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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아파트도 아닌데" 이럴 수가…15일 만에 '완판'된 집 [강영연의 건축 그리고 건축가]

입력 2025-11-15 11:00   수정 2025-11-17 09:06



“좋은 집은 자기 취향이 드러나는 집이에요. 남이 보기 좋은 집이 아니라 내가 편하고 만족스러운 공간이어야 하죠.”

김연희 아키텍츠진진 소장은 ‘좋은 집’의 정의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많은 주택을 설계하면서 ‘좋은 집의 기준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한다.

아무리 멋져 보여도, 거기 사는 사람이 불편하면 좋은 집이 아니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이는 채광이 중요하고, 어떤 이는 소음이 더 민감하다"며 "집은 기능이나 디자인보다 ‘삶의 방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했다.

그가 설계의 핵심으로 꼽는 것은 ‘취향’이다. 많은 예비 건축주가 ‘좋은 건축가’를 찾기 전에 자신의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대부분은 ‘유명 건축가니까 잘하겠지’ 하며 선택하지만 취향이 다르면 만족할 수 없다"며 "건축가는 건축주의 스타일을 구체화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설계 상담 때마다 '좋아하는 공간 이미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무심코 저장한 사진 속에,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취향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간접 채광이나 비움의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색감이 강하거나 패턴이 많은 공간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 역시 취향이 있다. 김 소장이 설계한 주택 대부분에는 ‘중정’이 있다. 바깥에서는 닫혀 있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지는 구조다. 그는 “외부로부터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내부에서는 빛과 바람이 통하는 공간"이라며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답답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주택을 짓는 것이 오피스보다 더 까다롭다고 했다. 아침에 눈 뜨고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생활이 그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모두 고려해야 해서다. 그는 "회사나 상가 건물은 기능이 중심이지만, 주택은 감정"이라며 "식사하고, 쉬고, 자는 모든 일상이 거기 담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주택 설계를 “인공지능(AI)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단언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적인 공간을 제시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동선, 감정,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어떤 이는 햇빛을 좋아하지만, 어떤 이는 어두운 방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며 "그걸 읽어내는 건 결국 사람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지금까지 설계한 건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다세대주택이다. 남편의 친구가 건축주로, 어릴 적부터 살던 집터에 인근 부지를 추가해 새로 지은 프로젝트였다. 임대를 목표로 짓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가구 수를 늘리는 대신 가구 안의 구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작지만 베란다를 모두 넣었고, 세탁기 한 대 놓을 자리, 옆집 시선이 닿는 창문 방향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인근 주택보다 보증금이 1억원 가까이 높았지만 준공 15일 만에 11세대가 모두 임대 완료됐다.

그는 “성수동이나 건대입구에서 살던 분들까지 ‘이런 집 기다렸다’며 찾아왔다"며 "단순히 방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라, 생활이 편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고 말했다.



모두가 아파트를 원하는 현상에 대해 묻자, 김 소장은 “돈의 가치가 사람의 선택을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부동산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좋은 집=가격이 오르는 집’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점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단독주택 수요도 늘고 있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요즘 주택은 예전처럼 추운 집이 아니에요. 단열 기술이 워낙 좋아졌죠. 오히려 층간소음이 없고, 이웃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점이 장점이에요. 스스로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해서 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도심 속 택지지구에 짓는 주택은 기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도로, 학교, 공원 모두 아파트 단지 못지않은 곳도 많아졌다. 접근성만 잘 고려하면 주택의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집을 지을 필요는 없지만, 주택이 비효율적이라는 편견은 바뀌어야 한다"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만족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돈의 가치가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와 같다"며 "건축의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건축가도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축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상상력과 감수성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건축은 단순히 설계 기술이 아니라 종합 예술'이라고 했다. 음악, 미술, 조명, 디자인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을 알아야 공간도 잘 만들 수 있다"며 "결국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조언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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