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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사진의 퀸 조선희, 왜 죽은 새를 얼음으로 붙들어 맸을까

입력 2025-11-04 08:04   수정 2025-11-22 17:41

미처 매듭짓지 못한 감정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묻어두거나, 표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대로를 온전히 직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패션계와 광고계에서 사진 작가로 독보적 커리어를 쌓아 온 조선희는 후자를 택했다. 자신이 품고 있던 감정을 얼음과 새(鳥)로 형상화해 이 감정을 직면하고자 했다.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진행되는 작가의 개인전 ‘FROZEN GAZE(얼어붙은 시선)’는 그 형상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2020년부터 시작한 연작 'FROZEN GAZE'를 처음으로 선보인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죽은 참새 한 마리는 작가에게 죽음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열네 살 무렵 돌아가신 아버지가 흙에 묻히던 순간, 그리고 그 아버지가 새가 되어 날아가던 꿈. 어렴풋한 장면들이 머리를 스쳐 갔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40년 전 그날을 회상하며 흙이 마치 아버지를 집어삼켜 소멸시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기억 때문에 흙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물질을 사용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얼음을 떠올렸죠. 얼음은 무엇가를 붙들어 둘 수 있다는 보존성에 투명해서 속이 훤히 보이기도 하고 얼음이 얼어서 보이는 그 결이 감정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작업실 앞에서 마주친 그 작은 새를 조금이라도 세상에 붙잡아 두고 싶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는 점에서 연결되기도 했고요.”



그는 지인을 통해 새를 공수받는다. 로드킬당한 새들 가운데 희귀종은 교육용 박제로 만들고 그렇지 않아 폐사되는 새로 작업을 이어간다. 어떤 작품은 받았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얼리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포즈를 연출해 얼리기도 한다. 작가가 자신을 ‘사진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드러나는 면모다. 이처럼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나간다.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어떤 것은 분명한 새의 형태처럼 보이지만, 어떤 작품은 아예 다른 사물 혹은 동물로 보인다. 아예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원래는 새가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있는 모습인데 거대한 고래 혹은 집게발을 지닌 생명체로 보인다거나 작품에 따라 털 복숭이 동물 혹은 다이아몬드로 보이는 식이다.

이번 전시는 세 개 층에 걸쳐 진행된다. 1층에 들어서자마다 관람객을 반기는 사진은 날개를 활짝 편 채 고개를 바닥으로 향한 새의 모습. 마치 방금 전까지 상공을 가르며 자유롭게 비상하던 새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듯하다. 1층에는 이 작품을 비롯한 4개의 작품과 전시명과 동명의 도록이 전시돼 있다.



메인 전시 공간인 2층 Gallery 1과 3층 Gallery 2는 공간의 대비가 확연하다. 2층 전시장에서는 영상 작업물을 함께 선보인다. 어둡게 연출된 2층 한 켠에는 마치 수면으로 솟구치는 고래의 모습처럼 보이는 새의 사진이 벽 한 면을 가득 메우고, 그 맞은편에는 영상작업을 위에서 아래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두 개의 구조물이 조성돼 있다. 3분이 채 안되는 두 영상은 약 40시간에 걸쳐 언 새가 녹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2층 전시장에서 들리는 얼음이 녹으며 쩍쩍 갈라지는 소리도 분위기 형성에 한몫을 더한다.

뮤지엄한미 김선영 학예연구관은 영상의 소리를 따로 분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얼음이 녹는 영상 작업의 소리인데 2층 전시장의 배경음악처럼 조성했어요. 어두운 조명과 소리 등의 효과를 통해서 관람객이 마치 아이스 큐브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길 바랐거든요. 어두운 분위기의 2층은 감정의 침전과 정체를, 자연광이 스며드는 3층(Gallery 2)은 감정이 다시 흐르고 회복되는 상태를 상징하기도 해요.”



환한 빛이 들어오는 3층 전시장에서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 내밀히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중앙에 놓인 8폭 병풍을 상처를 ‘드러낸’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이 병풍은 실제로 작가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것이라고. 그는 사진을 인화한 한지를 병풍 위에 덧댄 후 커피나 염색약으로 물을 들이기도 하고, 불로 그을려 탄 자국을 만들어 드러난 상처를 표현했다.

병풍 오른편에서는 이 작업의 시발점인 참새가, 또 그 옆은 세 개의 작품이 나란히 걸렸다. 작가는 같은 새를 찍었을지라도 카메라의 종류와 촬영 각도에 따라 그 결과물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참새는 눕힌 채로 35mm 카메라로 촬영했고, 그 옆 연작들은 디지털로 개조한 4×5 대형 카메라로 세운 채로 찍었어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색 너머의 의미를 생각하게 돼서 일부러 배경에는 아무런 색도 넣지 않았고요. 그래서 기포와 얼음의 결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죠.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고들 얘기하시더라고요.”



특히 새와 함께 드러난 공기 방울은 작품의 묘한 인상을 배가시킨다. 새가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새의 숨결이 얼어붙은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작가는 물의 온도나 종류에 따라 다른 결정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수돗물이냐 정수물이냐, 미지근한 물이냐 차가운 물을 넣느냐에 따라 결빙의 형태나 기포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핏빛으로 물든 작품도 있다. 언 새를 여러 번 녹이는 과정에서 내장이 수축되며 피가 흘러나오기 때문. 작가는 주로 그로테스크하고 버려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특히 오랜 시간 ‘죽음’에 대해 사유해왔다. 이러한 성향은 작가의 작품에서도 줄곧 드러난다. 죽은 이를 감싸는 소창에 사진을 프린트한다거나, 화장 후 뼛가루를 뿌리는 것처럼 시든 꽃에 안료를 뿌리는 작업, 죽음의 충동(타나토스)과 맞닿아 있는 아담과 이브를 주제로 한 작업 등 죽음과 맞닿아 있는 작업을 선보이곤 했다.

작품의 프레임에서도 그가 추구하는 미학이 드러난다. 버려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작가답게 그간 수집해온 빈티지 액자나 옛날에 사용했던 프레임을 활용한 것. 감정이 흔적을 남기듯이 액자도 오랜 세월 어떤 그림이나 사진을 담았을지 모르지만 이야기와 감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된 프레임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고.

김선영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자신의 감정과 대면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FROZEN GAZE’ 연작은 작가가 기억과 감정을 섬세하게 다스리며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수행적 시간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각자 지니고 있던 해결되지 못한 감정을 대면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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