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울린 인간보다 더 따스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한국 관객의 마음을 두드리러 돌아왔다. 이번엔 뉴욕의 모던한 옷을 입고서다. 지난 6월 국내 창작 뮤지컬 최초로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 6관왕에 오른 '어쩌면 해피엔딩' 이야기다.
고향 온 올리버와 클레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금의환향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맞이하러 온 관객들로 극장 앞은 공연 한 시간 전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 예매)을 뚫고 온 이들의 얼굴엔 두 로봇을 만나기 전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2016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두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버려진 두 로봇은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를 찾아 제주도로 향하는 여정에서 사랑에 빠지지만, 이내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의 근원인 행복한 추억을 메모리에서 지우기로 한다.
이야기는 인간을 로봇에 비유한 데이먼 알반의 노래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을 우연히 들은 박천휴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의 동료인 작곡가 윌 애런슨과 함께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동시에 글을 써 작년 11월 뮤지컬의 본고장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올 6월에는 토니상 작품상과 극본상, 작곡·작사상 등 6관왕을 휩쓸며 K뮤지컬이 해외 관객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입체적 무대 연출 돋보여
2015년 시범공연 이후 10주년 공연이기도 한 이번 무대는 여러모로 한층 진화했다. 브로드웨이 버전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우선 극장이 기존 350석에서 550석 규모로 커지며 무대가 소폭 넓어졌다. 올리버와 클레어의 집 안 인테리어도 나뭇결이 느껴지던 기존 아날로그 감성에서 2059년 서울이라는 배경에 어울리는 미래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두 로봇이 제주도로 떠나는 장면부터는 캐리어에서 자동차 핸들이 자동으로 솟아오르고, 집이 키치한 핑크빛 모텔로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등 지난해 한국 공연의 무대 전환보다 역동적이며 입체적이었다. 다만 '어쩌면 해피엔딩' 특유의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좋아하던 관객 중 일부는 이런 변화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가슴속에 먹먹하게 스며든다. 더 이상 부품을 고칠 수 없는 두 로봇은 끝이 정해진 삶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국 헤어지는 인간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그게 이별이든 죽음이든 말이다.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 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 넘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노랫말처럼 작품은 유한한 삶의 비극성과 동시에 그 속에 품긴 사랑의 숭고함을 되새기게 한다.
배우들의 섬세한 로봇 연기도 변함이 없었다. 소심하지만 다정한 올리버와 시니컬하지만 속은 여린 클레어가 서툰 몸짓으로 사랑의 감정을 하나씩 배워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6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도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무대 위에 있던 피아노는 무대 오른편으로 내려왔고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드럼과 함께 재즈, 인디 팝 등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빚어내며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
따듯한 난로 같은 뮤지컬
공연 115분 내내 박수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집중하던 관객들은 커튼콜에서 환호성을 쏟아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내던 관객들도 여럿이었다. "명작엔 이유가 있다", "브로드웨이 버전도 보고 싶다"는 감상평을 나누며 현실 세계로 돌아온 이들. 어쩌면 흔하디흔한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이 뉴욕 관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에 모두가 공감한 듯했다.
누군가는 봉인해둔 한때의 사랑을 꺼내어 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맞잡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시 사랑할 용기를 얻을지 모른다. 찬 바람이 매서워지는 이 계절, 관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난로 같은 작품이다.
올리버 역은 김재범, 전성우, 신성민, 정휘가 맡았다. 클레어 역은 전미도, 최수진, 박지연, 박진주, 방민아가 출연한다. 제임스 역은 고훈정, 이시안, 박세훈이 함께한다. 공연은 내년 1월 25일까지.
허세민 기자
고향 온 올리버와 클레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금의환향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맞이하러 온 관객들로 극장 앞은 공연 한 시간 전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 예매)을 뚫고 온 이들의 얼굴엔 두 로봇을 만나기 전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2016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두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버려진 두 로봇은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를 찾아 제주도로 향하는 여정에서 사랑에 빠지지만, 이내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의 근원인 행복한 추억을 메모리에서 지우기로 한다.
이야기는 인간을 로봇에 비유한 데이먼 알반의 노래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을 우연히 들은 박천휴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의 동료인 작곡가 윌 애런슨과 함께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동시에 글을 써 작년 11월 뮤지컬의 본고장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올 6월에는 토니상 작품상과 극본상, 작곡·작사상 등 6관왕을 휩쓸며 K뮤지컬이 해외 관객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입체적 무대 연출 돋보여
2015년 시범공연 이후 10주년 공연이기도 한 이번 무대는 여러모로 한층 진화했다. 브로드웨이 버전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우선 극장이 기존 350석에서 550석 규모로 커지며 무대가 소폭 넓어졌다. 올리버와 클레어의 집 안 인테리어도 나뭇결이 느껴지던 기존 아날로그 감성에서 2059년 서울이라는 배경에 어울리는 미래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두 로봇이 제주도로 떠나는 장면부터는 캐리어에서 자동차 핸들이 자동으로 솟아오르고, 집이 키치한 핑크빛 모텔로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등 지난해 한국 공연의 무대 전환보다 역동적이며 입체적이었다. 다만 '어쩌면 해피엔딩' 특유의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좋아하던 관객 중 일부는 이런 변화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가슴속에 먹먹하게 스며든다. 더 이상 부품을 고칠 수 없는 두 로봇은 끝이 정해진 삶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국 헤어지는 인간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그게 이별이든 죽음이든 말이다.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 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 넘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노랫말처럼 작품은 유한한 삶의 비극성과 동시에 그 속에 품긴 사랑의 숭고함을 되새기게 한다.
배우들의 섬세한 로봇 연기도 변함이 없었다. 소심하지만 다정한 올리버와 시니컬하지만 속은 여린 클레어가 서툰 몸짓으로 사랑의 감정을 하나씩 배워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6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도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무대 위에 있던 피아노는 무대 오른편으로 내려왔고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드럼과 함께 재즈, 인디 팝 등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빚어내며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
따듯한 난로 같은 뮤지컬
공연 115분 내내 박수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집중하던 관객들은 커튼콜에서 환호성을 쏟아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내던 관객들도 여럿이었다. "명작엔 이유가 있다", "브로드웨이 버전도 보고 싶다"는 감상평을 나누며 현실 세계로 돌아온 이들. 어쩌면 흔하디흔한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이 뉴욕 관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에 모두가 공감한 듯했다.
누군가는 봉인해둔 한때의 사랑을 꺼내어 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맞잡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시 사랑할 용기를 얻을지 모른다. 찬 바람이 매서워지는 이 계절, 관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난로 같은 작품이다.
올리버 역은 김재범, 전성우, 신성민, 정휘가 맡았다. 클레어 역은 전미도, 최수진, 박지연, 박진주, 방민아가 출연한다. 제임스 역은 고훈정, 이시안, 박세훈이 함께한다. 공연은 내년 1월 25일까지.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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