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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우의 지식재산통찰] 불타버린 기록, 분산의 부재가 만든 인재

입력 2025-10-31 17:29   수정 2025-11-01 00:10

조선 사관들은 국가 기록을 한 곳에만 두지 않았다. 전란과 화재에 대비해 전국 다섯 곳의 사고(史庫)에 <조선왕조실록>을 분산 보관했기에 우리는 600년의 역사를 잃지 않았다. 이 지혜는 다른 문명에도 있었다. 중국 명·청 왕조는 왕의 실록을 중앙과 지방에 나눠 뒀고, 일본 막부 역시 주요 문서를 여러 도시에 분산했다. 프랑스는 혁명 이후 파리 외곽과 지방에 아카이브를 세워 화재와 점령에 대비했으며 미국은 핵공격과 재해를 우려해 연방 기록을 전국 14개 지역 아카이브에 분산 보관한다.

기록 분산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문명 생존의 철학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은 이보다 허술한 백업 체계를 가지고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800테라바이트가 넘는 행정 데이터가 사라지고, 공공서비스 수백 개가 동시에 멈췄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불이 났다’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왜 단 한번의 화재가 국가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켰는가’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대전(본원)-광주(제2센터)-대구(클라우드센터)와 공주 재해복구(DR)센터로 이어지는 다중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 이중화에 그쳤다. 본원 화재 시 자동 전환이 작동하지 않았고 2023년 완공된 DR센터는 백업 이전이 올 10월로 미뤄져 위기 대응의 본령을 다하지 못했다. 대구 클라우드센터 역시 수용 한계와 예산 제약으로 계획보다 축소됐다. 더구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규정은 ‘월 1회 백업’ 조항을 두고 있어 대용량 행정시스템 데이터가 1개월 단위로만 보존되는 구조적 허점을 안고 있다. 이 모든 요인은 ‘기술 부재’가 아니라 ‘거버넌스 실패’였다.

이제는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모든 핵심 시스템은 동일 수준의 예비시스템과 원격 동시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서로 다른 지역·전력망·통신망에 연결된 최소 두 개 이상의 백업 거점을 의무화해야 한다. 더불어 원격지 백업·보관의 분리와 무결성 기준을 법제화하고, 복구 모의훈련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해외 주요국은 국가 정보자산의 회복탄력성을 제도화했다. 영국은 국가사이버보안센터의 사이버 평가 체제를 통해 백업·보조 사이트 분산 저장 및 복구훈련을 시행하도록 설계했고 일본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지리적으로 분산된 거점 데이터센터와 백업시설 구축을 추진해 왔다. 미국은 OMB 서큘러 A-130을 통해 연방기관의 정보자원관리 계획을 제시하면서 연속성과 복구체계 마련을 정책적 요구사항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백업을 비용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조건’으로 본다.

한국도 이제 디지털 국가 연속성 개념을 행정에 도입해야 한다. 재난이나 공격이 발생하더라도 정부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며 데이터와 시스템, 네트워크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즉시 전환될 수 있도록 평시 모의훈련과 검증이 제도화돼야 한다. 이번 화재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시스템이 드러난 결과였다. 백업은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기억이며 신뢰의 인프라다. 우리가 그 기억을 지킬 때만 국가는 내일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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