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패션 아니었나요?…경량 패딩 요즘 왜 이렇게 유행하나요?”최근 패션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게시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올 가을 패션 브랜드의 주력 상품 중 하나가 ‘짧고 얇은’ 경량 패딩인데, 2030 젊은층은 인기 있는 경량 패딩을 ‘웃돈’까지 줘가며 구매한다. 5060 중년층이 추위를 막기 위해 코트나 정장 안에 입는 생존템이던 경량 패딩이 ‘힙’한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한 것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경량 패딩 인기는 기후 변화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 가을이 짧아지고 10월쯤부터 아침저녁으로는 영하권 초겨울 날씨가 이어지면서 경량 패딩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낮에는 20도 가까이 기온이 오르는 일교차 큰 날씨도 한 몫한다. 입었다가도 날이 풀리면 벗기 편하고 휴대성 높은 아우터로 경량 패딩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편안한 실루엣과 기능성을 내세운 편한 패션이 대세로 떠오르는 것도 있다.

경량 패딩 위상이 달라지면서 블랙 일색이던 제품군은 다양한 색상으로 확대됐다. 경량 패딩 시장에서 ‘패피’(패션 피플)들이 톱티어(1군) 브랜드로 꼽는다는 스포츠 브랜드 살로몬에선 밝은 회색 제품이 가장 인기다. 32만원에 출시된 살로몬 '크로스 인슐레이션' 라이트 그레이 컬러 패딩은 크림 등 리셀 사이트에서 6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XL 등 일부 인기 사이즈 가격은 78만원까지 치솟았다. 오렌지 캐롯, 씨드 그린 등 아우터 제품으론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밝은 색의 제품도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입어 ‘이재용 패딩’으로도 알려진 고가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에선 69만원짜리 경량 패딩을 내놨는데 일부 인기 색상의 프리미엄(웃돈)이 90만원까지 치솟았다. 국민 아웃도어 브랜드로 꼽히는 노스페이스 경량 패딩도 출시와 동시에 품절 대란을 빚고 있다. 인기 패딩 '벤투스 재킷'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를 개시하자마자 40분 만에 모든 재고가 팔려나가는 현상을 보여줬다. 실버 등 일부 색상은 리셀 시장에서 정가의 두 배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노스페이스는 폭증하는 수요를 감안해 추가 생산에 들어간 상황이다.
경량 패딩 인기는 중저가 브랜드로도 번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의복 시장이 부진해진 가운데 모처럼 다가온 경량 패딩 특수는 패션업체들 입장에선 호재다. 경량 패딩은 생산 단가가 낮고 회전율이 높아 수익성이 좋은 아이템이다. 아웃도어와 하이엔드 브랜드는 물론 대중 브랜드와 SPA(제조·유통 일괄) 같은 가성비 브랜드까지 경량 패딩에 주력하며 색상, 디자인, 가격 면에서 선택지가 다양해진 것이다.
무신사의 자체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는 이번 시즌 경량 패딩 색상을 기존 4종에서 13종으로 늘렸다. 리복은 기존 ‘바람막이-헤비패딩’ 사이의 중간 제품군으로 ‘경량패딩 라인’을 신설했다. 티톤브로스는 물량을 전년 대비 20배 이상 늘렸고, 헤지스·뉴발란스·유니클로 등도 각각 다양한 충전재와 디자인을 적용한 신제품을 잇따라 내놨다.

이랜드월드의 SPA(제조직매형의류) 브랜드 스파오(SPAO)는 아예 전략 모델로 5만9900원짜리 경량 패딩 '씬라이트' 컬렉션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격적인 물량 확보에 나섰다. 지난해 말부터 겨울 아아템 수요 조사에 들어가 경량 패딩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지했다.
올해 내내 해외 파트너사 공장의 비수기를 활용해 원가를 유지하면서 초도 물량을 준비, 한 번에 생산 가능 물량을 수십만장까지 확보해놨다. 이랜드는 발주부터 원자재 입고, 생산, 국내 입항, 매장 진열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단 5일 만에 끝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지난달 경량 패딩 물량을 지난해보다 50% 증가했지만 예상보다 더 수요가 몰리자 지난달 재고를 125% 더 확충했다. 충분히 물량을 확보해둔 덕분에 지난달 경량 패딩 매출은 304% 폭증했다.
이랜드 스파오 관계자는 “씬라이트가 매장으로 고객을 유입하는 효과를 내면서 스파오 겨울 아우터 매출 전체도 40% 늘었다”면서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가 등장하고 충전재 관련 기술이 발전하며 중저가 가격대 경량 패딩의 품질도 크게 향상된 것이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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