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선 초대 지식재산처장이 인공지능(AI) 기반 심사체계 구축과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법제화 추진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김 처장은 5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개발된 기술이 명품특허로 신속히 전환되고 기술유출 위험 탐지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도록 AI 심사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심사인력을 확충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지식재산 반칙행위 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의 법적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김 처장은 행시 37회로 특허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세계지식재산권기구 조정위원회 부의장, 한국지식재산보호원장을 거쳤다.
지식재산처(지재처)는 지난달 1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특허청에서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승격됐다. 조직은 1관 10국 1단 63과 21팀, 3개 소속기관, 총 1800명 규모로 확대됐고, 내년도 예산은 724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0억 원 늘었다. 첨단산업, 특허, 상표 등 IP 분쟁 대응을 전담하는 지식재산분쟁대응국이 신설됐다.
김 처장은 취임사에서 AI를 강조하며 AI 산업 지원과 AI를 활용한 행정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AI·양자기술 등 첨단산업의 거시적 기술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AI 기반 심사시스템으로 심사 효율성과 정확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주요국도 유사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은 ‘경쟁력 나침반' 정책을 통해 AI 기반 지식재산권(IP) 집행과 표준특허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김 처장은 또 “중소기업의 기술·아이디어 탈취를 철저히 제재하고 손해배상액이 합리적으로 산정될 수 있도록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증거개시제도는 법원의 명령으로 상대방이 보유한 자료를 열람·제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특허침해 입증이 어려운 국내 소송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다. 지난 7월 벤처기업협회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54.9%가 증거 부족으로 소 취하 또는 패소를 경험했고, 73%가 ‘증거 수집 곤란’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대한변리사회 설문조사 등에서도 도입 희망 1순위로 꼽히는 정책이다.
지재처 앞에 놓인 과제들은 적지 않다. 특허 출원 건수로 따지면 세계 4위 수준이지만 해외출원 비중은 34%로 독일(51.9%), 미국(47.0%), 일본(45.2%)에 비해 낮고, 대학·공공연 기술이전 건당 수입은 약 2500만원 남짓으로 미국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국제지식재산지수(GIPC)에 따르면 한국의 ‘IP 자산 사업화’ 부문 순위는 29위에 머물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우리나라는 특허는 많지만 기술 시장에서 거래가 안 돼 문제”라며 “잠재 가치는 있지만 사주는 사람이 없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AI 분야 특허 보유 비율도 12%로 미국(38.7%)·중국(34.0%)에 미치지 못한다.
이에 지재처는 특허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개발(R&D) 결과물의 제품개발 연계를 지원하는 IP-제품개발연계지원(R&BD) 사업을 올해 56건에서 내년 100건으로 확대하고, 대학·공공연 특허를 기업과 매칭해 권리 이전부터 사업화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심사인력 부족과 그로 인해 늦어지는 특허 심사 처리기간도 문제다. 국내 특허심사 처리기간은 16.1개월로 EU(5.0개월)와 일본(9.5개월)에 비해 길며 지난해 기준 심사인력은 1052명으로 중국(1만 3704명)·미국(8237명)에 크게 뒤처진다. 지재처는 수출기업이 신속히 특허·상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초고속심사’ 제도를 도입해 특허와 상표권 심사기간을 모두 1개월로 단계적으로 단축할 계획이다. 동시에 바이오, 로보틱스, AI 등 첨단 산업 분야 민간 전문가를 심사관으로 확대, 채용한다.
김 처장은 특허관리기업(NPE)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도 약속했다. NPE는 특허권 행사만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거침없이 소를 제기한다는 뜻에서 '특허 괴물'로 불린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권향엽 의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달 7월까지 발생한 해외특허분쟁 885건 중 NPE 관련 사건이 417건이었는데, 414건이 NPE로부터 국내 기업이 피소당한 건으로 나타났다.
김 처장은 끝으로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과정의 국익 조화를 추진하고, 아세안·중동 등 신흥시장 협력을 통해 지식재산 5대 선진국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금년 노벨경제학상은 특허가 혁신의 당근이자 채찍으로서 기업의 지속적인 혁신을 이끈다는 이론을 제시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다”며 “혁신을 이끄는 부처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개개인이 공직사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자”고 맺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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