목할 만한 '재발견' 작가로 소개했다. 빈첸조 디렉터는 "유럽 페어에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한국과 일본 컬렉터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시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며, 특히 한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도시 전체가 아트 위크로

아트 바젤 파리는 도시 전체를 페어 공간으로 확장했다. 루이 비통 재단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회고전, 피노 컬렉션의 '미니멀' 전시, 까르띠에 재단의 특별전 등 주요 전시와 디자인 마이애미 파리, 아시아 나우 등 위성 페어가 동시 개최되며 파리가 '아트 위크'로 활기를 띠었다.

패션·럭셔리 브랜드들도 적극 참여했다. 미우미우는 공공 프로그램 파트너로 팔레 디에나에서 대형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루이 비통은 무라카미 다카시 협업 핸드백 컬렉션을 페어에서 공개했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가 예술을 그저 홍보 수단이 아닌, 창의적 콘텐츠와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화하는 핵심 요소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공식 아트 TV 파트너인 삼성전자는 디지털 아트 경험을 확대하며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넓혔다. 빈첸조 디렉터는 기술이 예술 제작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으며 디지털이 "페어의 주요 매체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파리시와 협력한 공공 프로그램도 돋보였다. 쁘띠 팔레, 방돔 광장 등 9개 랜드마크에서 대형 설치 작품이 선보여졌으며, 해리 누리예프의 참여형 설치 <분실물>은 관람객이 불필요한 물건을 내놓고 다른 이의 물건을 가져가도록 하는 참신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빈첸조 드 벨리스 아트 바젤 글로벌 디렉터는 "디자인, 패션, 럭셔리 브랜드와의 연결이 두드러지고 도시 전체가 페어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파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여성·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시장

아트 바젤과 UBS가 발표한 '2025 글로벌 컬렉팅 서베이'는 10개 시장의 고액자산가(HNWI)를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를 통해 미술 시장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었다.

여성 컬렉터들은 남성보다 46% 더 많은 지출을 기록했으며, 여성 작가 지원과 구매가 거래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응답자의 74%가 밀레니얼 또는 Z세대로 젊은 세대가 시장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고액자산가 시장에서도 세대교체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구매 채널에서 컬렉터의 58%가 아트페어에서 구매했다고 답해 2023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경매 참여가 줄어든 반면 갤러리 직거래를 통해 안정적으로 작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불확실한 시장 상황 속에서 가격의 투명성과 갤러리와의 신뢰 기반 관계를 중시하는 컬렉터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아울러 고액자산가의 미술품 자산 배분은 2024년 15%에서 2025년 20%로 증가했다. 초고액자산가(UHNWI)는 평균 28%를 배분하며 미술품이 포트폴리오 다각화 수단으로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음을 입증했다.

2026년 신임 디렉터 체제로

빈첸조 디렉터는 해외 아트페어 참여에 관심 있는 한국의 예비 컬렉터들에게 "아트 페어는 갤러리와 달리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미술을 탐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리는 페어 안팎으로 볼거리가 많은 도시"라며 “미술 작품 구매에 관심이 있다면, 다양한 페어와 전시를 보며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현 커뮤니케이션 헤드인 카림 크리파(Karim Crippa)가 11월 1일부로 새로운 디렉터직을 맡는다. 크리파 신임 디렉터는 파리 페어를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현대미술 플랫폼으로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며 VVIP 전략과 도시 융합이라는 성공 방정식을 이어갈 전망이다.

▶▶[관련 리뷰] 혼란 속에서도, 파리는 여전히 예술을 꿈꾼다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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