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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보가 떴다. 젠슨 황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이라는 막대한 물량을 한국에 공급하겠다는 소식이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들끓었다. 단순한 산업 뉴스가 아니었다. 인공지능(AI) 전쟁터에서 실탄이 없어 뒤처질까 불안해하던 우리에게 AI 세계 3강으로 도약하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이 흥분은 강력했다. TV를 지켜보던 삼성전자·SK 주주들이 당장이라도 코스피지수가 5000포인트를 돌파할 것 같은 흥분에 환호했다. 그동안 엔비디아 공급 리스트에서 홀대받으며 느꼈던 기술 고립의 설움이 엔비디아 패밀리의 일원이 되었다는 든든함과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환희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 든든함은 과연 동맹의 증표일까, 아니면 쿠다(CUDA)라는 거대한 독점 생태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일까? 우리가 쥔 황금 티켓이 사실은 엔비디아의 제국에 영원히 갇히는 족쇄는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황금 티켓이 절실했던 이유
우리가 이 황금 족쇄의 위험성에도 열광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칩이 없으면 AI 전쟁의 참전 자격조차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AI 경쟁은 시간 싸움이다.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며, 이를 훈련시키고 추론하기 위해서는 수만 개의 GPU를 동시에 돌리는 병렬 컴퓨팅 능력이 필수적이다. 엔비디아의 GPU는 이 작업의 사실상 유일한 핵심 부품이다.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돈이 있어도 GPU를 구하지 못해 오픈AI나 구글의 질주를 지켜봐야만 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 격차를 넘어 국가의 AI 주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기술 고립의 공포였다. 따라서 젠슨 황의 GPU 공급 약속은 우리에게 안도를 주기에 충분했다.
AI 제국의 독점, CUDA라는 종속 구조
생존을 해결했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은 단순한 우위 수준이 아니다. 2024년 기준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용 GPU 시장의 98%를 장악했다. 2025년 2분기에도 AI GPU 시장 점유율은 94%에 달하며, 스탠퍼드대의 'AI 인덱스 2024' 보고서 역시 AI 훈련용 반도체 시장의 80~90%를 엔비디아가 점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이는 시장 지배력을 넘어 사실상 공급 독점이다. 오픈AI부터 구글, 메타, 네이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AI 기업은 엔비디아의 GPU 없이는 AI 모델을 훈련시킬 수 없다. 엔비디아가 칩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든 AI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가격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로써 완벽한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진짜 무서움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칩에서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쿠다(CUDA)에 있다. 쿠다는 엔비디아가 15년 전 개발한 병렬 컴퓨팅 플랫폼으로, GPU를 범용 연산용(GPGPU)으로 확장시킨 AI 혁명의 일등 공신이다.
문제는 쿠다가 엔비디아 GPU에서만 독점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지난 15년간 전 세계 AI 개발자들은 오직 쿠다를 기반으로 코드를 짜고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수십만 명의 개발자가 쿠다 언어에 락인(Lock-in)된 것이다. 이제 와서 AMD나 인텔이 더 좋은 칩을 내놓아도 쿠다가 작동하지 않는다. 개발자에게 다른 언어를 쓰라는 것은 평생 영어로 코딩하던 이에게 내일부터 라틴어로 코딩하라는 요구와 같다. 이 전환 비용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끼워팔기 및 시장 지배력 전이의 대표적 사례다. 엔비디아는 하드웨어(GPU) 지배력으로 소프트웨어(CUDA) 생태계를 독점시켰고, 다시 그 소프트웨어 독점력으로 하드웨어 경쟁자를 배제하는 독점의 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선물’에 숨겨진 전략
이 독점 구조의 관점에서 젠슨 황의 선물을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시장이 막히자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한국에서 새 매출처를 확보하려는 세일즈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에는 쿠다 제국을 수성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어쩔 수 없이 탈(脫)쿠다 독자 생태계 구축에 내몰렸다. 이는 엔비디아 독점에 균열이 생긴 신호다. 젠슨 황 입장에서는 중국이 이탈한 이상, 나머지 우방국들의 충성도를 높여야만 한다.
만약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들에도 GPU 공급을 소홀히 한다면 어떨까? 당장 AI 개발이 급한 네이버나 삼성이 AMD, 인텔 혹은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사활을 걸며 제2의 탈쿠다 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자체 NPU(신경망처리장치)를 가진 한국은 엔비디아에게 가장 위험한 잠재적 이탈 후보다. 따라서 젠슨 황의 GPU 우선 공급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한국이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쿠다 생태계 안에 가두려는 가장 강력한 독점 강화 전략이다.
양날의 검을 다루는 지혜
결국 젠슨 황이 안긴 황금 티켓은 기회와 속박을 동시에 주는 양면성을 지닌다. 당장 GPU를 확보하지 못하면 AI 경쟁에서 영원히 뒤처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엔비디아의 GPU는 우리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족쇄다.따라서 우리는 이 양면성을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엔비디아를 배척하자는 비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라, 엔비디아를 적극 활용하되 그들의 독점 구조에 걸리지 말자는 전략적 대응이 시급하다.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확보한 GPU로 우리 AI 모델의 경쟁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둘째,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번 시간과 자원을 '탈(脫)' 쿠다를 위한 우리만의 대안을 만드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 AI 반도체 팹리스와 삼성·SK하이닉스 같은 제조사를 잇는 강력한 국내 NPU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드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NPU를 구동할, 쿠다를 대체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스택(Stack) 개발에 정부와 민간이 과감한 R&D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젠슨 황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 손에 우리의 미래까지 통째로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기술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AI 주권국으로 서기 위한 냉철한 균형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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